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tech를 보는 율촌의 눈 ④

'Getting to Yes'의 협상 원칙으로 대리점과의 소통ㆍ상생 방안 찾기

얼마 전 개최된 협회 윤리위원회 워크숍에서 의료기기 대리점 거래 관계에서 발생 가능한 컴플라이언스 이슈를 불공정거래 및 리베이트를 중심으로 살펴 보는 시간이 있었다. 대형 로펌에서 알차게 자료를 준비해서 좋은 강의가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업체 관계자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다. 

▲ 채 주 엽<br>법무법인 율촌 Medtech &amp; Bio팀 팀장 / 변호사<br>KMDIA 윤리위원회 부위원장
▲ 채 주 엽
법무법인 율촌 Medtech & Bio팀 팀장 / 변호사
KMDIA 윤리위원회 부위원장

필자는 이 강의를 지켜 보면서 대리점 관계와 관련해서 법적인 시각이 아닌 거래 상대방과의 협상 관점에서 업체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없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기고에서는 미국 유학 시절 저명한 경쟁법 교수이자 법경제학자인 피터 살롭(Peter Salop)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된 협상과 관련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 중 하나인 ‘Getting to Yes’라는 책에 나오는 협상의 원칙을 대리점 관계에 투영해 업체 관계자들에게 대리점과의 거래 관계에서 참고할 수 있는 협상 내지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소개하고자 한다. 

Harvard 로스쿨 협상 프로젝트 설립자가 쓴 Getting to Yes 내용 개관 

이 책은 Harvard 로스쿨 협상 프로젝트 설립자인 윌리엄 유리와 같은 학교 교수인 로저 피셔가 공동으로 집필한 책이다. 1981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벌써 40년이 넘은 책인데도 여전히 많은 협상 관련 교육 기관에서는 이 책을 최고의 교재로 평가하고 있다. 윌리엄 유리는 실제로도 수많은 협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 실무 협상가이기도 하다. 필자가 요약한 이 책에서 주장하는 협상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제와 사람을 분리해라. 둘째, Position에 집착하지 말고 Interest에 집중하라. 셋째, 상호 이익을 위한 해결책을 개발하되, 그 해결책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이하에서는 위 세 가지 원칙이 실제 대리점 관계나 대리점과의 분쟁에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문제와 사람을 분리하라

의료기기 수입업체인 A사의 주력 제품군에 대해 영남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독점 대리점 역할을 하고 있는 B대리점이 있다고 하자. B대리점 대표는 A사 대표의 고향 후배로서 A사에서 근무하다 독립해서 대리점을 차렸고, A사 대표로부터 도움도 많이 받아서 영남 지역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A사의 최대 경쟁사인 C사에서는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최근 영남 지역 병의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고, B대리점의 매출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이에 B대리점 대표는 영업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A사에서도 적극적인 마케팅을 해주거나 마진이라도 더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A사는 Compliance 이슈로 인해서 추가적인 마케팅은 어렵고, 매출 부진을 메꾸기 위한 마진 증대는 곤란하다고 대응하고 있다. 이런 협상 과정에서 A사 대표와 B대리점 대표 사이는 감정의 골이 깊어져서, A사 대표는 B대리점 대표는 배은망덕한 자라고 욕하고 다니기 시작하게 되고, B대리점 대표는 A사 대표를 탐욕에 눈이 먼 자라고 하면서 서로에 대한 험담을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다니게 된다. 그 험담들은 곧 서로의 귀에 들어 가게 된다. 이후 두 사람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져서 B대리점 사장은 홧김에 경쟁사 제품 복수 취급을 선언하고, A사 대표는 이를 괘씸하게 여겨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B대리점과의 계약 해지를 주장하게 된다. 이에 B 대리점은 변호사를 선임해 A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는 사태까지 가게 된다. 이로 인해 절호의 기회를 잡은 C사는 영남지역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되고, A사와 B 대리점은 모두 막대한 영업상 손실을 입게 된다. 

위의 가상 사례는 경쟁 제품 침투에 따른 수입업체과 대리점 간의 협상 과정에서 서로의 감정을 앞세울 경우 발생 가능한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이다. 필자는 사내 변호사 시절 이와 유사한 감정 대립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한 적이 여러 차례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한 조치는 사람과 문제의 분리이다. 예컨대, 회사 영업담당 임원과 대리점 대표사이에 극단적인 감정 대립으로 인해 공정위 제소 일보 전까지 간 상황에서, 필자는 우선 협상 당사자에서 회사 영업 담당자와 대리점 대표를 배제하고 법무 담당 임원과 대리점을 대리하는 변호사와의 만남을 추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협상 테이블에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서로의 이익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될 수 있었다. 

