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힐세리온 - 류정원 대표

[중소기업청_징검다리 Spring 2015 vol.59]

초음파 진단기기는 ‘제2의 청진기’로 불린다. 건강검진을 하거나 응급실에서 환자의 상태를 판단할 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고가인데다 크기도 커 위급한 상황에 사용하기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결하고 치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작고 가벼운 휴대용 무선 초음파 진단기기를 만든 이가 있다. ㈜힐세리온 류정원 대표는 창업한 지 3년 만에 휴대용 무선 초음파 진단기기 ‘소논(SONON)’을 개발한 모바일 헬스케어 분야의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다.

 

“세상을 치유하고 싶은 의사, 볼 수 있는 청진기를 만들다”
-㈜힐세리온-

초음파 진단기기 시장의 판을 흔들다

▲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초음파 진단기기 시장 규모는 약 46억 2,000만 달러(약 5조 800억 원)로 최근 7년간 연평균 3.1% 성장했다. 그동안 초음파 진단기기는 노트북이나 휴대폰 크기로 소형화되면서 일반 검진 외에 응급 진료에도 사용되어 왔다. 현재 세계 초음파 진단기기 시장은 2012년 기준으로 GE, 필립스, 지멘스 등 소위 ‘영상 빅3’ 업체가 전체 시장의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콤팩트 타입 초음파 진단기기는 기존에도 2~3가지가 있었지만 무선 방식에 스마트폰 연동까지 되는 제품은 소논이 최초입니다. 또 배터리 방식이라 전원코드도 필요 없죠. 검사결과가 출력되는 디스플레이는 없지만 와이파이, 3G, LTE 등 무선통신망을 이용해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PC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류정원 대표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또 앱에 있는 영상공유기능을 활용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원격 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응급 상황은 물론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의료기기와 ICT의 만남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 다른 분야였다면 너도나도 관심을 가졌겠지만, 보수적인 의료시장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쩌다 의료기기업체와의 미팅이라도 잡히면 ‘그 작은 기계로 가능하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불편해도 큰 기계를 사용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에 그는 자극받았다.

“많은 의료기기 중에서도 특히 초음파 기기는 기술 장벽이 높다 보니 쉽게 도전할 수 없는 분야에요. 실제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더라고요. 특히 초음파 기기에서 음파를 쏘고 돌려받는 센서가 아날로그 부분인데 이 아날로그 신호는 클수록 처리가 쉽다 보니 소형으로 설계하기가 무척 까다로웠죠. 또 잡음을 걸러내는 기술도 중요한데 손에서 발생하는 생체 전기와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열이 소음을 일으켜 그것을 잡아내는 데도 몇 개월이 걸렸습니다.”

힘겹게 하나의 문제를 풀었는데 이상하게도 두 개의 문제가 눈앞에 나타났다. 몸은 지쳐갔고 정신은 그보다 더 피폐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함께 밤새워가며 의지했던 창업멤버들과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 그렇게 꼬박 1년, 그는 신호처리기술과 회로설계기술을 이용해 시제품을 완성했고 작년 말, 드디어 개발에 성공했다.

의술이나 기술은 결국,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

▲ 휴대용 무선 초음파 진단기기,
소논(SONON)과 실제 촬영된 영상

힐세리온의 성공은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창조경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의사였던 류정원 대표가 어떻게 초음파 진단기기를 만들 수 있었을까? 답은 그의 괴짜 이력에서 출발한다.

1997년, 군대를 제대한 뒤 제대로 공부해보겠다는 심산으로 늦은 나이에 서울대에 입학, 물리학과 전기공학을 복수전공했다. 당시 IT 벤처 붐이 일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벤처기업을 노크했다. 대학 시절 3년간 8개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졸업 후인 2001년 ‘디지젠(Digigen)’이라는 디지털 영상저장장치 개발업체를 창업했다. 그러나 ‘닷컴 버블’의 막차를 탄 터라 회사는 자금난에 시달렸고 결국 회사를 나왔다.

그 후 오디오·비디오 신호처리 기술 회사인 ‘아이티매직’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아 일했다. 음성인식 등의 생체신호처리기술을 만들다 보니 실제 인체 안에서 어떻게 신호가 전달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과학에서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인간의 뇌와 신경세포를 연구하면 평소 관심을 갖던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해답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005년, 그가 가천의학전문대학원 1기에 입학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됐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짬짬이 시간을 내 의료기술을 접목한 창업아이템을 구상했다. 그러던 중 그를 창업으로 이끈 사건이 발생한다. 2011년 가을, 만삭의 산모가 그가 일하는 응급실로 실려 왔다. 숨을 쉬지 못하는 긴박한 상황이라 산부인과도 없는 2차 병원에 온 것이다. 설상가상 부부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지체장애인이라 환자의 상태를 알기도 어려웠다.

