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의료기기의 날 기념 특집기고

▲ 조 춘 식
한국전자파학회 부회장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부 교수

오래전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방문하면 병원에서는 시력 검사, 몸무게 측정, 혈압 검사 및 피검사 등을 통해 내원자의 건강 능력과 질병 여부를 진단했다. 대부분 의료인이 직접 내원자의 상태를 진찰하면서 발병이나 예후를 판단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이나 센터를 방문하면 의료기기들이 의료 종사자 대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초음파, MRI, 골다공증 진단기기, CT 등이 그동안 사람이 해 왔던 진단이나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했던 질병 진단을 대신한다. 사람의 생체 내부를 열지 않고도 비침습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기기는 대부분 전파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전파’는 수 MHz부터 수천 GHz까지 또는 X선까지 다양한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말한다. 즉, 생체 외부에서 생체 내부로 직접 전파를 조사하고 반사돼 나오는 다양한 반사 전파를 분석해 생체 내부의 수많은 질병이나 예후들을 관찰한다.

의료기기는 진단기기와 치료기기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과거에는 질병의 진단이나 치료를 위해 의료 종사자들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이를 단순히 의료기기라고 불렀다. 그러나 현대의 의료기기는 의료 종사자들이 진료와 치료를 위해 의존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그중 진단기기는 대부분 전파를 이용해 사람 몸속의 질병들을 계속 관찰하면서 우리 인류를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난치병과 불치병을 미리 사전에 알리어서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더군다나 전파를 이용한 새로운 진단기기들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과거에는 병의 예후가 깊어지는 순간까지도 몸이 느끼지 못했던 많은 질병들을 비침습적으로 초기에 진단한다. 그만큼 진단기기에서는 전파의 활용도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전파를 이용하지 않고 생체 내 변화를 비침습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전파 의료기기의 광범위한 개발과 사용은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는 현대인에게 하나의 일상처럼 가깝다.

오래전부터 초음파를 이용해 태아의 움직임을 관찰한 것이 우리나라의 전파를 사용한 대중적인 진단기기 사용의 시초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후 전파를 이용한 진단기기는 MRI, PET, CT 등으로 발전을 계속해 오고 있다. 물론 X-선을 이용한 결핵 검사 등은 오래전부터 시행했지만 전리선 방사선의 사용으로 인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이 있어 일반 대중들에게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초음파 진단기기의 활용으로 전파 진단기기의 급속한 대중화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고대 동양에서 의술은 초기에는 사람 손으로 직접 시술하고 봉합하는 방법에 의존했다. 수천 년이 흐른 후 다양한 방법으로 병을 진단하고 고치고 있고, 서양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으로부터 기구하게 태어난 신이지만 병마와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최고의 선물인 양의 기운이 가득한 태양을 DNA로 가지고 태어났다. 또 그 자녀들도 위생, 회복, 치료 및 화색 등의 신으로 불린다. 오래전 그리스 사람들은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부를 직접 도려내고 봉합하는 직접 의술 외에도 질병이 생긴 환경과 섭생 등 간접적이지만 어쩌면 보다 본질적인 치료에 더 혜안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질병의 진단을 위해 동・서양 의학은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 외에 청각(청진기)이나 촉각(진맥)을 활용한 것을 보면 의술의 발전은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치료하는 방법가 더불어 다양한 감각과 도구를 동원해 인류를 병마로부터 구하고자 노력했다.

모든 진단기기는 인체 외부에서 특정한 주파수의 전파를 발생해서 인체에 조사한 후 맞고 되돌아오는 수신 전파를 분석한다. 한편 GHz와 THz 대역의 전파는 비전리방사선으로 인체에 거의 해롭지 않고 또한 진단기기로 개발 시 경량화 및 휴대용이 가능하고 고가가 아닌 제품으로도 상용화가 가능하므로 전파를 이용한 진단기기의 개발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잡음에 약하고 분해능이 현존하는 진단기기에 비해 아직 열위에 있으므로 인공지능이나 THz 등의 새로운 기술을 집약해 적용하면 머지않아 전파를 이용한 진단기기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기를 희망해도 좋을 듯하다.

현재 진단기기의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거대 기업이 수십 년간 기술을 축적해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 국내에서 이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다양한 주파수의 전파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수신 전파의 고해상도 저잡음 영상화를 위한 고도의 알고리즘 연구에 대한 기초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단기기에 비해 치료기기는 인체의 질병 세포나 조직을 제거하거나 괴사시키는 일이므로 위험도가 늘 존재해 역설적이지만 의료기기나 전파 의료분야의 선발 선진국이 아니어도 도전해볼 만하다. 전파를 활용한 치료 방법으로는 탐침을 이용한 고주파 온열치료, 외부에서 안테나로 접속하는 온열치료, 전파를 조사해 암세포 등의 변화를 유도하는 치료 그리고 전자약으로 불리는 전극을 통해 외부에서 전파자극을 가해 암이나 뇌질환을 치료하는 방법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고 미국 FDA의 승인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파를 활용해 병을 진단하고 난치병 등을 치료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뚝딱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의료분야에서 규명한 질병의 기전에 근거하여 전파의 조사 시에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주변 세포나 조직에는 부작용이 없는지 등 수없이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고령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질병의 관리나 치료가 예전보다 더 획기적으로 필요하다. 전파를 활용한 의료기술의 개발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정부주도 하에 산업화 연구에 민간과 공공이 집중적으로 투자해 좋은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투자한 성격과는 너무나 다른 투자 전략을 전파를 활용한 전파 의료기기 연구에서는 요구하고 있다. 우선 분야의 특성상 오랜 기간 연구개발 예산을 투자해야 하고 또한 의료와 전파의 매우 독특한 분야의 융합연구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의료와 전파 분야를 단편적으로 섭렵한 인력이 아니라 오랫동안 아스클레피오스를 흠모하며 또한 맥스웰을 평생 품고 인류의 병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융합형 전문연구인력이 필요하다. 대학 시절부터 이 분야에서 연구에 평생을 바칠 인력의 양성이 시급하다. 그리고 전파와 의료의 융합이므로 오랜 기간 예산을 투입할 각오가 공공이나 대형 민간 기관에서 서 있어야 할 것이다. 서양의 의료기기 선진국들은 이미 수십 년간 묻지마 식의 예산을 투입하고 인력 또한 의료와 전파 분야 양쪽에서 오랫동안 양성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도 이제는 대형 병원 등의 의료기관과 전파 분야를 담당하는 대학 및 연구기관이 융합연구를 보다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전략적인 연구 투자 및 연구 환경을 성장시키는 한편, 민간 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협력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전파 의료기기의 발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또한 인류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야일수도 있다. 전파 기술을 활용해 인체에 조사하면 나타날 수 있는 무궁무진한 변화를 관찰해 그동안 난치병이나 불치병으로 남아 있는 수많은 질병 예를 들어 치매나 암 등을 정복할 날도 머지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연구개발에 국가의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도 이를 뒷받침하는 규정과 제도가 뒤따르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전파 의료기기를 새로운 의료기기의 분류로 정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진단과 치료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전파 의료기기 시장을 정부가 인력과 예산을 과감하게 투자해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수많은 난치병과 불치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과감히 뛰어들어야 할 때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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