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RA 위상정립으로 더 높은 수준의 의료기기산업 발전 달성

● 의료기기산업 미래를 향한 연속제언 ⑩ 


"인력난 호소하는 RA 직무, 원인은?" 
국내 RA 위상정립으로 더 높은 수준의 의료기기산업 발전 달성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편&nbsp; 웅&nbsp; 범<br>&nbsp;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br>&nbsp; &nbsp; &nbsp; 산학협력중점교수<br>
            편  웅  범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산학협력중점교수

지금까지 산업계와 정부기관 모두가 힘을 모아 신기술이 출현하는 국면마다 세계수준으로 도약하며 잘 해오고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에 비해 국내 RA(Regulatory Affairs)직무의 역할과 중요성이 평가절하돼 있어 안타깝다.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이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 RA의 지위와 예우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  

RA는 국가별로 정해진 법령에 따라 의료기기 허가 또는 변경을 위한 기술문서 작성을 주업무로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허가, 임상시험, 안전성 및 성능 시험평가, GMP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의료기술평가 및 보험등재 등 전체적인 규제절차에 관련한 상세 계획을 수립하는 중요 업무도 포함돼야 함이 바람직하다. 종국적으로 RA의 본질적인 직무는 의료기기 기업에서 핵심적인 기획 결정에 대한 지원과 최종 결정된 계획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RA는 전형적인 전문직종이다. 사실 너무나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의료기기법령이 수없이 개정되고 수많은 가이드라인들이 제정되면서 의료기기 관리제도는 상당히 복잡한 체계로 자리 잡았다. 현재의 제도적 체계를 실무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RA 직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선 최소 4년의 수련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앞으로도 새로운 규제 및 요구사항들이 지속 제정될 것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일이 RA 직무의 큰 숙제다.

의료기기산업계는 상당히 오랜 기간 RA 품귀현상을 호소해 왔다. 이에 정부는 RA 양성과정에 대한 투자를 정책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RA의 지위와 예우가 향상되지 않는 한, RA 품귀 문제는 향후에도 근본적 해결이 요원할 것으로 본다.

‘RA의 지위 향상’이라는 주제가 정책적으로 공론화되고 심도 있게 검토된 사례가 필자의 기억 속에는 없다. RA들은 과묵한 편이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경우가 어지간해서는 없다. 이러한 태도는 담당하고 있는 업무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업 분야는 매출목표를 미달성하더라도 80% 달성 또는 60% 달성 등 나름대로 부분적인 평가가 가능한 회색 영역이 존재한다. 반면, RA가 담당하는 허가, 임상시험, GMP 적합인정 업무 등은 성공과 실패로 명확하게 이원화돼 있다.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 평가받을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잘해서 성공해도 본전이란 뜻이다. 사실,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신제품 허가를 추진할 수 있는 내부역량과 그간 구축한 인프라는 고스란히 남는다. 하지만 이러한 무형의 자산을 합리적으로 평가해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RA는 과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료기기산업에 새롭게 몸담으려는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직종이 됐다. 이제는 RA 스스로가 합리적 수준의 위상을 찾기 위해 의견을 적극 개진해야 할 국면에 도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RA직종의 활동 수명이 다른 직종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긴 편이라는 점이다. 경력자를 대체하기가 아주 어려울 뿐더러 신기술 도입에 따라 나날이 넓어시는 새로운 영역의 수요 충족이 어렵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RA 업무는 근본적으로 결과를 예단할 수 없기에, 예측 못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일상 업무가 아니면 목표를 설정하고 제시하기 어렵다. 다만, 규제 요구사항에 따른 세부 계획을 수립해 제안하고 그 계획에 따라 각 단계를 충실히 밟아나갈 뿐이다.

개발팀과 RA 간 원활한 소통 필요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개발 과정을 문서화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국내 의료기기산업계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고착된 심각한 문제다. 의료기기 기술문서를 구성하는 근거 자료중에는 개발자가 작성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규정돼 있는 사항이 많다. 따라서 개발과정이 문서화되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QA팀을 별도로 두는 기업도 간혹 있으나 일반적으로 GMP 적합인정 심사와 기록유지 등 운용 업무를 RA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다. GMP는 방대한 문서체계를 확립해 운용 및 기록·유지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시스템이다. 설계관리는 개발팀, 제조관리는 생산부서, 교육관리는 기획팀이나 인사팀에서 담당하는 ‘전사적인 시스템’으로 운용돼야 한다. 사내에서 RA의 지위를 개발팀과 동등 이상으로 부여해 RA의 요구사항이 개발단계에서 충실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기업의 운영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신제품 개발 전, 시판까지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예측하는 과정은 필수다. RA가 기획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기술을 구현하는 단계에만 집중되기에 규제절차에 필요한 실제적인 비용과 기간을 누락할 우려가 크다. 고도의 역량을 갖춘 RA는 비용과 시간을 감축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할 수도 있다. 

