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단기기ㆍ디지털헬스기기 성장하려면 법제도적 정비가 선행돼야
● 제17회 의료기기의 날을 기념하며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부회장
동방의료기 대표
지난 4월 실시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보며 앞으로 보건의료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살펴보고 의료기기 산업계가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할 과제를 모색하고자 한다.
의료기기의 주요 부처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있다. 복지부는 산업진흥정책과 함께 국민건강보험제도 운영을 겸해 치료재료에 관한 보험 수가를 관리하다 보니 직접적으로 가격과 관련된 정책을 운용한다. 식약처는 의료기기 사용·유통의 전반적인 관리를 통해 국민 안전을 지키고 필요할 경우 법적 권한을 통해 수거 검사 혹은 처분을 통한 공권력으로 기업의 법률적 제한을 행사한다.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보건의료 정책 방향은 인구 고령화로 따른 ‘돌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건강보험 급여 측면에서 보면 앞으로 중증 암 환자에서 노인성 만성질환 등으로 급여가 강화될 것이고, 산업 관점에서는 관련 제품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진단·진료를 위한 원격진단기기나 디지털 의료기기 수요가 늘어나고 이에 대한 급여 또한 새로운 시장에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런 변화에 앞서 법률적 제도적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
먼저 최근 현안으로 부상한 실손 보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제도 정비가 예상된다. 실손 보험이 의료의 진료량을 증가시키고 보험 재정을 위협하자 정부에서도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워낙 전문적인 분야라 많은 논란이 있지만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보험사와 병의원 그리고 환자가 3자 계약을 맺는 형태부터 실손 보험 관련 보험수가 연동이나 참조 가격제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다만 어떤 제도와 정책이 도입·시행되든 목적은 한 가지다. 건보재정을 지켜내고자 도덕적 해이가 있거나 불필요한 진료량을 통제하는 방법을 구체화할 것이고, 이는 최근까지 수혜 받은 제품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진료 전달 체계 역시 상당한 시장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다. 최근 의료사태로 인해 기본적으로 대학병원의 환자가 줄고 2차 종합병원이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주요 기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의료사태가 종료되면 이 같은 현상이 사라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지금의 변화가 긍정적인 만큼 이를 고착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가벼운 감기에도 대학병원을 찾았던 환자가 이번 의료사태로 인해 집 주변 2차 종합병원 혹은 전문병원을 경험한 입장에서 예전과 같이 무조건 대학병원을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더욱이 정부 역시 경증 환자가 대학병원으로 몰리는 폐해를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는 만큼 이를 제도화한다면 진료량의 상당 부분이 2차 종합병원 혹은 1차 병의원으로 이전·고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의료기기 업체의 준비도 필요하다. 이 밖에 현재 논란 중인 제도 가운데 하나가 피부·성형에 대한 비급여 의료행위를 계속 당연지정제 안에 두도록 하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의료대책 가운데 ‘혼합 진료’에 대한 개념이 등장한다. 일본의 경우 혼합 진료는 비급여와 급여에 대한 분리를 뜻하는 것으로 이를 두고 진료권 침해로 보는 주장과 환자의 경제적 부담과 적정한 진료량 통제장치로써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국내 의료기기 산업계는 힘든 봄을 맞이했다. 매출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병원이 대금 결제를 미루고 신규 공급계약도 최소화하면서 자금 압박과 함께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관계로 경영상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에 하나 의료사태가 지속된다면 연쇄적인 파산이나 부도 위험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지금의 어려움이 해결되더라도 이후 변화가 더 힘들 수도 있음을 고민해야 한다. 필수 의료와 관련된 여러 정책이 의료기기산업 생태계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인 보건의료정책과 수가 정비 등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의료기기 산업계의 입장과 목소리를 반영하기란 매우 요원한 일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급격한 정책 변화에 대응해 회원사의 입장을 정부에 전달하고 의료기기 산업계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 수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