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정책’, 국민 편익 증진과 검증된 의료적 영역의 급여화 필요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 발표
우리는 또렷하게 사리를 분별할 수 없는 모습을 보고 애매모호하다고 말한다. ‘애매’는 새벽녘 동틀 무렵 아직 어두워 시야가 희미하여 분명히 보이지 않는 상태를 뜻하고 ‘모호’는 여러 뜻이 뒤섞여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 서 화 석
혁신산업위원회 부위원장
베리안메디컬시스템즈코리아 상무

지난 2월 2일 정부가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는 ‘필수의료’라는 단어가 58번 등장한다. 비록 ‘필수’와 ‘의료’라는 단순한 두 단어가 합쳐졌지만 애매모호하다는 말이 잘 어울릴 것 같다.

필수의료란 무엇인가
얼마 전 영어로 필수의료를 설명할 기회가 있어 Essential healthcare로 번역해서 외국인 동료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국 의료 상황에 대해 이해가 높지 않던 외국인은 이를 일차의료기관에서 제공받아야 하는 의료서비스로 이해했다.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개인 건강 관리, 가족 건강 관리 및 지역사회 건강 관리라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검색된다.

대한의사협회에서 21년에 발간한 필수의료 중심의 건강보험 보장성 적용방안을 보면 필수 의료는 건강보험에서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분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 제시한 구체적인 예시를 보니 치매 조기진단 위한 아밀로이드 뇌 양전자 단층촬영 △조산 예측 양수 내 MMP8 정성검사 △인공고환 삽입술 △간 이식 후 간 기능 저하 시 혈장교환술 △저등급 신경교종 치료에 필수적인 뇌종양 항암요법 등이였다. 지금 정부에서 논의하고 있는 생명과 직결되어 우선순위가 필요하다는 맥락과는 다르게 보인다.

2022년 구성된 필수의료 협의체를 보면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비뇨기과가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문뜩 생각해 보면 필수 의료라는 용어의 등장이 서울모병원의 간호사 뇌출혈 사건이 발단이었는데 신경외과는 협의체에 포함되지 못했다.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니 신경외과학회에서 이 협의체에 포함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기사가 보였다. 단일질환 사망률 1위라는 뇌졸중을 주로 보는 신경외과가 포함되지 않았었다고 하니 아이러니하고 필수 의료의 정의가 먼지 더 헷갈린다.

필수의료로써의 영상의학
얼마전 대한인터벤션영상의학회가 필수의료로서의 영상의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기사를 보니 응급실 내원환자의 30% 이상이 CT/MRI 검사를 시행하고 이에 따라 치료계획을 잡는다고 한다. 영상의학은 비필수의료로 오해되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영상의학 없이는 진단과 치료를 시행할 수 없고 가장 먼저 포함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정확한 진단 없이는 치료계획을 세우거나 증상을 확정할 수도 없으니 필수의료가 아니라고 반박하기가 어렵다.

최근 정부는 그동안 급여였던 뇌·뇌혈관 MRI를 대부분 비급여로 변경하면서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필수 의료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자. 단일질환 사망률 1위라는 ‘뇌졸중은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린다.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뇌세포 손상을 일으킨다. 다행히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고 해도 팔다리 안면 마비 등 심각한 후유증과 영구적인 손상을 남긴다. 전조증상이 있다면 당연히 응급실로 가겠지만 아마 손상을 입은 상당수가 눈에 띄는 전조 증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조증상이 없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그리고 뇌혈관 질환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 뇌혈관 검사가 추천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 건강보험에서는 뇌질환과 무관한 두통이나 어지럼증에 MRI가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경학적 이상소견이 있는 경우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건강보험 적용가능한 사례를 보니 “처음 겪어 보는 벼락을 맞을 듯한 극심한 두통, 번쩍이는 빛 시야 손실을 동반한 두통 등”이 정말로 검사를 하지 않아도 누가 봐도 뇌질환 환자로 보이는 사람인 것 같다.

MRI 뇌혈관 촬영을 비급여로 전환한 정책이 국민 편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매우 의문이다. 뇌 MRI 급여화는 기존 관행 수가를 크게 떨어뜨린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상급종합병원 기준으로 최대 75만 원까지 했던 관행수가는 건강 보험적용 후 30만으로 뚝 떨어졌다. 여기에 보험이 적용되니 환자는 1/4 정도만 부담 하면 진단이 가능했다. 뇌질환의 막연한 불안감 대신 많은 환자들이 촬영을 선택했고 안심을 얻거나 빠른 치료가 가능했다. 21년에 발표된 ‘뇌 MRI 수가 정책의 효과’라는 보고서를 봐도 증가한 뇌 MRI 사용량이 모두 적정의료인 것으로 가정할 경우, 1,078억원의 국민 의료비를 절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의료적 타당성이 검증된 비급여 영역을 단계별로 급여화하는 전략이 국민 편익 증진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당시 정부에서는 뇌 MRI의 적정 의료에 대한 염려로 이미 경증질환에 대한 본인 부담률을 80%로 인상했고 재촬영을 억제를 위해서 외부병원 필름 판독 수가 인상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이러한 제도 보완은 향후 적정진료로 가는 긍정적 효과를 크게 기대했다. 뇌졸중과 같은 사회적 부담과 개인별 후유증이 큰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고 빠른 환자 치료로 연결하는 것이 어쩌면 장기적인 측면 건보 재정 건전화에 도움이 된다는 고민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건강보험정책은 국민 편익을 증진시키고 이미 의료적 타당성이 검증된 영역을 급여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뇌졸중을 포함한 다양한 뇌질환은 초기대응이 늦어질 경우에 환자 개인은 물론 건강보험재정에도 큰 부담을 가져온다.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이에 따른 부담은 명약관화하다.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질병을 명확히 진단하고 치료를 계획할 수 있는 시작점인 영상진단이 어쩌면 필수의료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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