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의료기기의 날 기념 특집기고

<strong>▲ 황 성 은</strong><br>한국보건산업진흥원<br>의료기기화장품산업단장<br>
▲ 황 성 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기기화장품산업단장

의료기기산업 지원업무를 8년 동안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느낀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 그중에 가장 크게 와닿는 것은 산업 전주기에 있어 국내 의료기기 발전을 위해 의료기기 주요 사용자인 의사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을 알게 됐다.

의료진과 환자의 수요에 기반한 현장 맞춤형 의료기기 개발 및 제품화를 위해 의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며 이런 측면에서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해 우리 의료진의 관심과 참여는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된다. 최근 식약처는 2021년도 의료기기 생산 및 수출입 실적 현황을 발표했다.

21년 국내 의료기기 시장규모는 약 9조원, 생산실적은 약 12조 8천억원, 최근 급성장한 체외진단의료기기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있지만, 해외수출은 약 10조원으로 대부분의 지표에서 두자릿수 이상의 성장으로 시장 확대를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2021년 약 6천여 건의 의료기기가 식약처 인·허가(신고 포함)를 획득했으나, 임상자료 제출대상 제품은 약 95건에 불과하다. 의료기기는 의약품과 달리 제도적으로 인·허가 시 임상시험을 거치는 경우가 매우 적어, 국내 의료기기는 해당 허가 제품군에서 글로벌 기업 제품과 비교 등 혁신성을 검증할 임상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고 있다.

병원 주요 구매자인 의료진 설득, 별도 보상 등 실제 의료현장에 도입이 되기 위해서는 인·허가 이후에도 객관적 근거 입증에 필요한 시판 후 임상 시험이 요구되나, 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의료기기기업의 특성상 자금 부족으로 인해 임상시험이 요구되지 않는 1·2등급 제품 중심의 개발이 많고, 연구 단계부터 보험 수가를 고려하지 않은 임상 설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제품 원천 기술개발 R&D 외 개발된 제품의 임상적 혁신성 검증을 지원하여 현재 중저위 기술수준에서 경쟁하는 산업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한 집중적인 지원을 확대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AI진단보조소프트웨어, 디지털치료제(DTx) 등 혁신적인 제품이 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근거축적을 통한 보상기전 마련 또한 주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 단일보험 체계하에 인·허가 이후 별도 보상을 위해서는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신의료기술평가는 인·허가 이후 충분한 비용효과성 등 실사용 근거를 축적하지 못한 혁신의료기술 개발에 대해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산업계는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신속한 임상도입 필요가 있는 의료기술을 대상으로 다양한 조건부 시장진입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상적 유효성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라도 혁신성이 인정되면 일정 기간 사용할 수 있도록 혁신의료기술 별도평가 트랙을 도입 운영 중이며, 안전성 우려가 적은 신의료기술의 시장진입 확대를 위한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 마지막으로 제한적 의료기술 제도 또한 유망한 의료기술의 임상 조기 도입 등을 위하여 일정기간 동안 임상 근거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이 글을 쓰는 중에 V사의 인공지능기반 심정지 예측 의료기기가 업계 최초로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대상으로 확정돼 AI의료기기가 선진입 의료기술로 결정된 첫 사례가 됐다. 대학병원에서 대규모 확증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이후 약 8개월만에 선진입 의료기술로 확정돼 비급여 사용을 통한 실사용 데이터(Real-World Data) 구축을 통해 신의료기술 평가 및 건강보험 수가 진입을 위한 임상적 근거 축적 및 해외시장 진출에도 유리해 질 것으로 기대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좀 더 적극적으로 혁신기술의 의료현장 진입을 장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보험청(CMS, Center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은 기존제품과 다른 혁신적이고 새로운 기술 또는 상당한 임상적 개선 효과를 보이는 경우 추가지불보상(NTAP, New Technology Add-on Payment)을 통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독일의 경우 2019년 디지털 헬스케어법이 통과되면서 디지털헬스 앱을 건강보험의 급여대상으로 포함시켜 임시로 수가 적용을 허용하며, 그 기간 동안 환자 치료의 효과성이 입증될 경우 지속적으로 수가를 적용한다.

