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협회 설립해 산업계 구심점 마련, 이제 AI 기술은 필수
● 역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 인터뷰 – 이창규 제1대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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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국내 의료기기산업은 성장과 함께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업계는 분열돼 있었고, 규제 체계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품목은 수입품에 의존하며, 국산 의료기기 개발과 제조업의 성장은 더딘 상황이었다. |
협회 설립의 필요성, 분열된 산업을 하나로
1986년 의료기기 업계에 발을 들인 이창규 회장은 초기부터 산업 내 구조적 문제를 인식했다. 현재와 같이 수입·제조업을 망라해서 당시 의료기기 업체들은 각각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를 대표하거나 산업계를 위해 한목소리로 대변할 단체가 부재했다. 당시 제조업체가 참여하는 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이 존재했으나, 이는 중소기업의 공동 구매나 판매를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뿐, 실질적으로 산업 규모 성장과 의료기기 품질 향상을 견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의료기기법이 생기기 전에 국내 제조업 기반은 매우 미약했고, 시장은 대부분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었다. 국산 의료기기 생산을 늘리고, 규제기관과 협력하며 업계의 목소리를 전달할 단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창규 회장은 국내 제조업의 기반이 취약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여러모로 부족하고 미흡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단체가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초기 도전과 설득, 협회 설립을 위한 여정
1998년, 이창규 회장은 협회 설립의 필요성을 업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 반응은 냉담했다. 업계 리더들조차 협회 설립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불필요한 시도로 여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도 드는데 왜 굳이 그런 일을 하냐’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업계의 발전을 위해선 반드시 협회가 필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는 업계 리더들과 의견을 나누며 협회의 필요성을 설득했고, 그때 이성희 전 협회장(4대 협회장)이 크게 공감하며 협회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업계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협회의 설립과 운영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정부와의 협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당시 식약처는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의료기기 관련 규제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분리·신설된 조직이었고, 규제 경험이 부족한 상태였기에 협회가 업계를 대변하며 규제 당국과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 회장은 1년 이상 매주 방문하고 논의하면서 식약처 산하에 협회를 설립해야 하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신뢰를 쌓아갔다.
이창규 회장의 노력은 결국 1999년 7월 8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식약처의 1호 법인 허가를 받으며 결실을 봤다.
협회의 자립과 성장, 회원사 확보와 재정 안정화
협회 설립 이후에도 난관은 이어졌다. 가장 큰 과제는 회원사 모집과 협회의 재정 안정화였다. 당시 의료기기시장의 90%는 수입업체가 차지하고 있었고, 제조업체는 극히 적었다. 회원사 모집이 쉽지 않았고, 운영 비용을 충당할 재정적 기반도 부족했다.
“발기인 총회를 열어야 했지만, 정작 총회에 참석할 사람이 없었다. 회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하며 업계 사람들을 협회로 끌어들였다” 이 회장은 업계 인맥을 총동원해 50여명의 초기 회원을 모집하며 협회 운영을 시작했다. 또한, 협회 사무실을 자신의 회사 공간에 마련하고, 초기 운영 비용도 개인 자금으로 충당했다.
이후 그는 협회의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 의료기기 수입요건 확인 업무를 협회가 맡을 수 있도록 식약처를 설득했다. “회비를 납부할 회원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수입요건 확인 업무를 통해 재정을 마련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 업무를 협동조합이 수행하고 있었지만, 협회가 수행할 수 있도록 설득했다” 결국 이 같은 노력들은 협회가 수입요건 확인 업무를 통해 회원사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는 예산을 확보하고 이후 안정적인 운영을 지원하는 데 기여했다.
국내 제조업의 도약과 국제 협력의 첫걸음
이창규 회장은 협회 설립 초기부터 제조업체와 수입업체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주력했다. 당시 국내 의료기기산업은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고, 협회 회원사 대부분이 수입업체였다. 그는 수입업체들에게 단순히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데 그치지 말고, 국내 제조업에 도전하고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특히 이창규 회장 스스로가 수입업을 하면서 디지털 엑스레이와 같은 첨단 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하고, 디지털 기술이 업계의 방향을 바꿀 것으로 예측하며 제조업체들에게 국산화와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외국 제품을 모방하더라도 기술을 이해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이창규 회장은 국제 협력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 JFMDA(일본의료기기연합회)와의 교류를 시작으로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처음에는 일본 협회의 구조를 배우며 교류를 통해 선진국의 사례를 학습하고,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그의 국제 협력 노력은 현재까지도 협회의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미래를 향한 비전, 지속 가능한 협회를 꿈꾸며
협회가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이창규 회장은 제조업 후임자에게 넘기며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했다. 그는 “협회장은 단순히 감투를 쓰는 자리가 아니다. 협회가 잘 자리 잡은 후에도 뒤에서 돕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며 회장직을 업계 동료들에게 넘기고 계속해서 회원 확대와 재정 안정화를 위해 관심을 기울여 후원했다.
이창규 회장은 의료기기산업의 성장을 확신하며, 특히 오늘날에는 인공지능(AI)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AI는 앞으로 의료기기산업을 완전히 혁신할 것이다. AI를 의료기기에 적용하려는 노력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차세대 리더들에게 AI 기술에 대한 이해와 활용을 강조했다.
이창규 초대 회장의 리더십과 실행력은 한국 의료기기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협회 설립을 통해 산업계가 한발짝 더 나아가는 구심점과 방향타가 됐고, 규제기관과 업계 간의 신뢰를 구축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회원사의 성공이 곧 협회의 성공이다. 협회는 회원사와 함께 성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협회는 항상 협력과 소통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의 오랜 경험 속에 녹아든 일성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귀 기울여 되새길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