또한, 필자는 감정 대립관계에 있는 회사 담당자를 배제하고 상대방과 직접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때 제일 처음하는 일은 상대방이 회사 담당자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서 때로는 장단도 맞춰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협상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비즈니스로 넘어갈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과 사람을 분리하지 못해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 협상에서 아무리 극단적인 이해관계 대립이 있고, 끝내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사람과의 관계까지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결렬된 협상이라도 서로 간의 신뢰관계가 유지된다면 언제든지 협상이 재개될 수 있고, 향후 더욱 좋은 협력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과 의리를 앞장세우는 분들이 주의할 일이고, 본인이 그런 감정 컨트롤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제3자를 협상 당사자로 내세우길 권한다.

Position에 집착하지 말고 Interest에 집중하라

오랜 기간 의료기기 제조업체 대표를 지내고 퇴사해 해당 제조업체 대리점을 운영하는 D사장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최근 그 의료기기 제조업체 대표로 D사장보다 20여년 후배인 젊은 E사장이 부임했다. 특히, E사장이 신입사원 시절 D사장은 이미 그 업체 임원이었던 사이이다. 최근의 여러 가지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인해 제조업체와 대리점은 계약 조건 협상이 필요하게 되고, 이를 위해서 D사장과 E사장 간의 만남이 필요한 상황이다. D사장은 본인이 20여년 선배이고 E사장은 까마득한 후배이니 선배 대접을 기대했다. E사장은 본인이 D사장의 후배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제조업체와 대리점 관계는 갑을 관계이고, 본인은 갑인 제조업체의 사장이니 향후 계약 조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만남이 이뤄진다면 어떤 일이 먼저 발생할까? 우선 회의 장소부터 서로가 자신의 사무실이나 자신이 주도권을 점할 수 있는 장소를 회의 장소로 정하려고 할 것이다. 회의 장소에서의 자리 배치도 상당한 신경전이 예상되고, 회의 Agenda에 대한 발표 순서도 대립이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본 협상에 들어가기도 전에 불필요한 감정 대립이 생길 수 있다. 그런 대립은 최선의 협상 결과를 이끌어 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다. 한 사람은 인생 선배로서의 Position에, 또 한 사람으로서는 갑을 관계에서 갑으로서의 Position에 중점을 둔 결과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Position 싸움이 필요한 것일까? 제조업체나 대리점이나 모두 당면한 과제에 대해 최선의 해결책을 찾고 Win-Win하면 되는 것이지 Position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으려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대립도 Interest를 찾기보다는 Position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다 나오는 어리석음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제조업체/수입업체와 대리점 관계도, Position 다툼보다는 공통된 Interest를 찾으려고 하는 자세를 가질 때 더욱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상호 이익을 위한 해결책을 찾되, 그 해결책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를 것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고, Position보다는 Interest를 찾으려고 하더라도, 제조업체/수입업체나 대리점이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고 상대방의 이익을 무시한다면 협상을 통해서 서로 원하는 결과를 결코 얻을 수 없다. 

A와 B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1억원을 나눠가질 수 있는데, 분배 비율은 A가 정하고 이를 수용할지 말지는 B가 정하게 된다. 만일 A가 정한 분배 비율을 B가 수용하지 않으면 A와 B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게 된다. 분배 기회는 1번 뿐이다. 이때 A를 위한 최적의 분배 비율은 얼마가 될까? 경제적 이해만 따지면 A가 B에게 1만원이라도 주는 한 B는 무조건 이를 수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진행될까? 5천만원 대 5천만원이면 수용 확률은 사실상 100%이겠지만, 그 이외에는 A가 본인이 적게 가지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B가 이를 거절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상호이익에 대한 관점은 단순히 이익을 나눠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공정하게” 나눠어야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가 하는 협상은 1회의 제안 및 답변으로 결정되는 게임은 아니다. 따라서, 협상 과정에서 상호 이익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상호 간에 납득 가능한 객관적인 기준을 찾는 것이다. 특히, 공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부각된 작금의 세태에서 객관적인 기준 없이는 결코 상호 납득가능한 공동의 이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리점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종류의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제조/수입업체와 대리점 간의 상호 이익을 추구하되 객관적인 기준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객관적인 기준을 찾기 어렵다면, 경험 있고 노련한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아무쪼록 이 글이 대리점 관계로 인해 고민하시는 많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윌리엄 유 리와 로저 피셔의 명저인 ‘Getting to Yes’의 일독을 권한다.

※ 본 원고는 필자 개인의 견해로써 필자가 소속된 법무법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