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병리학회-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디지털병리 정책간담회

시스템 도입 비용 높으나 '환자생애 암 관리' 정보 공유 위해 플랫폼 갖춰야

우리나라 의료 정보의 전산화는 미국이나 해외에 비해 매우 빠른 시기에 시작해 전국적으로 도입됐으며, 이는 국가 주도의 의료 행위 비용 처리에 들어가는 행정 및 인력 비용에 대한 기관 수준의 업무 효율성 강화를 위한 기관의 경영적 해결 방안으로 전산화를 선택하게 되면서 가능하게 됐다. 기관 차원의 디지털 전환은 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경영상의 이유로 초기 전환의 속도를 높일 수 있었으나, 현재의 기관 간 자료의 공유를 통한 환자의 간접의료비 감소 효과를 환자가 누리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도 당시 전산화/디지털화를 바라보던 사회의 시선의 영향이 크다 할 수 있다.

▲ 이 경 분<br>서울대학병원 병리과 교수<br>
▲ 이 경 분
서울대학병원 병리과 교수

그러나 최근 일상의 모든 것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의료 정보 시스템은 새로운 환자들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고, 2년 간의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기관 주도로 진행하기 어려운 의료정보의 공유를 위해 정부 주도의 많은 데이터 산업 및 의료 표준화 사업들이 기존의 전산 자료를 미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전환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단순히 데이터 산업을 위해서 만일까? 의료 전산화는 데이터 산업의 발전과는 별도로, 그동안 환자 본인 부담으로 지불하던 간접의료비용 (진료비 이외 내원하면서 발생하는 의료 비용, 교통 및 행정 비용)을 줄이고, 중복된 검사 비용을 줄이며, 인적 요소로 발생할 수 있는 오류 예방 및 감시 효과로 환자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를 인지했기 때문이다.

디지털병리를 이야기하면서, 이미 전산화가 끝나 병원 전산화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병리 검사실은 병원의 검사 관련 수납 및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를 제외한 실제 검사실 내부의 업무는 여전히 전산화가 되지 못한 영역이기 때문에 의료 전산화가 도입되기 전인 과거를 다시 복기하는 것이 현실을 이해하고, 디지털병리가 왜 필요할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병리 검사실의 디지털이 늦어진 가장 큰 원인은 검사의 코어인 유리 슬라이드가 디지털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최근 10년의 영상 및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병리 기술은 현실적으로 사용 가능한 수준이 됐다.

디지털병리로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진료실의 변화는 슬라이드 이미지의 접근성 및 보관성의 향상이다. 날이 갈수록 새로운 검사법과 질환들이 개발되면서, 진단 방법도 단순 현미경 검사 하나에서 면역조직화학 검사를 통한 단백질 검사, 유전자 검사 등이 다양화 됐고, 암 진단과 정밀 의료에 필수적 검사법이 되고 있다. 이런 검사는 모두 기본이 되는 현미경 소견을 확인하고, 다음 검사를 결정하게 되는데, 유리 슬라이드는 업무자가 한 명만 볼 수 있다면, 디지털병리는 여러 장소에서 시간에 무관하게 접근 가능해, 불필요한 검사 지연을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실제 2021~22년까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지원한 디지털병리 효율성평가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의 경우 디지털병리 도입 후 검사 총 평균 시간은 12시간 감소했고, 판독 시간은 14시간 정도 감소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면역조직화학검사나 분자 검사 진단 시간이 단축되는 효과를 보였다. 검사 시간 단축은 환자의 재원 시간을 줄이고, 치료 지연을 줄일 수 있는 간접 효과가 있을 수 있어, 진단 검사를 포함해 검사실에서는 중요한 질병관리 지표로 관리하고 있다.

디지털병리의 접근성 및 보관성은 고령화 사회에 암 발생이 증가하고 치료법이 좋아지면서, 완치 이후에도 전이하는 암이나 다른 장기에 다른 종류의 암이 발생하는 빈도가 증가하면서 환자 개인에게는 중요한 의료 정보가 되고 있다. 10년, 20년 전 암이 재발한 경우 시간 차이가 많아, 새로운 암인지 전이인지를 감별해 원발 장기를 판단하는 것으로 환자의 치료 결정에 중요한 사항이며, 이 때 필요한 것이 과거 병리 검사 시 제작했던 병리 슬라이드가 남아 있을 경우 진단에 중요한 비교자료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병리학회는 최소 5년 이상의 슬라이드 보관 및 블록 보관을 의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유리 슬라이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색이 변하고, 도시 지역 기관의 경우 장소의 제한으로 기관 외부에 보관하는 경우, 회수하는 데에도 1주일 이상이 소요될 수 있다. 디지털병리는 유리 슬라이드를 대치할 수 있는 탁월한 접근성과 보관성을 갖고 있다.

디지털병리의 자료 공유화는 우리나라와 같이 기관 간 이동이 자유로운 의료 환경에서 환자의 의료 기관 이용 비용 및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21년 기준 연간 10만 명의 환자가 병리 슬라이드를 들고 다른 병원급 기관을 방문하고 있다. 대부분 1, 2차 병원에서 진단된 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3차 기관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하게 되며, 여타의 검사 결과들이 전산 시스템에서 방문 즉시 출력물 혹은 디지털 복사물로 이동되는 반면에, 병리 슬라이드는 유리 슬라이드 제작에 1~2일의 시간이 필요해, 병원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헛걸음을 하거나, 재방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병리는 병리 검사도 다른 검사와 같이 유리 슬라이드 보다는 손쉽게 다른 기관으로 공유할 수 있다. 다만 여타의 검사와는 달리 자료의 크기가 커서, 현재의 이동형 저장소를 통한 이동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초반에 언급한 기관 간 자료 공유에 대한 정부 및 사회적 관심으로 다시 돌아가면, 디지털병리는 큰 자료의 크기로 인해 반드시 정보 공유 플랫폼을 통한 자료 공유를 처음부터 시도해야 하는 영역이다. 실제 해외의 디지털병리는 국가 주도하에 희소한 병리 전문의의 대안으로 디지털병리를 통한 원격진단 및 자문을 위해 우선 구축됐고, 점차 진료 전반으로 확산해 나가는 모양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격 진단에 대한 여러 시각이 존재해 동일할 수 없으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동일 연구에서 조사된 바, 현재 약 8% 정도로 추산되는 타기관 이동시 발생하는 병리 중복 검사 비율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리하자면, 디지털병리는 여타의 의료 전산화와 같이 행정 및 서류 업무의 효용성을 높이는 경영적 측면에서만 도입하기에는 비용이 높은 시스템이나, 여러 기관이 함께 도입해 자료의 공유와 플랫폼의 전환으로 이어질 경우, 우리나라 사망원인이 1위인 암의 치료와 관리에 있어, 개별화 돼있던 기존의 의료 정보 시스템의 과오를 범하지 않고 환자 개인의 의료 정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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