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경도인지장애 DTx ‘코그테라’의 글로벌 전략
● KMDIA 회원사 CEO 인터뷰 – 이모코그 노유헌 대표
| 국내 최초로 식약처 허가를 받은 경도인지장애 디지털치료기기(DTx) ‘코그테라’가 9월부터 의료현장에 진입한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치매는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다. 환자와 가족의 삶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는 만큼, 새로운 치매 치료 옵션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 개발 그 이상을 의미한다. 이모코그가 개발한 ‘코그테라’는 환자와 보호자가 체감할 수 있는 임상 효과를 입증했으며, 독일과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 준비하고 있다. 본지는 이모코그 노유헌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회사의 도전 과정과 디지털치료기기산업이 지닌 가능성과 의미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
치매 전 단계, ‘해줄 게 없다’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서울대학교 의대 정신과학 이준영 교수(이모코그 공동대표)의 이 말이 이모코그 창업의 출발점이었다.
노유헌 대표와 이준영 대표는 10여 년간 치매 연구를 함께 해온 동료였다. 당시 경도인지장애(MCI)는 치매로 이행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치료 옵션이 사실상 전무했다. 환자에게 권할 수 있는 건 “책을 읽어라”, “일기를 써라”는 정도였다. 보호자 동반 없이 병원을 찾기 어려운 고령 환자들에게 인지 중재 치료는 실천조차 힘든 방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 비대면 환경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다. 65세 이상 노인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이미 90%를 넘어섰고, 영상통화도 보편화됐다. 이들은 “이제는 고령자도 디지털 환경에서 인지 훈련을 받을 수 있겠다”는 설득력을 얻었다. 이 시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민석 위원장과의 인연으로 ‘내 손안의 치매 의사’라는 기획이 탄생했고, 이는 창업의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노유헌 대표는 “당시에는 항체 치료제조차 없었고, 생활습관 관리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인지중재치료가 치매 발병을 늦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기에, 이를 디지털로 옮기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국내 최초 허가 MCI DTx, ‘코그테라’
‘코그테라(Cogthera)’는 지난 5월 국내 최초로 식약처 허가를 받은 MCI 디지털치료기기로, 치료의 핵심은 ‘메타 기억 훈련’이다. 무작정 단어를 외우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억 전략’을 알려주고 사용자가 스스로 효과를 확인하도록 설계돼 있다. 예를 들어, 앱이 ‘앞치마’라는 단어를 제시하며, 단순 암기가 아닌 개인적 경험과 연결하도록 유도한다. 사용자가 “어머니가 앞치마를 두르고 된장찌개를 끓여주셨다”는 식으로 회상하면, 단순 단어가 아닌 맥락 있는 기억으로 뇌에 저장된다. 이어 앱이 “조금 전에 어떤 단어를 기억했나요?”라는 질문을 던져 사용자가 전략의 효과를 체감하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사용자는 단순히 외운 단어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정보에 ‘집중’하고 관련 개념을 ‘연상’하며 기억 간의 의미 있는 ‘연합’을 형성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억력을 강화한다.
효과는 임상 결과로 입증됐다. 국내 다기관 확증임상(DREAM Study)에서 12주간 훈련 후 알츠하이머 인지기능 평가척도(ADAS-Cog14)가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 언어·기억 등 주요 인지 영역이 향상됐고, 사용 순응도는 85%에 달했다. 탈락률은 4%에 불과했다.
초기에는 일반 앱처럼 화려한 UI를 적용했으나, 실제 고령 환자들은 버튼 하나조차 제대로 누르지 못했다. 이모코그는 과감히 모든 버튼을 없애고 ‘음성 기반 대화형 UI/UX’를 도입했다. 환자는 기기에 말을 걸고, 기기는 질문·단어·상황을 제시하며 훈련을 이끈다. 난이도는 환자의 수행 능력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된다. “전 세계 처음으로 인지장애 환자를 위한 UI/UX를 설계했다”는 것이 노 대표의 설명이다.
가격과 접근성, 환자를 우선하는 전략
이모코그는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낮췄다. 노 대표는 “시작이 ‘환자에게 해줄 게 없다’였는데, 비싸게 받을 수는 없었다”며 “의사들도 ‘부담 없는 가격’이어야 환자에게 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처럼 국가 전액 급여 지원을 받는 구조는 아니지만, 국내 현실에 맞춰 접근성을 우선했다. 이모코그는 가격 장벽을 낮춰 ‘많이 쓰이게 하는 것’이 곧 시장 확대 전략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국내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200만명 이상이지만, 병원을 찾는 이는 30만명에 불과하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이모코그의 목표다.
글로벌 시장 도전, CE 인증과 독일 ‘디가’ 진입
이모코그는 2022년 독일 법인 ‘Cogthera GmbH’를 세우고 CE-MDR 인증을 획득하며 유럽 진출 기반을 마련했다. 현재 독일 보험등재(DiGA) 절차를 위한 임상을 마무리하고 있으며, 오는 9월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내년 초 성공적으로 등재될 경우 MCI 디지털치료기기로는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드문 성과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독일은 사이버보안 규정상 6자리 이상의 비밀번호 입력을 요구했는데, MCI 환자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노 대표는 “작은 디테일 하나가 환자 접근성을 막는다. 결국 환자 눈높이에 맞추는 게 의료기기 설계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제도적 과제와 국내 디지털치료기기의 경쟁력
코그테라는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를 거쳐 지난 7월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됐다. 그러나 노유헌 대표는 “통합심사가 다른 시장 진출 트랙에 비해 실질적 이점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동의서 구득, 의료기관 요건 등 절차가 복잡한 데 비해 실제 현장 도입 시기는 크게 앞당겨지지 않았다”며 “독일처럼 임시 등재로 환자가 바로 쓸 수 있게 하고, 기업은 1년 안팎의 기간 내 리얼월드 데이터(RWD)를 확보하게 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했다. “경도인지장애, 호흡 재활, 심장 재활처럼 임상의들이 직접 창업해 만든 디지털치료기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한국은 표준치료와 융합할 수 있는 이상적인 제품이 많다”는 설명이다.
치매를 넘어 새로운 영역으로
이모코그는 코그테라 외에도 호흡 재활 DTx ‘이지브리드’를 허가받았으며, 올해 안에 심장재활 DTx도 추가 허가를 앞두고 있다. 심장질환 환자가 집에서 심전도·심박수·산소포화도를 측정하며 운동 처방을 받도록 설계됐다.
장기적으로는 ‘코그 체크(CogCheck)’라는 플랫폼을 통해 조기검진–치료–재활까지 전주기 관리 체계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AI와 파운데이션 모델 도입도 본격화됐다. 이모코그는 관련 스타트업을 인수해 기술을 확보했고, 내년 중순 베타 버전을 공개할 예정이다.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기업공개(IPO)도 준비 중이다.
노유헌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디지털치료기기는 5년 안에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힘들어 보여도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키워야 한다. 한국의 기술은 이미 세계적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모코그의 ‘기억이 피어나는 기술’은 이제 막 여정이 시작됐다. 코그테라는 단순한 의료기기를 넘어, 환자와 가족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으며, 한국 의료산업에도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