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국 제8대 협회장의 리더십 여정과 미래를 여는 산업 제언
● 역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 인터뷰–이경국 제8대 협회장(신한씨스텍 대표)
| 지난달, 신한씨스텍 사무실에서 마주한 이경국 제8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은 인터뷰 시작부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의료기기산업을 넘어 피부미용 분야까지 확장한 신사업 구상을 설명하며, “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순한 명예직 퇴임자가 아닌, 여전히 현장을 누비며 시장을 움직이는 ‘실행자’로서의 모습이었다. 협회장 재임 당시 10년 이상 쌓아온 봉사의 연속선상에서 출발한 그의 리더십은 소통과 공감, 균형과 조율을 통해 협회의 체질을 바꿨다. 제조-수입외투의 균형 구조와 4차산업특별위원회의 신설은 산업의 방향을 재정립한 전환점이었다. 특히 본지 ‘블루스카이’ 지면에 기재된 ‘소통과 화합, 공감과 성장’이라는 문구는 그의 리더십 철학이자 협회 운영의 중심축이었다. 본지는 그의 리더십과 협회 운영의 전환점을 짚고, 그가 전한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미래 비전을 함께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협회를 향한 첫걸음, 봉사에서 시작된 리더십
이경국 전 협회장이 제8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직을 맡게 된 계기는 단순한 제안이나 정치적 고려가 아니었다. 그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협회 내에서 다양한 직책으로 활동하며 산업계와 협회의 틈을 좁히는 데 헌신했다. 이사, 윤리위원장,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며 자연스럽게 협회의 사정을 몸으로 익힌 그는, “봉사하다 보면 이 산업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 진다”고 강조했다.
협회장이 된 이후 그는 특히 제조업체의 협회 참여를 독려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 제조업체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미진하던 협회 운영 구조에 균형을 도입했다. “산업의 세 축인 제조사, 수입사, 외투 기업을 각각 33% 비율로 대표하도록 하자”는 구상을 실현에 옮긴 것이다. 그는 이 세 주체의 상생을 위해 이사 구성부터 철저히 3분할 해 각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균형 있게 반영되도록 설계했다.
그는 협회 내부 조직 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직원들과의 면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신년회 자리에서 전 직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서별 목표와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이를 협회 운영에 반영했다. “소통과 화합, 공감과 성장이란 슬로건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는 회고했다.
‘합의의 리더십’으로 풀어낸 조직의 균형
이경국 전 협회장은 리더십 철학을 묻는 질문에 “합의점을 찾는 것”이라 답했다. 그는 협회를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보며,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대변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율하고 타협점을 찾는 데 힘썼다.
그는 협상 능력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협회 내부 직원은 물론, 산업계, 정부, 학계와의 모든 접점에서 협상은 기본 기술”이라는 철학으로 직원 교육도 병행했다. 직원들에게는 “협상을 잘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며, “가까운 친구와도, 가족들과도, 상사와도 협상은 기본”이라는 말을 종종 전했다고 한다.
이런 협상 철학은 단순한 이론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각 상황에 맞춘 대응과 유연한 소통을 통해, 조직 내 신뢰를 구축해 나갔다. 정형화된 면담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제기된 의견들도 유심히 살피며 협회의 운영 방향에 실질적으로 연결시킨 점은 그의 리더십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4차 산업혁명과 미용의료기기의 도약
이경국 전 협회장의 재임 기간은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이 의료기기산업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는 이를 계기로 협회 내에 4개 분과(AI, 빅데이터, 3D프린팅, 로봇)로 구성된 ‘4차산업혁명의료기기특별위원회’를 신설했다. 의료기기산업은 타 산업보다 기술 적용 속도가 빠르다는 판단 아래, 그는 선제적으로 이런 기술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을 갖추고, 기업들의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하고자 했다.
특히 뷰노, 루닛 등 4차 산업 기반의 스타트업을 협회로 유입시켜 산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것도 이 회장의 주도 아래 이뤄진 일이다. 그는 이들 기업이 협회를 통해 식약처와의 공식 접점을 마련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얻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또 하나의 중대한 변화는 미용의료기기의 부상이다. 미용·피부 시술을 목적으로 한 레이저, RF, 초음파 기반 장비들이 국내외에서 시장성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식약처에는 미용 목적 의료기기를 명확하게 분류하거나 미용 목적에 특화된 허가 체계가 미비했다. 이 회장은 청와대 경제수석 회의에서 의료기기 수출의 성장 가능성이 언급된 것을 계기로, 미용의료기기 분야 또한 정부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미용의료기기특별위원회’를 출범해 관련 기준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정책 논의를 제기했다. 동시에 정부의 수출 전략과 맞물려 미용의료기기 분야의 시장 확대 지원에도 힘을 보탰다. 이런 흐름 속에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지에 복지부 의료기기 종합지원센터가 설립되는 등 수출 기반 강화 측면에서 성과가 나타났다.
정부와의 협력, 그리고 산업 생태계의 성장
이경국 전 협회장은 정부와의 협업에서도 인상 깊은 사례를 다수 남겼다. 대표적으로 공급내역 보고제도 도입 당시, “업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행 시점을 최대한 연기하고, 공급금액·단가 항목은 제외해 달라”며 복지부와 끈질기게 협의했다. 이 외에도 코로나19 시기 진단 검사 수가가 책정되고, 대구 지역에 생수 등 물품이 지원되는 등 긴급 대응에서 협회의 실무적 역할이 두드러졌다. 진단키트 수출과 관련해서도 업계와 정부 간 소통에 기여하며 지원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그는 협회 전략에 ‘오픈이노베이션’을 처음으로 도입해 주요 기치로 내세웠다. “산업계와 사용자(병원) 간의 소통을 통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지원하는 체계적인 구조를 만들자”는 구상은 산업 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 회장은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과 MOU를 체결하고 기업들과 연결해 혜택이 돌아가도록 분주히 움직였다.
“관계를 끝까지 지키는 태도가 협회를 이끌고 산업계를 연결하는 진짜 동력이라고 믿는다” 이경국 전 협회장은 “의리와 정이 결국 산업을 움직인다”고 강조했다. 한 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자 인생철학이기도 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조언과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미래
차세대 리더들에게 이경국 전 협회장이 전한 조언은 명료했다. “5년을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하라. 그러면 평생을 먹고 산다” 그는 자신이 내시경, 미용의료기기 등 신기술을 국내에 도입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의료기기를 잘 알기 위한 치열한 학습 덕분이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협회의 향후 방향성에 대해서는 “국내 의료기기산업도 자생 능력이 생기려면 ‘굵직굵직’한 회사들이 협회를 이끌어야 한다”며, ‘제조사가 주도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하드웨어 중심의 기존 의료기기 영역보다는 AI, 디지털 헬스케어 등과 같은 분야에서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내다봤다. 이런 변화들이 결국 협회가 국내 제조 기업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정립해 가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이경국 전 회장이 남긴 경험과 메시지는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보다 주체적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되새겨야 할 현실적 조언이다. 앞으로 협회는 글로벌 흐름에 부응하는 전문성과 민첩성을 갖추는 동시에, 국내 제조사가 중심이 되는 체계를 통해 산업의 자생력을 더욱 공고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