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기기산업 미래를 향한 연속 제언 ⑨

의료기기심사부 조직개편·인력확대가 필요한 이유

박 기 정
DK메디칼솔루션 고문

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심사부 (현재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소속) 첨단의료기기과 등에서 약 30여년 간 의료기기 허가·심사 업무를 수행해 왔다.

의료기기 허가·심사 업무는 언제나 매우 어렵고, 걱정스럽고, 고된 시간이었다. 제조나 수입업체들은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를 시장에 먼저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신제품에 대한 국제표준기구(ISO), 국제전기표준회의(IEC), 미국 재료시험협회 규격(ASTM Standards) 등 안전성 및 유효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나오는 속도는 늘 한 발짝 느렸다. 또, 새로운 기준이 국제적으로 논의된다 하더라도 국내에 도입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국내 기준규격으로 고시, 시험검사기관과 협의해 시험에 필요한 장비도입 및 시험절차 정립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임상 시험을 통해 안전성 및 유효성을 입증해도, 피험자가 제한된 소규모 임상시험자료로는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100% 검증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안전성 및 유효성 등을 입증할 수 있는 기준이나 환경 등이 많이 구축됐다. 그렇지만 과거 필자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현재 식약처에서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인력,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의료기기 심사업무 담당자들에게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 사항인만큼 최선을 다해 허가·심사업무를 진행했어도 한편으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내 의료기기법에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기 허가된 제품에 대한 재평가(의료기기법 제9조)' 및 '갱신제도(의료기기법 제49조)'를 두고 있다. '재평가'는 식약처장이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제품을 행정지도를 통해 일정기간 내 재평가를 받도록 한 제도다. 또, '갱신'은 모든 허가·인증·신고증에 유효기간을 둬, 5년마다 현재의 새로운 기준에도 적합한지 평가하고 적합한 경우 유효기간을 새롭게 부여하는 제도다.

즉 시급성이 요하는 안전성 이슈는 재평가 제도로, 최신 기준규격 적용여부를 포함해 시판 후 안전성·유효성 평가는 갱신제도를 통해, 국민 안전 보호망을 더욱 촘촘하고 단단하게 구축했다.

참고로, 식약처에서는 과거 제품에 대한 갱신을 2025년부터 시행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갱신 또는 이와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 또는 중국에서는 명시적으로 품목 등의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정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 명시적인 갱신제도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으나 ‘품목 중심의 QMS(Quality Management System) 심사’를 통해 최신규격 적용여부 등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매년 제조업자에게 시설 및 품목 리스트를 등록하도록 요구 (FDCA Sec 510. - 21 U.S. Code)하고 품목 리스트 등록 시, 제품에 대한 설명 및 적용규격 등을 포함시켜 갱신제도와 동일한 효과를 달성하고 있다.

다만, 이런 효과적인 제도가 실효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기관, 특히 의료기기심사부 조직 개편 및 인력 확대가 절실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그 소속기관 직제(대통령령 제31649호)'에 따르면, 의료기기심사부의 업무는 △의료기기 기술문서 등의 심사에 관한 사항 △의료기기 임상시험계획의 심사 △의료기기 허가·신고 및 임상시험계획 승인 등의 사전검토 △의료기기의 기준규격의 설정 및 운영 지원 △의료기기 기술문서 심사기관의 심사원 교육에 관한 사항 △의료기기 기술문서 심사기관 및 시험검사기관의 지정 및 지도·감독에 대한 지원 △신개발의료기기 허가 지원 △의료기기 재심사 및 재평가에 관한 자료 심사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심사(GMP) 의 심사 지원 등이다.

의료기기심사부는 '첨단의료기기과, 체외진단기기과, 심혈영상기기과, 정형재활기기과, 구강소화기기과'로 구분돼 있다. 심사부내 모든 과가 의료기기 품목별로 상기와 같은 업무를 각각 동일하게 수행하고 있다.

최근 4차산업혁명기술 발달로 인공지능(AI), 로봇과 같은 첨단의료기기가 시장에 대거 진출하는 추세다. 지난 5월 식약처가 발표한 ‘2020년 의료기기 허가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AI 기반 의료기기’의 허가 건수는 지난해 총 50건으로 2019년 10건 대비 5배 증가했다. AI 기반 의료기기 허가건수가 2017년 0건, 2018년 4건이었으니 성장세가 확연하다.

첨단의료기기산업 성장 바탕에는 식약처 의료기기심사부 첨단의료기기과가 세계 최초로 발표한 AI 활용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식약처는 규제가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산업 성장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지난해 4월 신설된 디지털헬스기기TF 또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가속화했다. 명명조차 없었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를 하나의 품목군으로 분류하고 90개 품목을 신설했으며, 치료 목적의 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도 발간했다.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업데이트가 잦고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신속한 허가·심사, 신개발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개발, 임상시험계획 승인 등이 필수적이다. 허가·심사에 필요한 가이드라인 및 기준규격 개발에 현재의 인력과 능력을 모두 쏟아 부어도 부족한 시점이다. 그런데 허가·심사 업무 외에도 기준규격 설정, GMP심사 지원 등 첩첩산중 업무가 쌓여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시판 후 안전성·유효성 등 갱신 업무 또한 평가업무에 해당되므로 향후, 의료기기심사부에서 실시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업무다보니 과다한 업무량에 심사자의 피로감이 누적되며 업무 능력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의료기기심사부의 효과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조직 개편이나 인력 보충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의료기기 품목별로 구분한 조직 구성을 과감하게 개편할 필요가 있다. 의료기기심사부도 의료기기정책과, 의료기기관리과, 의료기기안전평가과 등 행정업무 부서처럼 평가 업무에 대해서도 세부 단위로 구분하면 어떨까. 구체적으로 △의료기기 임상시험평가 △신개발 의료기기 허가지원 △의료기기 재심사·재평가·갱신 △의료기기 기술문서 심사 등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조직 개편에 더해 심사자 확충 또한 반드시 이뤄져야한다.

개별 평가과가 업계와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불필요한 규제를 개선하고 평가 업무를 합리적으로 수행하며, 산업계 발전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지속 개발한다면 산업 발전과 국민 안전 및 보건 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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