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TPP에서의 누적원산지 규정 이해하기

[산업통상자원부_함께하는 FTA_2015년 11월 Vol.42]

지난 10월 5일(현지시각) TPP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세계 GDP 36.3%, 세계 교역 비중 25.8%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경제통합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최종 발효까지는 각 국의 국내비준 등 향후 1~2년의 시간 소요가 예상되는 마무리 절차가 남아있지만 오랜 협상 끝에‘최종 타결된 최초의 메가 FTA’라는 데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미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증명되었듯 복수국 간 FTA가 발효될 경우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바로 보다 긴밀한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GVC) 생태계의 형성 및 운용이다.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지구촌이 현실화되면서 대부분의 기업들 역시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했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최대한의 이익 창출을 위해 기업들은 생산활동을 여러 국가로 분산시켰고, 이 과정에서 GVC 역시 복잡해졌다. 이로 인해 관세의 납부와 양허에 직결되는 원산지 규정을 재정립하고 이를 검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부상했는데 이번 TPP에서는 바로 ‘누적원산지 규정(Cumulative Rules of Origin)’을 적용하게 된다.

TPP 누적원산지 규정의 이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기업의 글로벌화로 인해 한 국가에서 제품생산의 모든 공정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 되었다. 쉬운 예로, 미국의 애플(Apple Inc.)만 하더라도 핵심 기술에 대한 개발은 미국 본사가 담당하고 있지만, 주력상품 아이폰 같은 전자 기기의 부품 조달은 미국 외에도 한국, 일본, 대만, 독일, 프랑스 업체가 전담하며 최종 조립은 중국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쯤되면 아이폰을 세계산(産)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TPP는 바로 이러한 GVC를 12개 역내국 간에 인정해준다. 누적조항(accumulation)이라고도 불리는 누적원산지 규정은 생산공정의 모든 부분이 특정 한 국가(A)에서 이뤄지지 않고 FTA 역내 여러 국가(B, C, D)에서 같이 이뤄진다 해도 이를 최대한 A국가 원산지로 반영해준다. 쉽게 말해 역내국을 국내로 인정해주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역내 조달 수준을 일정 비율 이상만 유지하면 된다.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실례(實例)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 TPP 최종 타결까지 가장 큰 쟁점 중에 하나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로 대변되는 NAFTA국가들과 일본(A) 사이에서 팽팽하게 대립되었던 자동차 부품 역내 조달 비율이다. 최종 합의된 내용에 의하면 결국 55%라는 원산지 누적 기준이 확정 되었는데, 따라서 향후 일본은 자국산 차를 미국에 수출할 때에 완성차 부품의 55%를 TPP 가입국 안에서 조달해야 한다.(품목별로 역내산 비중의 충족 기준(비율)은 상이하다.)바꿔 말하면 그 동안 태국에 주요 생산거점을 마련해두고 있던 일본이 관세혜택을 위한 TPP 누적원산지 규정 활용을 위해 TPP 비참여국인 태국에서의 생산이나 한국에서의 부품조달 비율을 줄이고 TPP 참여국인 베트남(B)이나 말레이시아(C)에서의 생산이나 조달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적원산지 규정으로 인한 영향은 비단 자동차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전이나 섬유산업에도 TPP 누적원산지 규정이 깊게 관여되어 있다. 현재 한국이 수출하는 원사(原絲)나 각종 중간재 제품들도 TPP 누적 원산지 규정으로 인해 TPP 12개국 역내 소재 조달 방식으로 전환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한국에의 시사점
TPP에 가입하지 않은 한국에게 이러한 누적 원산지 규정은 분명 좋은 신호는 아니다. 한국의 대외무역에서 중간재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대하다. TPP로 인해 이 분야에 충격을 받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역시 중간재 수출에 강점을 보이는 일본이 TPP 누적원산지 규정 활용에서 보다 앞서갈 수 있다는 2연타도 예상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국간 자유무역협정과 경제블록화의 본 취지를 충분히 고려한다 해도 누적원산지 규정으로 인한 TPP 회원국 내 역내 수출 독식이 심히 우려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누적원산지 규정은 한·미 F TA , 한·EU FTA와 같은 우리의 기존 FTA에도 이미 포함돼 있어 규정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높다. 이 규정으로 인한 국내 일자리 유출이나 산업 타격도 당장 보다는 향후 5~10년 정도 긴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누적원산지 규정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TPP 역내국 내 중간재 공급자들 역시 제품마다 다르게 합의된 역내산 원산지 비율 파악을 우선하고 증빙서류 등을 준비해야 해 제도 시행 초반 행정적, 기술적 어려움 등을 경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걱정을 앞서 하기보다는, 타결된 중국, 베트남, 콜롬비아, 뉴질랜드와의 FTA를 조속히 발효시키고, TPP와는 대조적으로 우리가 시작부터 참여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주도적으로 역할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TPP가 최종 발효되기까지 향후 1, 2년간 기존 발효된 FTA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개정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한편 TPP 가입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TPP 참여국들과 비교해 우리의 무역제도나 그간의 경험이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취약분야인 농림축산 분야 등에 대한 준비만 잘 한다면 향후 TPP 가입에 큰 걸림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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