“당시 심폐소생술로 위기는 겨우 넘겼지만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어요. 환자를 구급차에 옮기고 병원으로 가는데 걸린 10분이 10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 안에서 ‘의사들이 각자 초음파 진단기기를 들고 다니면서 환자의 문제를 바로 파악해 대책을 마련한다면 더 많은 환자들을 살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마음을 굳혔죠.”

얼마 후, 산모와 아기 모두 숨졌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는 그의 결심에 불시를 당겼다. 

“물론 당시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삶과 죽음의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는 장담할 순 없어요. 다만, 그 상황에 환자의 상태를 좀 더 빨리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게 안타까웠죠.”

바로 다음해 6월, 그는 임상진료를 잠시 멈추고 함께 일할 동료와 함께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하게 된다.

도전하는 당신이 슈퍼스타!

잠시 뜸을 들이던 류정원 대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이내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말을 잇는다. 

“고백할 게 하나 있어요. 사실 저는 청년창업사관학교 2기는 맞는데, 재수생이랍니다.”

사정은 이랬다. 20대부터 창업을 했던 그였기에 청년창업 사관학교에 모여 있는 대학생들은 그저 어리고 열정만 넘친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거창하면 사업화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획서도 간략히 작성했다’고 한다. 결국 이 일이 빌미가 되어 힐세리온은 대기 1순위가 되었고, 최종 탈락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맞춤형으로 선정되면서 입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당연히 입교할 거라는 생각에 자만했던 거죠.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잖아요. 그 이후로는 작은 이벤트에도 최선을 다해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이름 꽤나 날렸죠. 하하.”

실제로 힐세리온은 중소기업청에서 주관한 2012년 실전창업리그 ‘슈퍼스타V’에서 전국 대상을 받았고, 같은 해 열린 슈퍼스타V 왕중왕전에서도 왕중왕상을 받았다. 그 잠재력을 인정받아 2013년 소프트뱅크벤처스, 마젤란기술투자, 엠벤처투자 등 벤처캐피털과 길병원에서 20억 원을 투자받았고 작년에도 30억 원을 추가로 유치했다. 매출도 없는 신생기업의 가능성만 보고 진행된 과감한 투자였다.

▲ 소논(SONON)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는 연구원들

투자자들의 눈은 정확했다. 힐세리온은 이제 성공 여부보다 전 세계적으로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지 기대되는 상황이다. 작년 12월 미국에서 열린 모바일헬스전시회(M-health summit), 올해 1월 두바이에서 열린 아랍 헬스 전시회 등에서는 글로벌 기업의 개발 부서 총책임자가 찾아 왔고,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마케팅 총책임자 등 관계자들이 먼저 찾아올 정도로 힐세리온에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기존 헬스케어 시장은 미국처럼 기초과학 수준이 높고 자본도 많은 나라가 선도했지만, 모바일 헬스케어라면 IT 기술이 발달한 우리나라도 해 볼 만한 시장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소논은 국내 식약처 의료기기 인증과 유럽 의료기기 인증(CE MDD)을 받았고, 미국 의료기기인증(FDA) 등을 준비하고 있는데, 향후 브릭스 시장도 공략할 예정입니다. 지금은 지사를 세우는 방법 등 소논의 판매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중입니다.”

아직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산학연 협약을 체결한 모교 가천대 길병원과 새로운 연구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초음파 진단기기가 고가라 실제로 이론수업만 진행되던 응급, 산부인과, 심장내과 교육과정에 소논을 투입해 실습수업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임상모델로써 결과가 좋으면 추후 확대 공급할 예정이다. 이밖에 힐세리온은 게이츠&멜린다 재단이 후원 중인 모성 사망 줄이기 캠페인, 현장 진료 인력 교육 프로그램인 ECHO 프로젝트, 국제기구 연계 등 국제적인 코즈 마케팅에도 적극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사업도 잘 돼야죠.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합니다. 직원들하고도 자주 하는 이야긴데요. 만약에 우리 사업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개발한 이 제품이 누군가를 살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또한 그걸로 족하지 않겠는가 말이죠.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동안 초음파 진단기기 시장은 소수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독점해 왔다. 여기에 힐세리온이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초소형 제품, 뛰어난 성능에 저렴한 가격까지 갖춘 소논을 내놓았다. 어쩌면 잔잔한 호수 같은 시장에 힐세리온이 바위를 투척한 격이다. 이제 더 이상 먼 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의 성공사례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여기, 우리와 가까운 곳에 힐세리온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공은 앞으로 태어날 많은 스타트업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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