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투명성·노후장비 안전성·필수의료기기 공급 등 개선 과제 부상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가 지난달 31일, 약 3주간의 일정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10월 14일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을 시작으로, 17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 22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보건의료연구원 등 주요 보건복지 기관에 대한 감사가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이번 국감은 제약, 의료인력, 복지정책 등 다양한 현안을 다뤘다. 그중에서도 의료기기 제도 개선의 필요성 역시 꾸준히 제기되며, 산업 전반의 제도적 보완 방향이 조명됐다.
의료기기 분야에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쟁점은 14일 복지부 국감에서 제기된 의료기기 유통구조였다. 김남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병원과 특수관계에 있는 간납회사가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의료기기 유통구조에 대한 전면 조사를 촉구했다. 병원장 또는 그 가족 등 특수관계인이 설립한 일부 간납회사가 공급업체로부터 저가로 납품받은 의료기기를 병원에 고가로 판매하며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일반 간납회사의 평균 이익률이 3% 수준인데, 특수관계 간납회사는 그 10배에 달하는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공정위·국세청과 합동조사를 통해 불법적 거래 구조를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복지부 정은경 장관은 “합동조사 방안을 검토하는 동시에 간납회사를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도 병행하겠다”고 답했다.
같은 자리에서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도 의료기기 유통의 독점 구조를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상급종합병원 중 1개 의료기기 도매상의 공급 비율이 90%를 넘는 곳이 2024년 기준 25개로, 이는 의약품의 세 배 수준”이라며 “특히 사립 상급종합병원에서 이런 의료기기 독점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기기법에는 약사법과 달리 ‘특수관계인 거래 제한’ 조항이 없어 병원이나 그 가족이 도매상을 설립해 독점 공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이어 “리베이트와 불공정 거래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내재돼 있다”며 “복지부는 실태조사와 함께 의료기기법 개정을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유통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은경 장관은 “법안을 통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며, 조사 방안을 포함해 제도 개선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17일 심평원 국감에서는 특수의료장비의 노후와와 정보 비공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최보윤 의원(국민의힘)은 “CT와 MRI 등 특수의료장비 8,411대 중 약 38%가 10년 이상 사용된 노후 장비”라며 영상 품질 저하와 방사선 피폭 위험을 우려했다. 그는 심평원이 장비 수량만 공개하고 제조연도나 성능(스펙) 정보는 비공개로 유지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국민이 병원 선택 시 장비 상태를 알 수 있도록 정보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강중구 심평원장은 “장비 스펙에 대한 관리 방안을 검토하겠으며, 노후 장비에 대한 차등 수가 적용도 제기돼 학회·병원협회와 협의 중이다”고 답했다.
또한 최 의원은 AI·디지털치료기기의 임시등재 제도의 관리 미비를 함께 지적됐다. 그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잦은 디지털기기의 특성상, 등재 당시와 다른 버전이 사용될 수 있다”며 지속적인 품질 검증과 투명한 모니터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강중구 원장은 “AI·디지털 기기 사용이 빠르게 늘고 있어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한 사후관리의 중요성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AI·디지털 기기에 대한 수가 산정 기준이 논의되는 만큼, 용역을 통해 적정 수가 산출 방안도 마련 중”이라고 덧붙였다.
21일 식약처 감사에서는 필수의료기기의 제도적 기반과 인력 확충 문제가 다뤄졌다. 전진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인공심장판막, 인공호흡기 등 생명유지 필수기기의 공급 중단이 늘고 있다”며 필수의료기기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제도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해당 기기의 수가가 원가 수준이고, 원자재·물류비 상승과 환율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공급 유인이 약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오유경 식약처장은 “의약품에는 필수의약품 지정 및 안정 공급을 위한 제도가 있지만 의료기기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필수의료기기 제도는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식약처의 인력 부족 문제를 언급하며 “제약·바이오헬스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K-바이오·의료기기의 허가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식약처의 전문 심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296명 증원 계획의 추진 상황을 질의했다. 이에 오 처장은 “대통령께서도 직접 추진 의지를 밝힌 만큼, 행정안전부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답했다.
22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및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 감사에서는 의료기술 선진입과 재평가 제도의 사후관리 문제가 거론됐다. 김윤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재평가 결과, 권고하지 않는 기술로 분류된 의료기술이 여전히 비급여로 사용되면서, 지난 6년간 약 1조원이 낭비됐다”며, “재평가만 하고 사후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선진입 제도를 통해 도입된 97개 기술 중 평가 종료 비율이 26%에 불과하다”며 “선진입 승인 단계에서 ‘몇 명의 환자에게, 얼마 동안 근거를 수집한 뒤 평가한다’는 조건을 명시하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보의연 이재태 원장은 “지적에 공감한다”며 “실사용 근거 중심으로 평가 연계가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복지부 김국일 보건의료정책관은 “재평가 결과의 활용 체계가 미비한 만큼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국정감사는 의료기기산업이 직면한 다양한 제도적 과제를 드러냈다. 유통의 투명성, 노후 장비의 안전성, 필수의료기기 공급 안정성, 혁신기술의 사후관리까지, 산업의 지속성과 국민의료 안전을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함을 확인한 자리였다. 의료기기산업이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경쟁 속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만큼, 이번 국감에서 논의된 사항들이 지속 가능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