프랑스는 건강보험 제도 내에서 혁신의료기술(의료기기)를 지원, 보급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먼저 근거가 미흡한 의료기술에 대해 지속적인 근거창출을 위해 비용을 지원하는데, 의료기기·의료기술의 임상적·경제적 효과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한 경우 일정 기간 지속적인 근거창출을 위해 일부 기금을 활용, 비용을 지원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국산의료기기의 의료현장 도입에 필요한 다양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상급종합병원 12개를 5개소의 혁신의료기기 실증지원센터로 선정해 혁신적인 국산의료기기 제품(기술)의 실증 플랫폼을 구축했다. 혁신형 의료기기기업 및 혁신의료기기 지정 제품, 그 외 혁신성을 입증할 수 있는 국산의료기기 제품을 대상으로 센터별 인프라를 활용해 임상 및 비임상 실증평가 및 시범보급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임상과제 40건, 비임상과제 59건으로 총 99건의 실증과제를 지원하고 있으며, 병원에서 시범사용을 통한 임상 실사용 데이터 축적으로 신의료기술평가 및 건강보험 급여등재 등에 필요한 근거창출 및 구매성과 확산 지원을 위해 총 41건 시범보급 과제를 운영 중에 있다.

다만, 혁신의료기기 실증지원센터는 단기(5년) 사업으로 올해 사업이 종료됨에 따라, 지속가능한 의료기기 실증 생태계 구축을 위한 대규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2024년 신규사업 추진을 목표로 의료기관(병원) 임상 인프라 기반의 의료기기 실증을 위한 대규모의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중장기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임상근거 성과 창출을 극대화하고, 혁신 제품의 시장진입 활성화를 지원할 예정이다.

먼저 우리 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수입대체효과가 크고 고부가가치 시장진출이 가능한 주요 Mid-tech 품목의 현장 도입, 희귀·난치성 등 특수성 있는 질환 및 진료환경에 있어 대체 의료기기가 부재해 국내 수급이 어려운 품목은 제품 간 단기적 비교 임상 연구를 통해 의료진의 제품 개선사항 피드백을 제공해 실제 효과를 검증하고, 타 제품간 우월성 입증할 수 있는 연구개발을 지원할 것이다. 이를 통해 도출된 연구결과는 국내·외 의학회 발표를 통해 우수사례로 확산되고, 국내 제품의 고도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혁신의료기기의 가치보상을 위한 실증근거 창출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도 기획 중에 있다. 혁신성 및 안전성을 갖춘 첨단기술이 적용된 혁신적 유망기술로, 가치보상의 보험이슈가 있는 품목 또는 기존 의료기술(기기) 개선 품목은 혁신성 검증을 통한 보상근거 마련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의료기기 유효성 검증 또는 시판 후 의료진의 사용경험 뿐만이 아니라, 경제성 및 편익 분석, 비용-효과성 입증, 기술대체 등 고도화된 임상 연구 지원을 통해 혁신성 평가기준을 도출하고, 보험 제도권 진입의 근거를 마련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임상 프로토콜 설계를 위한 전문가 및 규제 관련 기관의 컨설팅과 제도적 지원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임상평가 계획 과정부터 체계적이고 면밀한 검토는 물론, 임상 시험 수행 인력들이 임상 관련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증대시키고 제품의 임상적 성능 강화를 위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까지 본 사업의 범위에 담고 있다.

새로운 혁신 의료기술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 확대를 요구하는 산업계와 우리나라 건강보험 특성상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우선순위를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인 건강보험 관리 당국의 입장 차이를 규제로 인식하기 보다는, 과학기술과 사회변화에 따른 혁신의료기술의 적정한 가치를 건강보험에 반영하는 합리적인 방법에 대해 함께 계속 고민하고 토론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혁신 의료기술을 실증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 및 활성화도 같이 진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계와 실증 생태계 구축에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될 의료기관 및 의료진의 적극적인 참여로 한국 의료기기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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