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의료기기의 날 기념 특집기고

▲ 김 현 희<br>법률사무소 다감 변호사
▲ 김 현 희
법률사무소 다감 변호사

#사례1 : 3년전 H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던 Y간납사가 부도로 인해 18개 의료기기 업체(대부분 영세업체)가 2억원 이상 피해를 입었고, 당시 Y간납사와 거래했던 업체는 거래계약서를 체결했던 업체는 1개사, 납품에 대한 담보를 설정한 업체는 단 1개사도 없었다. 또한 세금계산서와 거래명세서 발행기간은 최대 36개월에서 최소 1개월이었으며 평균 6.5개월의 대금결제가 지연됐다. 특히 H병원과 의료기기사업체간 거래에서 Y간납사는 최고 35%까지 납품수수료를 요구했으며, 수수료율 평균은 5.7%~8.6%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엔 납품물건에 대한 대금회수가 100% 이루어지 못하고 고스란히 업체가 피해를 입게 됐으며, 의료기기업체에 대한 법적 보호 조치의 필요성이 부각된 사건이었다.

#사례2 : 2020년 7월부터 식약처는 제조, 수입, 유통 단계별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를 의무화했으며 이는 의료기기업체가 의료기관, 의료기기판매, 임대업자에게 의료기기를 공급한 경우, 공급자 정보, 제품정보, 공급정보(일시, 수량 단가, 다만 의료기관 공급시 한함) 등을 ‘의료기기 통합정보시스템’을 통해 보고하는 제도이다. 이에 수천개 업체가 직원채용, 행정처리 부담을 지고 있지만 국민안전을 위해 수행하고 있으나, 상당수 간납사들이 공급내역보고 진행시 각 의료기관별 공급자료 신고 의무를 전가하여 공급업체는 이미 제출한 자료를 이중으로 보고하는 불합리가 발생하였고 이를 거부 시엔 대금지급을 지연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례가 있다. 특히 I간납사는 공급업체가 대신 보고하지 않아 과태료 등 행정처분이 내려졌을 경우 대금결제 금액에서 과태료를 제하고 나머지 금액만 입금, 결재주기도 6개월로 연장한다는 요구를 공문으로 보낸 황당한 경우가 발생했다.

새정부가 출범했다. 의료기기산업계는 의료기기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가 중점적으로 정책을 펼쳐주기를 기대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의료기기 분야의 유통구조 선진화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유통구조의 현황을 논하는 데 있어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슈로 불공정거래관행을 들 수 있다. 의료기기 구매에 있어 절대 갑의 위치를 점유하는 의료기관과 의료기관의 힘을 등에 업은 간납업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불공정행위이다.

오랜 기간 고착화된 불공정거래관행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에서도 회원사의 제보와 여러 차례 시행한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불공정거래관행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다음의 5가지로 유형화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의료기기 공급사에 대한 물품대금 결제를 지연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간납업체는 의료기기 공급사에 별다른 보증이나 담보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평균 6개월에서 1년 이상 장기의 결제기한을 관철시키고 있다. 또한 계약상 대금지급기한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납품을 하고도 대금 수령을 제 때 못하는 의료기기 공급사들은 현금 흐름에 경색이 초래돼 생사의 기로에 놓이기도 한다.

두 번째로 과도한 납품가 할인 요구를 들 수 있다. 간납업체는 의료기관으로부터 수주를 하는 과정에서 간납업체 간 할인 경쟁으로 부담하게 된 비용을 의료기기 공급사에게 납품가 할인을 요구해 전가하고 있다.

세 번째로 각종 명목의 수수료 청구를 들 수 있다. 간납업체는 의료기기 공급사가 아닌 의료기관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업체이다. 견적 제공 등 납품에 필요한 모든 업무는 사실상 의료기기 공급사가 하고 간납업체는 의료기기 공급사에 수수료를 지급받을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정보이용료, 물류비, 세금계산서 발행 등 각종 명목으로 수수료를 지급 받고 있다.

