“변호사 조력 받을 권리 실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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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황 순<br>법무법인 율촌<br>파트너 변호사<br>율촌포렌식센터 부팀장
▲임 황 순
법무법인 율촌
파트너 변호사
율촌포렌식센터 부팀장

변호사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법적 조언을 제공할 수 있으려면,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솔직히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이 외부에 유출될 위험이 없어야만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의뢰인과 변호사 간의 의사 교환에 대한 비밀을 보장하는 것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의뢰인의 방어권 보장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의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의뢰인과 변호사 간 비밀유지권 보장의 필요성과 현행 형사소송법 및 최근 법원 판례의 동향을 살펴보고 관련 법령의 개정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법률 자문자료가 압수될 때의 부당함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가 리베이트 문제로 조사를 받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국세청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부당한 리베이트를 지급한 사실을 확인해 손금부인하고 법인세를 추가 과세할 경우, 그것이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 판단될 때는 국세청의 형사고발을 통해 조세범처벌법 위반에 대한 수사가 개시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공정거래위원회도 병의원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행위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과징금 부과 등 처분을 내릴 수 있으며, 수사기관에 형사고발하면 수사가 개시될 수 있다.
감독기관의 조사 과정에서 회사는 변호사에게 법률적 자문을 구하거나 내부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 법무팀조차 영업부서에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확인하지 못하고 가정적 사실로 자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또, 변호사가 내부조사를 하는 경우, 회사 법무팀이나 컴플라이언스팀은 조사 결과가 외부에 유출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임직원의 휴대폰 등 개인정보와 회사의 기밀을 변호사에게 전달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감독기관의 조사 후 검찰이나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면서 변호사의 자문 결과나 내부조사 결과가 발견될 경우, 압수수색 영장과 별개의 사실이더라도 추가영장을 청구해 해당 자문결과, 내부조사 결과에 대해 별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이때, 자문 결과나 내부조사 결과가 실제와 맞지 않는 사실에 기반했거나 오류가 있더라도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기정사실이 된다. 회사나 변호인의 어떠한 주장도 설득력을 갖지 못해 방어권 행사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현행 법체계의 한계
우리 헌법 제12조제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체포 구속된 경우를 전제로 의뢰인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규정할 뿐,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일반적인 비밀유지권에 관한 규정은 없다.
형사소송법 제112조에는 “변호사, 변리사, 공증인, 공인회계사, 세무사, 대서업자,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약종상, 조산사, 간호사, 종교의 직에 있는 자 또는 이러한 직에 있었던 자가 그 업무상 위탁을 받아 소지 또는 보관하는 물건으로 타인의 비밀에 관한 것은 압수를 거부할 수 있다. 단, 그 타인의 승낙이 있거나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을 때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첫째, ‘변호사 등’의 압수거부권만을 인정하고, ‘의뢰인’의 압수거부권은 포함하지 않는다. 둘째, 변호사가 ‘의뢰인의 위탁을 받아 소지하고 있는 물건’을 압수거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법률자문 문서는 포함되지 않는다. 셋째, 변호인의 압수거부권을 ‘공증인, 대서업자 등’의 압수거부권과 같이 규정해 헌법 제12조제4항에 따른 변호인 권리와 무관한 것처럼 규정하고 있다.
현행 판례도 ‘변호인-의뢰인 비밀유지권’은 우리 현행법 체계상 인정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2012년 전원합의체 판결(2009도6788)에서 “아직 형사절차가 개시되지 아니해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는 사람이 일상적 생활관계에서 변호사와 상담한 법률자문에 대해서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내용으로서 그 비밀의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의뢰인의 특권을 도출할 수 있다거나, 위 특권에 의해 의뢰인의 동의가 없는 관련 압수물은 압수 절차의 위법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최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검찰의 별건 수사과정에서 변호인과 의뢰인의 교신문서가 압수된 사건에서 법원은 “피의자·피고인의 구속 여부를 불문하고 조언과 상담을 통해 이뤄지는 변호인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변호인선임권과 마찬가지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며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에서 의뢰인이 법률자문을 받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이뤄진 의사 교환에 대해서는 변호인이나 의뢰인이 그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교신문서에 대한 압수처분을 취소(2023보4 결정)했는데, 검찰이 재항고해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입법적 보완을 통한 실질적 권리 보장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을 인정하고 있다.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광범위한 비밀유지권이 인정되고 있고, 대륙법계 국가들 역시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 및 압수거부권 규정 등에서 변호사와 의뢰인의 교신자료에 대해 압수를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한변호사협회를 중심으로 ‘변호사-의뢰인 간 비밀유지권’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위 법원 결정에서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서 바로 변호사-의뢰인 간 비밀유지권이 도출된다고 판단하기는 했으나,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법 절차가 따라야 한다.
우선, 형사소송법 제112조의 변호인의 압수거부권은 헌법 제12조제4항 등 헌법상 기본권에 근거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형사소송법 제112조에 함께 규정된 변리사, 공증인, 회계사, 약종상 등 다른 업무상 비밀의 주체들과 분리해 독자적인 규정을 신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112조는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변호사뿐만 아니라 의뢰인도 압수를 거부할 수 있는 것으로 개정돼야 하한다. 또한 압수거부권 행사의 대상과 관련해서는 ‘변호사가 위탁받은 타인의 비밀’에 국한하지 않고,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이뤄진 모든 의사교환의 비밀이 보호돼야 한다. 이에 ‘변호사가 업무상 위탁받은 의뢰인을 위해 법적으로 조력할 목적으로 생성했거나 의뢰인과 주고받은 의사교환의 내용’으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 본 원고는 필자 개인의 견해로써 필자가 소속된 법무법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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