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의 정신·신경계 디지털치료기기 상용화와 글로벌 진출 전략

● KMDIA 회원사 CEO 인터뷰 – 주식회사 하이 김진우 대표

주식회사 하이 김진우 대표
서울 낙원상가 인근, 악기로 가득한 거리에 자리 잡은 스타트업 ‘하이’는 다소 의외의 장소에서 첨단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진우 대표는 “이 근처에서 의료기기 스타트업을 찾기는 쉽지 않다”며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현역 연세대학교 교수로서 32년간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을 연구해 온 김 대표는, 현재 AI 기반 디지털 바이오마커 기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본지는 하이 김진우 대표를 만나, 기술 기반 창업 배경과 디지털치료기기의 개발 과정, 제도적 한계, 그리고 글로벌 진출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HCI에서 의료 AI로, 기술기반 디지털치료기기의 시작
김진우 대표가 설립한 ‘하이(HAII, Human-AI Interaction)’는 2016년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교원 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했다. HCI 전문가로서 ‘사람들이 기술을 쉽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돕는 것’을 연구해 온 김 대표는 자연스럽게 ‘AI를 일상에서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의료 분야로 확장했다.
“의료 AI 분야는 기술 기반의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우리는 단순히 진단을 돕는 AI가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바이오마커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디지털 바이오마커란, 기존의 전통적 바이오마커(혈액, 소변, MRI 영상 등)처럼 특정 질환이나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이지만, 디지털 기술을 통해 수집된 생체 신호나 행동 정보에 기반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이는 스마트폰의 주요 센서(마이크, 카메라, 터치스크린)를 활용해 정신·신경계 질환의 상태를 정량화하는 다양한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알츠가드’(Alzguard, 치매 및 경도인지장애 관리) △‘리피치’(Repeech, 뇌졸중 후 언어·인지·삼킴 기능 회복) △‘엥자이렉스(Anxielax, 불안·우울 증상 완화) △’리해브‘(Rehave, 근감소증 및 만성 근골격 질환 관리) 등 4종의 디지털치료기기 및 서비스를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불안’을 수치로 보여주는 앱, 그리고 치료 효과로 확장된 기술
하이의 대표 솔루션인 ‘엥자이렉스’는 이름처럼 Anxiety(불안)와 Relax(이완)의 합성어로, 불안을 완화하는 목적의 AI 기반 앱이다. 이 제품은 △의료기기로 식약처 허가를 받은 치료형(T) △진단과 모니터링 목적의 서비스형(D, M)으로 구성된다.
그중 엥자이렉스M인 ‘마음첵’은 사용자가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43초간 얼굴을 촬영하면, 원격 광혈류측정(rPPG) 센서를 통해 불안, 스트레스, 우울감 수준을 측정해 준다. 현재까지 130만명 이상의 데이터를 통해 검증됐으며, 특히 정신과 방문을 꺼리는 사용자들이 자가 인지 도구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엥자이렉스T’는 지난 4월 식약처 허가를 받은 디지털치료기기로, 범불안장애를 개선하기 위한 솔루션이다. 수용전념치료(ACT)와 자기조절이론(Self-regulation theory)에 기반한 자기대화(Self-talk) 훈련프로그램을 모바일 앱 형태로 제공해 범불안장애 환자의 불안감을 완화시킨다. 10주간의 임상 연구에서 불안, 걱정, 정서적 웰빙 지표가 유의미하게 개선 효과를 나타냈으며, 현재 보험수가 적용도 검토되고 있다.

임상 4년, 수가의 벽, AI 기반 디지털치료기기의 한계
디지털치료기기 분야는 비교적 새로운 영역으로, 의료기기 허가 및 수가 적용까지 오랜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 김 대표는 “엥자이렉스의 임상시험에만 4년 걸렸다”며, 탐색 임상 2회, 확증 임상 1회를 모두 회사 자체 인하우스 임상 조직을 통해 수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와 의정 갈등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겹쳐 피험자 모집과 임상 일정 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큰 현실적 장애물은 ‘수가’다. AI 기반 의료기기는 국내 제도상 유일하게 비급여에도 수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영역이다. 문제는 이 상한선 자체가 현실적인 제품 개발 비용이나 서비스 단가를 반영하기엔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다.
“국가 재정 부담을 고려할 때 무작정 수가를 높일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 다만, 정신건강 영역처럼 병원 방문 자체가 큰 허들인 분야는 원격 진료와 처방을 연계해 낮은 수가라도 실사용을 확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김 대표는 이런 점에서 원격 진료와 ‘시장 즉시진입 제도’의 조속한 도입이, 낮은 수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사용 데이터를 빠르게 축적함으로써, 디지털치료기기의 현실적 활성화를 이끄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진출을 위한 전략적 행보
하이는 현재 국내에서 4가지 디지털치료기기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미국, 일본, 중동 등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치료기기 3종은 미국 대학병원과 공동 임상을 통해 글로벌 검증을 받고 있다. 리해브는 메사추세츠주립대학과, 리피치는 플로리다 주립대와 하버드 의대와 협력하고 있다. 웰니스 서비스인 엥자이렉스D도 일본 및 중동 시장 진출을 위해 활발히 협의 중이다.
“미국처럼 의료비용이 높은 국가에서는 AI 기반의 디지털 바이오마커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위해서는 뇌 PET-CT 검사가 필요한데 검사 비용이 매우 비싸고 대기기간도 길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선별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수요가 높다”
하이의 치매 및 경도인지장애 관리 솔루션 ‘알츠가드’는 이런 뇌 PET-CT 검사 전 선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최근 학회지에 제출된 임상 결과에 따르면 약 75%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뇌 PET-CT 촬영 대기만 6개월, 미국은 수년까지 걸리는 상황에서, 고비용 검사를 받기 전 선별도구로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상 속 건강관리로 이어지는 기술의 가치
하이의 기술은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도 일상에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자가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현재 개발 중인 ‘대사증후군 디지털 바이오마커’는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세 가지를 동시에, 스마트폰 하나로 42초 만에 측정할 수 있는 시제품까지 구현된 상태다.
김진우 대표는 “기존보다 정밀도는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자신의 건강 트렌드를 파악하고 꾸준히 관리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설명하며, 이런 방식이 보다 보편화되면 질환 예방과 자가 건강관리, 더 나아가 국민 의료비 절감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병원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넘어 ‘사용자 곁’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메시지다.

▲하이의 엥자이렉스
▲하이의 엥자이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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