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글로벌 통상 현안과 규범을 그리고, 협상하는 '그린룸'

[산업통상자원부_함께하는 FTA_ 2016년 5월 vol.48]

그린 룸이라는 것이 있다. 2015년 제레미솔니에 감독, 패트릭 스튜어트와 안톤 옐친 주연의 미국 스릴러 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초록색 방으로 직역(直譯)되는 그린 룸은 세계무역기구(WTO) 안에 위치한 작은 방 하나를 가리키는데, 10명 정도가 착석하면 꽉 찰 정도라고 알려진 바로 이‘작은’방에서 글로벌 통상 현안과 규범에 관한‘큰’그림이 그려지고 그 협상이 이뤄진다는 사실은 새삼 흥미롭다. 과연 그린 룸에는 누가 초대되고 그 안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일까.

그린 룸 회의의 참가국은 WTO 전체 회원국의 대표가 아닌 주요 국가로 한정되며, WTO 사무총장의 초청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지난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되었던 DDA 제5차 각료회의에서도 막판까지 미국, EU와 개도국 간의 대립이 계속되자 주요국들을 초청한 그린 룸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린 룸이 알고 싶다: 위치와 유래

스위스 남서부에 위치한 스위스 제3의 도시, 제네바에는 약 300여 개가 넘는 국제기구가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WTO는 유독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장소에 자리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스위스라는 국가 자체가 원래 청정자연, 그리고 나라 안 온 구석구석이 하나의 화폭과도 같은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네바는 특출나다. 금융과 상업도시이며 관광도시로써, 보석과 시계 거래의 중심지인 제네바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보석과도 비견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레만 호수 어귀에 WTO가 위치해있다.

이렇듯 경관이 아름다운 WTO의 사무국 3층에는 특별한 관심을 끄는 장소가 또 하나 있다. 바로 WTO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사무총장의 집무실 바로 옆에 위치한 회의실, 이른바 그린 룸이다. 이 방이 그린 룸이라고 이름 붙여진 배경은 실제 그 내부에서 다뤄지는 복잡, 다양한 의제 및 협상 현안들에 비하면 비교적 단순명료하다. 그린 룸의‘그린’은 바로 회의실 내에 초록색 카펫과 벽지 등 그 방의 전체적 색조가‘초록색’이라는 사실에서 유래했던 것.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그 인테리어가 초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니 이제‘그린’이라는 명칭이 조금은 무색하지만, 지금도‘그림 룸 회의’는 하나의 상징성을 지닌 고유명사로써 널리 쓰이고 있다.

그린 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역할과 합의

WTO의 공식 홈페이지는 기구의 역할에 대하여 5가지 정도로 분류해놓고 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바로‘무역협상의 포럼(forum for trade negotiations)’으로서의 역할이다. 실제 WTO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각료회의(Ministerial Conference)를 중심으로 매 2년마다 회원국 전체가 모여 협상 회의를 하게 되는데 가장 최근에는 지난 2013년과 2015년 각각 인도네시아 발리와, 케냐 나이로비에서 도하개발어젠다(Doha DevelopmentAgenda, DDA) 협상을 개최했던 바 있다.