네 번째로 소위 '가납'이라고 불리우는 계약체결 없이 물건부터 납품하도록 하는 행태를 들 수 있다. 계약서가 없으니 납품일로부터 기산하는 대금결제기한은 무제한으로 늘어질 수 있고, 미리 갖다 놓은 제품을 오랜 기간 방치하다가 결국 사용 기한을 넘기게 되면 의료기기 공급사가 자신의 비용으로 회수하고 새 제품을 가져다 놓아야 한다. 물론 그에 대해 간납업체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로 간납업체의 각종 책임 전가를 들 수 있다. 간납업체는 물류나 재고관리 명목으로 수수료를 지급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인력이 재고관리업무를 실제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품 수량이 맞지 않는 등 문제가 발생하면 의료기기 공급사로 하여금 물품을 채워넣도록 하는가 하면 자신들이 행해야 하는 의료기기 공급내역보고 등 법령상 의무 이행을 위한 업무도 의료기기 공급사에게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불공정거래관행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원인 중에는 치료재료의 사용과정에서 의료기관에 소요되는 관리비용이 법령상 인정되고 있지 않는 점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위해 사용되는 의약품은 법령상 관리비용을 인정받고 있지만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동일한 용도의 치료재료(의료기기)에 대해서는 관리비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는 치료재료 사용 시 구매, 품질 및 재고관리, 급여청구 및 비용 지불 등 제반 과정에서 상당한 관리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의료기관은 이윤추구가 금지되는 까닭에 적정한 이윤을 토대로 의료기관이 치료재료 관리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 의료기관은 관리비용을 부담할 만한 수익구조나 이윤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은 까닭에 간납업체에 관리업무나 비용부담을 전가하고 간납업체는 이를 다시 의료기기 공급사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이런 불공정한 거래관행은 의료기기의 연구개발에 투입돼야 할 자금과 인력이 선순환되지 못하고 의료기기 공급사와 업계 전반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보험재정의 건전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의료기기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개선해 의료기기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려면 어떤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할까.

첫 번째로 선행돼야 할 것은 면밀한 실태조사를 통해 간납업체의 개념과 이들의 불공정행위를 유형화하고 법령 개정을 통해 규제하는 것이다. 지배구조와 설비, 인력 구성의 측면에서 의료기관의 지배 하에 있지 않으며 전문성을 갖춘 업체가 도매업을 영위하도록 하는 도매업 허가제를 도입하고 불공정거래행위를 하였을 경우 허가 취소 등 강력한 제재 수단을 두는 방안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종합병원에 치료재료를 판매하는 경우와 종합병원의 구매업무를 대행하는 경우에는 도매업 허가를 받도록 하고 도매업자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 경우 기존 제조업자 및 수입업자와 판매업자 중 구매대행을 하지 않는 업체는 도매업 허가를 면제해 기존 사업자들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는 등 정책의 구체화 과정에서 세밀한 조율이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로 치료재료에 대한 관리료를 신설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재정으로 급여에 해당하는 치료재료인 의료기기에 대한 관리료를 별도 수가로 책정해 의료기관에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의료기관이 치료재료의 구매 및 재고관리 등 구매과정 전반에 있어 관리주체임을 명확하게 하고 전담인력을 확충하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구매 및 재고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간납업체를 통해 의료기기 공급사에 음성적으로 비용이나 관련 업무부담이 전가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의료기기 유통을 관리하는 부처를 단일화하는 것이다. 의료기기의 제조ㆍ수입업에 대해서는 식약처로 관리부처가 일원화돼 있으나 판매와 유통에 관해서는 복지부와 식약처로 이원화돼 있다. 이 때문에 체계적인 의료기기 유통관리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의료기기의 유통관리를 담당할 부처를 일원화해 판매 및 유통관리에 있어 정책 집행의 일관성을 담보하고 효율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제안은 불필요한 유통 단계에 따른 물류비를 절감하는 이외에 국민의 공적 부조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제도의 효율적 운영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의료기기의 비합리적 유통구조로 인해 낭비되고 있는 자금과 인력이 제품 연구개발에 더 많이 또 재투자 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의료기기의 품질 향상을 도모하고 의료기기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다. 정부가 의료기기산업계의 묘안에 귀를 기울여 현명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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