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사업화, 3가지 치명적 함정과 실전 해법

● DYPrime과 함께하는 지속성장 전략 인사이트

▲김 도 균<br>디와이프라임 대표
▲김 도 균
디와이프라임 대표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은 인공지능(AI), 로봇 수술 등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여전히 고전하는 기업이 많다. 화려한 기술과 언론 보도 뒤에는, 매출이 ‘제로’에 가까운 채 수년째 정체된 기업들이 존재한다.
왜 이런 비극이 반복될까? 필자가 지난 20년간의 협업 경험과 그리고 연구자이자 컨설턴트로 250개 이상의 의료기기 기업의 사업화를 지원하며 목격한 실패의 본질은 기술력의 부족이 아니다. 기술과 시장 성공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사업화 전략’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다.
이 글에서는 의료기기 기업들이 사업화 과정에서 흔히 빠지는 3가지 치명적인 함정을 짚고, 이를 극복하는 실전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기술적 완벽주의에 갇혀 시장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대부분의 의료기기 스타트업은 “기술이 곧 성공”이라는 신념에 사로잡힌다. “세계 최초 구현”, “기존 제품보다 20% 더 정확” 같은 기술적 우수성과 품질에 집중한다. 하지만 시장은 기술의 우수성이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경제적 가치에 비용을 지불한다.
필자가 컨설팅한 사례 중, 기존 제품으로도 충분한 시장에서 불필요한 고정밀 기술을 추구한 고정밀 심전도 기기 B사, 의사의 법적 책임 우려를 해소하지 못한 AI 당뇨 예측 솔루션 C사는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이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의료진의 불만 사항(Pain Point)과 구매의사 결정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시장 검증의 부재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사업화 전략 프레임워크 ‘5단계의 시장 적합성(5-Stage Market Fit)’ 적용을 제안한다.
의료기기 사업의 성공은 기술 검증이 아니라 시장 검증에서 시작된다. 핵심은 기술 개발보다 문제 검증을 선행하는 것이다. 기술을 개발하기 전, 최소 20명 이상의 의사나 구매 담당자 등 타깃 고객과 직접 인터뷰를 진행해 “이 문제를 해결하면 얼마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고객의 립서비스가 아닌 실제 구매 의사 사이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경제성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적 우수성보다 ROI(투자 대비 절감 효과) 계산 모델을 구축해 병원 재무팀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초기 시장 진입을 위해 보험 수가 코드 확보 가능성을 검토하고, 차선책인 비급여 또는 선별급여 진입 전략까지 함께 분석해야 한다.
실제로 AI 영상진단기기 D사는 개발 전, 3개의 대학병원과 “판독 시간 30% 단축 입증 시 정식 도입”이라는 조건으로 파일럿 계약을 체결했다. 경제적 가치를 선 판매한 이 전략으로 D사는 조기에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인허가를 ‘골인 지점’으로 착각하고 급여 전략을 놓친다
많은 창업자가 식약처나 FDA 인허가를 사업의 ‘골인 지점’으로 간주하지만, 인허가는 단지 ‘경기장 입장권’일 뿐이다. 진짜 경기, 즉 실제 매출은 인허가 이후 급여(수가) 확보 단계에서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식약처 허가 후 신의료기술평가와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거쳐 병원 구매까지 평균 3년이 소요된다. 미국 시장 역시 FDA 승인 후 CPT 코드(수가 코드) 확보와 Payer Coverage(보험사 보장) 과정을 거치며 평균 3.5년이 걸린다. 이 기간을 단축하지 못하면 자금이 소진돼 기술을 사장시킬 수밖에 없다.
이 함정의 해법은 인허가와 급여 등재를 동시에 준비하는 통합 로드맵(Post-Approval Acceleration)이다.
인허가와 급여 등재는 동시 준비돼야 한다. 임상시험 설계 단계부터 급여 등재 요건을 반영하고, 허가 심사 중 신의료기술평가에 필요한 유효성 및 경제성 입증 데이터를 병행 수집해야 한다. 허가 직후 즉시 급여 신청으로 전환해 전체 기간을 6개월 이상 단축해야 한다.
미국 시장 진출을 고려한다면, FDA 승인 6개월 전부터 CPT 코드 전략을 수립하고, 주요 보험사(Payer)와 사전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CPT 코드가 없는 FDA 승인 제품은 팔리지 않는다.
또한 병원 구매의사 결정에 핵심적인 가치 분석 위원회(Value Analysis Committee, VAC)의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의료진만이 아니라 재무팀 설득이 필수적이다. ROI 데이터를 준비하고 기술 우수성 60%, 경제성 40%의 비중으로 VAC 발표 자료를 구성해야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국내 시장만 바라보고 글로벌을 뒤로 미룬다
“일단 한국에서 성공하고, 해외로 나가자”는 접근은 가장 비싼 실수다. 한국 시장은 전 세계의 2%도 되지 않는다. 이 규모로는 막대한 R&D 비용 회수와 지속적인 투자가 어렵고, 글로벌 투자(VC) 유치 시 기업 가치(Valuation)도 현저히 낮아진다.
더 큰 문제는 뒤늦게 글로벌 진출을 시도할 때 발생한다. 국내 규격에 맞춰 개발된 제품을 FDA나 CE MDR 요구사항에 맞추기 위해 수십억원의 추가 비용과 2~3년의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기업은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표준을 지향하는 ‘본글로벌(Born Global)’ 전략을 실행한다. 제품 개발 시작 단계부터 IEC 60601, IEC 62304, ISO 10993 등 국제 표준을 반영하면, 후기에 재설계하는 것보다 수십 배의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FDA와 식약처 허가를 병렬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핵심이다. 임상시험을 다국가 임상으로 설계해 하나의 데이터 세트를 한국·미국·유럽 동시 신청에 활용하면 승인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 AI 의료영상 분석 기업 I사는 이 전략으로 경쟁사 대비 1.5년 빠르게 시장에 진입해 성공적으로 출시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없으므로, 미국 시장을 보상 중심, 한국 시장을 초기 레퍼런스 중심으로 우선순위에 두고, 현지 유통 경험이 풍부한 전략적 파트너를 확보해야 현지 시장 진입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사업화는 과학이자 예술이다
기술 개발은 과학이지만, 사업화는 과학이자 예술입니다. 성공 기업은 기술 개발과 동시에 시장 검증을 진행하고, 인허가를 종착점이 아닌 통과점으로 인식하며, 처음부터 글로벌 관점에서 제품을 설계한다.
의료기기 시장은 ‘선도자(First Mover)’가 시장의 대부분을 선점한다. 단 6개월의 지연도 당장에는 영향이 없을 수 있지만 글로벌 경쟁에서는 손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각자의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 △당신의 제품을 실제로 구매할 고객이 다섯 명은 있는가? △검증할 파트너는 있는가? △허가 후 첫 매출까지 구체적 로드맵이 세밀하게 마련돼 있는가? △FDA나 CE 승인 계획, 현지 파트너십 전략이 구체적으로 준비돼 있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면, 지금이 바로 전략을 재정비할 골든타임이다. 기술의 우수성을 넘어 사업화 전략으로 비즈니스 생태계를 함께 이해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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