WTO의 건물 내에 그린 룸이 존재하듯이 이러한 WTO 주요 회의 내부에는 그린 룸 회의가 존재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공식적인 정의에 따르면‘그린 룸 회의’라 함은 각국의 협상대표가 참석하여 주요 안건들을 다루는 회의를 말하는데, 특히 정치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의제에 대하여 토론, 그리고 나아가 최종 결정을 하기 위해 개최된다. 여기서 그림 룸 회의의 참가국은 WTO 전체 회원국의 대표가 아닌 주요 국가로 한정되며, 회의는 WTO 사무총장의초청 형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보통은 그린 룸의 좌석수에 따라서 30개국을 넘지 않고 약 20여 개국의 초청대상국가가 유동적으로 결정된다(일각에선 그린 룸의 크기가 워낙 작아 참석 대표들은 서로 어깨가 부딪힐 지경이라고도 한다). 실례로 지난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되었던 DDA 제5차 각료회의에서도 막판까지 미국, EU와 개도국 간의 대립이 계속되자 주요국들을 초청한 그린룸 회의가 개최되었던 바 있고, 당시 초청된 국가는 미국, EU,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 모리셔스,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온두라스, 스위스 등으로 국한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림 룸 회의를 이해하는 데에 더 없이 정확하고 간결한 해석과 예시이지만, 그간 알아왔던 WTO의 민주적인 성격과는 다소 거리가 먼 내용이다. 그간 WTO는 국제기구로서는 예외적으로 민주적인 절차와 참여방식으로 찬사를 받아온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IMF나 세계은행과는 다르게 회원국 1개국 당 1개의 투표권이 주어지고, 분쟁해결기구와 통상협정 내에서 개도국들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하고 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그린 룸 회의에서는 보통 전체 162개 회원국(2015년 11월 기준) 중 이른바‘주요국’들의 협상대표 1명씩 만이 선발되어, 협상 내용 중 특히 정치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의제들이나 국가 간 합의가 어려운 현안들에 대해 수시로 회동을 갖고 소규모로 토론하며 결정하는 형태가 취해진다. 특히 분야별로 협상국가들이 막판까지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할 때에 시도된다. 그리고, 여기서 결정된 사안들은 이후 전체 회의에서 최종 결정되게 되는데, 이미해당 안건과 관련한 대부분의 주요 국가들(통칭‘프렌즈 그룹’)이 그린 룸 내에서 합의에 이른 뒤의 절차이기 때문에 결국 그 대세에 힘입어 최종 결정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일반적인 이해다. 심지어 “그린 룸 회의에서 모든것이 결정된다”고까지 할 정도다.

그린 룸 회의는 비민주적…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

WTO뿐만 아니라 기타 통상 협상의 자리에서도 각 국가의 통상장관들은 수시로 식당, 복도 등에서 만나며 세부현안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즉, 다시 말해 전체 회원국의 대표들이 아닌 일부 국가들의 대표들끼리 회의를 하는 것은 그리 낯설거나 특별한 연출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TO의 그린 룸 회의는 엄연한 밀실회의로써 투명성을 저해한다는 반대와 비난의 목소리가 결코 적지 않다. 분야별로 찬반그룹의 주요국들만이 초청되는 소규모 회의로, 최종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된 국가들의 불만이 고조된 탓이다. 호베르토아제베도(Roberto Azvedo) 현 WTO 사무총장도 이러한 그린 룸 회의의 발전 및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 바 있다. 그렇다고 그린 룸 회의가 매번 성공적인 것 또한 아니다. 실제 1999년 시애틀 각료회의 당시에도 첨예한 의견 대립과 지속되는 괴리로 그린 룸 회의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었지만, 결국 농업 수출보조금 문제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여 별다른 성과를 도출해내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그린 룸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100여 개 이상의 회원국들은 자연스레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인도의 상공장관이었던 무솔리 마란(Musoli Maran)은 과거 그린 룸 회의에 대하여 크게 비난하며, 몇 일간 지속된 회의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논의 자료들이 한 시간 단위로 쏟아져 나왔지만, 그린 룸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이들을 제대로 검토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으며 특히 개도국들은 마지막 순간에 거의 강제로 주요 분야의 초안들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WTO의 협정 조항들과 합의문의 내용들은 그 양이 매우 방대할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까다롭게 만들어져 있다. WTO 회원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도국들은 WTO에 대사를 파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파견하더라도 1명 정도만을 파견하는 게 다반사다. 반면, 미국과 같은 경우는 회의 때마다 250여명의 전문 변호사를 대거 파견, 협정 조항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자국의 경제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내용이 있으면 바로 이의를 제기하며 협상을 최전방에서 주도한다. 이러한 현실과 더불어 암묵적으로 이를 지지하는 그린 룸 회의는‘WTO는 회원국들이 주인’이라는 표제나, 파스칼 라미(Pascal Lamy) 전 WTO 사무총장이 “WTO는 민주적이고, 누구나 똑같이 합의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합의하지 않을 권한을 가진다”라고 발언했던 것을 다시 한 번 생각 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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