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POR 유럽학회가 보여준 환자 중심성 강화 흐름
● ISPOR Europe 2025(2025. 11. 10.~12.) 참관기
에드워즈라이프사이언시스코리아
Market Acceess 과장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영국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에서 열린 국제 약물 경제성 및 성과연구 학회 유럽학회(ISPOR Europe 2025)는 ISPOR 창립 30주년을 맞아 ‘Powering Value and Access Through Patient-Centered Collaboration(환자 중심 협력을 통한 가치와 접근성 강화)’을 주제로 개최됐다. 이번 학회는 보건의료 의사결정에서 환자 중심성을 강화하기 위한 다기관·다학제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특히 환자 참여(patient engagement)가 단순한 형식을 넘어 실질적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필자는 이번 학회 세션들을 참관하면서 주목해야 할 핵심 메시지와 국내 상황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 보며 느낀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환자 참여, 약속에서 실천으로
첫 번째 본회의(plenary session)에서는 ‘Patient Engagement in Healthcare Investments – A Promise or a Practice?’를 주제로 환자 참여가 의료기술 개발과 투자, 규제 의사결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환자 참여는 이미 다양한 산업 환경에서 핵심 화두로 자리 잡았지만, 실제로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냈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됐다. 패널에는 지불자, 투자자, 산업계, 규제기관, 환자 대표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환자 참여의 영향력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 토론했다. 특히 향후 5년간 환자 의견을 기반으로 접근성, 관련성,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실행 가능한 과제’를 설정하는 것이 이번 논의의 핵심 목표였다.
패널들은 환자와 환자단체의 의견을 의료기술의 초기 개발 단계부터 반영하는 것이 타당성과 효과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임을 강조했다. 또한, 규제기관이 위험-편익 평가에서 환자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사례와, 투자자들이 환자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실제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줬다. 그러나 여전히 사후 승인(post-approval) 데이터 활용과 의사결정위원회 참여는 부족하다는 점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환자 참여 모델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환자 선호도 근거(PPE)와 HTA
이어진 세션에서는 환자 선호도 근거(Patient Preference Evidence)가 의료기술평가(HTA)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Patient Preference Evidence in HTA: What Do We Really Know?’ 세션에서는 환자 선호도 근거가 잠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실제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짚었다.
영국 NICE 사례를 통해 효용값 산정에서 환자의 선호도가 반영되는 시간교환법(Time Trade-Off) 기반 자료가 선호되고, 질병 부담과 미충족 수요를 보여주는 포트폴리오 증거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는 점도 언급됐다. 더불어 환자 선호도 근거를 HTA에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적 연구와 실무 가이드라인 마련, 그리고 이해관계자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환자 중심 근거 – HEOR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번 학회의 또 다른 의의는 ISPOR 최초로 환자 중심 근거(patient-centered evidence)에 전념한 세션에서 환자 참여 관련 주요 노력과 성과를 되짚고, 향후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는 점이다. ISPOR는 지역별 라운드테이블과 환자위원회(Patient Council) 설립, 2024년 환자 중심 연구 서밋 개최, 그리고 이번 유럽학회에서의 첫 환자 중심 증거 트랙 개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환자 관점을 HEOR(보건경제학 및 성과연구)의 과학과 방법론 제도화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세션에서는 환자와 대중의 참여가 글로벌 보건의료 시스템에서 ‘희망’에서 ‘기대’로 변화하는 흐름을 짚었다. 환자 경험을 의료기술 가치평가 프레임워크에 통합하고, 환자와 공동으로 연구를 설계하는 등 새로운 접근법과 더불어 환자에게 중요한 요소들을 반영하는 혁신적 방법론이 소개됐다. 특히, 환자 대표와 연구자, 규제기관 전문가들이 함께 전통적 관점에서의 근거를 재검토하고, 실사용 경험(real-world lived experience)과 공동 의사결정이 규제, HTA, 급여 결정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논의했다.
환자 중심성, 혁신과 경쟁력의 핵심 전략
전반적인 세션을 참관하며 확인한 공통점은 명확하다. 단순히 환자 의견을 수집하는 수준을 넘어, 환자를 진정한 파트너로서 연구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의 HEOR에서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보다 포용적이고 공정하며, 환자에게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 엿보였다.
환자 중심성은 더 이상 윤리적 요구에 그치지 않고, 혁신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투자자와 규제기관이 환자 의견을 중시하는 변화는 산업 전반의 의사결정 구조가 환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시사점 및 제언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등재 및 급여 결정 과정에서 환자 의견 반영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HTA 과정에서 환자 선호·경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런 글로벌 흐름에 발맞춘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환자 참여 기반 HTA 모델을 구상하고, 방법론적 표준화와 이해관계자 교육을 통해 실질적 반영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업계에서도 기술 개발과 임상시험 설계, 시장 접근 전략 등 다양한 단계에서 환자 참여를 적극 도모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국제 트렌드를 따라가는 차원을 넘어, 국내 보건의료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사회적 정당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
결국, 환자 참여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가치 창출의 필수 요소’다. 이번 ISPOR 유럽학회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자리였으며, 앞으로 국내에서도 이런 논의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