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기기산업 미래를 향한 연속 제언 ⑧

 "효율적 제도 개선, 민관 ‘상호이해·협력’ 선행돼야"

▲ 안 지 영<br>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br>이사<br>
▲ 안 지 영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
이사

'관점으로 인해 생각이 달라진다'

우연히 한 TV강연에서 들은 말이다. ‘같은 주제를 바라보더라도 관점이 바뀌면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이 말에 ‘정부 규제당국과 의료기기 산업계가 바로 이런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약처와 산업계는 국민 건강과 국내 의료기기 산업 발전이라는 공통 목표를 가졌으나, 그 목표로 향하는 과정과 관점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능력과 장점이 있기에 상호 이해도를 높이고 두터운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면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식약처와 산업계가 서로를 더 이해하고 긴밀한 협력관계가 되기를 바라며 필자가 양쪽을 모두 경험하며 느꼈던 점들을 공유해보려 한다. 다만,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일반적인 견해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주길 바란다.

필자가 식약처에서 심사 업무를 담당했을 때는 의료기기 제조·수입사라면 허가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당연히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허가 관련 규정과 필요한 요건은 이미 공개돼 있으므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이 아니라면 허가에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준비해서 최소한의 보완을 받도록 미리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신청서류에 대한 보완 요청을 할 때마다 미비한 신청자료와 기술문서가 이해되지 않았다. 때로는 허가를 위한 자료 준비에 성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심사자는 여러 회사의 제품을 심사하기 때문에 다양한 회사의 서류를 보게 된다. 즉, 접수된 자료들은 자연스레 비교가 될 때가 있다. 심사자 입장에서는 매번 모든 자료를 꼼꼼하게 준비해서 접수하는 민원인과 그 회사에는 신뢰가 쌓이게 된다. 신뢰는 심사 속도를 높이고 결과적으로 신속한 허가로 연결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으나, 이 글의 목적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함이니 반대의 예는 들지 않겠다.

이제 민원인 입장에서 허가자료 준비과정을 살펴보겠다. 제조사는 심사자들이 기대하듯 각 나라의 요건에 맞춰 허가에 필요한 자료를 사전에 모두 준비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주요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채택하는 국제표준에 맞는 허가 자료를 우선 준비한다. 그 다음으로 일본, 중국 등 시장 규모가 큰 나라들이 요구하는 추가 요건에 맞춰 자료를 준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만 요구되는 자료에 대해 본사 지원을 받으려면 거듭 요청해야만 하고 자료를 받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완벽한 접수를 위해 서둘러 자료 제공을 요청하지만 접수 전에 제조원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서류를 받아내기는 매번 어렵다. 

또한 회사마다 품질관리 시스템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모든 허가 관련 자료는 회사의 품질관리 시스템 하에서 관리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허가를 위해 필요한 시험을 국내에서 진행하려고 하면 해외 제조원에서 우려를 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본사에서 시험을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 국내에서 시험을 진행하는 것 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제때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는 회사의 변명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으나, 의외로 많은 회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다른 회사는 다 제출하고 있는데 왜 제출하기 어렵다고 하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데, 제출한 사람도 그 자료를 받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민원인들은 최소한의 보완을 받아야 허가도 빠르게 받을 수 있기에 최대한 규정에 맞춰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노력을 소홀히 하는게 아니라,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국내에서만 요구되는 자료를 준비하는 데는 항상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심사자들이 조금 더 이해해 주길 바란다. 

다음으로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나, 허가심사 시 심사자와 민원인 간에 시각 차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생각돼 이 기회에 언급보고자 한다. 바로 제조원 자료에 대한 신뢰도이다. 심사자들은 선배 심사자들로부터 들은 무수히 많은 사례와 수시로 발생하는 제품 관련 이슈들을 보고 직접 겪으며 심사 시 제출된 자료가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인지 확인하고자 한다. 자료에서 확인되는 정보가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설명하는데 충분하더라도 요건에 맞지 않는 자료라면 또는 신뢰할 만한 추가 정보가 없다면 인정되기 어렵다. 그 동안 수많은 크고 작은 이슈들에 터졌을 때, 언론은 상당부분 ‘식약처의 잘못된 허가 관리 떄문’이라고 비판한다. 모든 자료를 꼼꼼히 심사하고 최선을 다해 사후관리 한 식약처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약처는 식약처가 인증한 기관이 발행한 자료, 국제적으로 인증된 기관에서 발행된 자료 등 제품의 안전성과 관련된 제출 자료에는 요건을 만들었고, 최대한 많은 가이드라인 등을 제공해 민원인의 편의는 물론 심사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 같은 요건이 민원인에게는 심사의 신뢰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한 노력보다는 강한 규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규정과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난 형식의 자료는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허가를 진행하다 보면 ‘제출된 자료가 요건에 맞지 않다’ 혹은 ‘기존에 인정된 적이 없는 자료다’라는 답변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심사를 오래한 심사자들은 제출된 자료에서 검토해야할 내용이 충분히 확인된다면  자료를 폭 넓게 인정해준다. 뿐만 아니라 자료의 내용이 부족하다면 어떤 방향으로 보완해 준비하면 되는지 함께 논의하고 방향도 제시해준다. 바로 민원인들이 원하는 심사의 방향이다. 다만, 이런 논의도 심사자가 제조사의 자료를 신뢰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제조사의 자료는 어떻게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까? 제품의 안전성과 성능 입증 방법은 제품을 가장 잘 아는 제조사가 선택하고, 그 절차와 결과물에 대한 관리는 제조사의 품질관리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 따라서 제품의 설계부터 사후관리까지 모든 과정이 시스템적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제조원의 품질관리 시스템을 검토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안전관리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식약처도 이런 필요성을 알기에 2007년 ISO 13485를 근간으로 한 의료기기 품질시스템 인증제도(GMP, Good Manufacturing Practice)를 전면 도입했고, 2012년부터는 해외 제조소에 대한 현장심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허가 시 일부 자료는 제조원 자료로 인정이 안되고 제3의 인증된 기관에서 발행한 자료여야 하며, GMP 심사(서류심사) 시에는 서류의 진위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서류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 GMP 인증을 받은 제조사가 제출하는 서류임에도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조원 자료를 신뢰할 수 있도록 GMP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신뢰를 깨는 행위를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적절하고 객관적인 처벌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일부 사례로 인해 대다수의 업체가 피해를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결론을 정리하자면,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국내 의료기기 제도와 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식약처와 산업계의 상호 이해와 협력이 전제 조건이다. 식약처와 산업계 모두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 개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안지영 이사는 이화여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04년 식약처에 임용됐다.  2013년까지 9년간  의료기기심사부와 의료기기관리과 등을 거치며 의료기기 허가·심사분야 전문성을 쌓았다. 이후 GE헬스코리아를 거쳐 2017년부터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에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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