의료기기 GMP 품질문서 관리체계 모식도

투자유치에서도 RA와 협업해야 
‘투자유치’는 의료시장 진입 전, 신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 개발에 집중하는 기업들에게 ‘개발 완료▷규제절차▷출시’까지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할 절박한 방안이 될 수 있다. 투자자들은 임상적 유효성이 검증된 제품을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개발과정에 있는 기술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바이오의료기기 분야에서 투자자들은 임상시험과 허가에 대한 구체적 추진계획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추세이다. “최선의 노력으로 3년 내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하겠다”는 등 실질적인 근거가 떠받쳐주지 않는 호언장담은 투자자들에게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결국, RA들이 임상시험 및 허가 등 규제 전반에 걸친 실제적인 계획을 수립해 제안하고 수행역량이 충분한 RA팀을 바탕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어내야 한다. 투자제안서 작성은 사내 기획팀의 전유물이 아니다. RA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정부 R&D 과제시 RA 역할의 중요성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기업들에게 정부 R&D과제를 통한 지원은 큰 혜택이다. 우리 정부의 R&D 투자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서 연구중심 기업에게는 우리나라는 최적의 여건을 갖췄다. 투자성과 저조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고 강력한 정책의지로 정부 R&D예산은 최근 3년 동안 연속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2021년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역대 최고치인 27조4000억원이다. 신시장 창출을 위한 모험적 투자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비록 당장에는 가시적인 사업화 성과가 미흡하더라고 중장기적으로는 R&D 전문인력양성 및 역량강화, 네트워크 등 인프라 구축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 R&D과제에서 사업화 성과관리가 강조되는 추세고, 임상시험 및 허가 등이 정량적 목표로 제시되고 요구되는 상황이다. 정부 R&D 과제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과제기획 단계부터 RA가 적극 참여함으로써 임상시험이나 허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임상시험계획 초안을 비롯, 세부적인 계획과 추진일정을 규정에 충족하도록 타당성있게 수립하고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규제절차에 관한 상세하고 타당한 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RA 직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허가·보험등재는 마케팅 핵심요소 
제품의 홍보나 광고 등에도 의료기기법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영업과 마케팅에서도 인허가와 보험등재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에, 결국 의료기기기업의 차별화된 핵심역량은 RA인력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RA들의 업무성과 없이 기업은 사업적으로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인허가 등 규제 관련 업무를 외부 컨설팅 전문기업에 맡기려 해도 내부에 실력있는 RA는 반드시 필요하다. 외주 의뢰만으로 해결되는 경우는 없다. 컨설팅 기업에서 개발자에게 요구하는 자료를 기업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제공해야만 절차를 진행할 수 있으며, GMP 운용 자체는 외주를 줄 수 있는 성격의 업무가 아니다. 컨설팅은 복잡한 허가 요구사항들을 충족해 규정된 절차를 거쳐 종국적으로 허가를 취득할 수 있는 방향을 알려줄 뿐이며,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본질적인 근거자료는 개발기업으로부터 나와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의료기기 산업발전을 위한 RA의 지위와 예우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는 CEO의 기업경영 철학 및 기준에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인내심을 갖고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하는 일이다. 우선, 여러 CEO에게 RA 직무의 전반적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반나절 정도의 CEO 전용 교육과정 개설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아울러 공공기관에서 RA들의 창업에만 국한해 집중 지원하는 새로운 비R&D 인프라 구축사업이 기획돼 시행될 필요가 있다. 정부의 본격적인 투자에 앞서 일차적으로, 이러한 지원사업의 성과확산 효과 검증을 위한 시범사업 추진을 제안한다. 중장기적으로 RA 출신이 경영하는 의료기기 기업의 창업이 활성화된다면,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생각하던 주제로 ‘의료기기산업의 미래를 향한 연속 제언’의 최종회를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협회에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따라 주어진 임무가 점점 더 막중해져가는 의료기기산업협회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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