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28회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28회 

재혼황후의 전 남편의 친자 확인 소송
(feat. 분자진단 의료기기가 있었더라면)

▲ 임 수 섭LSM 인증 교육원 대표의료기기 법정 품질책임자RA 자격증 교육 강사
▲ 임 수 섭
LSM 인증 교육원 대표
의료기기 법정 품질책임자RA 자격증 교육 강사

'또옥-!' 글로리엠의 마지막 핏방울이 떨어졌다. 이전에 떨어뜨렸던 두 개의 핏방울과 뒤섞이며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왔다. 그 짧은 순간 라스타는 바라고 또 바랬다. ‘제발, 맑게 변하기를!’. 하지만 피는 탁하게 뒤엉긴 채로 남아 있었다. “아, 아니야!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한때 황금보다도 더 탐스러웠던 그녀의 은발은 지금 절망의 크기에 비례해 타다 남은 재처럼 잿빛으로 퇴색해갔다. “폐하, 글로리엠은 당신의 딸이에요! 세상 누구보다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더 이상 무어라 말해야 할까?” 흑요석보다 더 깊은 눈동자로 라스타를 응시하며, “이미 내 아이가 아니라고 하는데, 어디까지 나를 치욕스럽게 만들 거지?!” 그보다 더 선명하고 서늘한 음성으로 동대제국의 황제, 소비에슈가 반문했다. 그 순간, 글로리엠이 자지러지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 내용은 유명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 ’재혼황후‘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로, 본 작품의 주인공이자 황후인 나비에를 밀어내고 황후가 된 라스타와 황제 소비에슈 사이에 생긴 딸 글로리엠이 그의 친자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장면을 각색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속한 분야인 웹소설은 무엇일까? 현재 웹툰과 함께 문화산업계의 신 미디어이자, 주류를 이끌고 있는 대중문학의 한 장르로 책, 잡지 같은 출판, 인쇄물로 나오는 대신, 인터넷에서 연재됐던 90년대 인터넷 소설로부터 진화해서, 2010년대에 본격 개화된 분야이다. 이우혁의 ‘퇴마록’,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그리고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도레미파솔라시도’ 등의 로맨스 소설로 유명했던 귀여니의 작품들과 같은 인터넷 소설이 출간을 통해 도서대여점, 서점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은 반면, 웹소설은 인터넷에서 연재되면서 회차별 결제로 먼저 수익을 올리고,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게임, 웹툰 등 미디어 믹스를 통해 확장과 수익 극대화를 지향한다. 이러한 웹소설의 시장 규모는 2013년 100억 원대, 2014년 200억 원대, 2015년 500억 원대, 2016년 1,800억 원대, 2017년 2,700억 원대, 2018년 4,000억 원대, 2019년 5,000억 원대 그리고 2020년 6,000억 원대까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시장이 급성장하게 된 이유로는 스마트폰 같은 1인 미디어가 보편화 돼 시장 접근성과 확정성이 높아진 가운데, 상술한 ‘원 소스 멀티 유즈 (One-Source Multi-Use)’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프린스 1호점’, ‘김 비서가 왜 그럴까?’, ‘그녀의 사생활’, ‘진심이 닿다’, ‘설렘주의보’, ‘해를 품은 달’, ‘저스티스’, ‘미스터 백’,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구르미 그린 달빛’ 그리고 ‘성균관 스캔들’ 등의 드라마가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인데, ‘재혼황후’는 이러한 웹소설의 현재 대세 격이자, 해당 작품이 연재되는 네이버 웹소설의 간판 작품이다. 이 작품은 누적 매출액 50억 원의 압도적인 판매량에, 웹툰으로도 연재되고 있고 드라마화도 예정돼 있는데, "제가 변했다고요? 변한 것은 폐하이십니다. 사과는 됐어요. 이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재혼 승인을 요구합니다"라는 작품 속 대사를 읊는 배우 수애의 광고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쯤에서 다시 ‘재혼황후’의 본문으로 돌아가 보자. 신전에서 신관이 준비한 친자 확인 마법 액체에 소비에슈, 라스타 그리고 글로리엠의 피를 섞어서 맑게 변하면 친자가 맞고, 탁한 상태로 끓어오르면 친자가 아닌데, 상술한 것처럼 친자가 아닌 것으로 판별이 났다. 하지만 이는 이 작품의 흑막 격이자, 소비에슈에게 원한이 있는 에르기라는 인물이 친자 확인 검사를 조작한 결과로, 사실 글로리엠은 소비에슈의 딸이 맞았다. 이를 몰랐던 소비에슈는 라스타와 이혼함과 동시에, 그녀를 황후에서 폐위시키고 그녀를 죽이기까지 한다. 글로리엠 역시 공주에서 폐위되고 황궁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더 비극적인 건 소비에슈가 그녀가 친자임을 알게 됐을 때는 그녀는 행방불명이 돼 자신의 출신을 모른 채, 산적의 딸이라는 비천한 신분으로 전락해 버렸다.

만약 소비에슈가 기원, 발견 및 개발 경위가 불명확하고 안전성과 유효성 확인이 되지 않은 마법 약 대신, 분자진단 의료기기를 사용했다면 어떠했을까? 검출 또는 측정 원리·방법이 정확히 제시되고, 표준물질 및 검체에 대한 조건이 명확히 정의되며, 원재료 및 제조방법에 대한 정보도 확실할 뿐만 아니라, 분석적 민감도, 분석적 특이도, 정밀도, 정확도가 검증되고, 임상적 민감도, 임상적 특이도와 같은 안전성, 유효성 확인까지 통과했으며, 허가 이후에도 품질관리 시험을 받는 식약처의 체외진단의료기기를 사용해서, 공신력이 보장되는 의료기관에서 검사했다면 상술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의 원리는 어떻게 될까? 자녀는 부모로부터 각각 23개의 염색체를 물려받아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게 된다. 여기서 성염색체를 포함한 총 16~24개의 STR 유전자 좌위를 조사하는데, 염색체에 일정한 부위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염기 서열상의 단위 반복구조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의 유전자 타입이 모두 일치할 경우, 친자로 판정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15개 이상의 STR 유전자 좌위에 대해서 부, 모, 자 3인의 유전자 검사를 시행할 경우, 최소 99.999%의 친부지수를 보장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이를 위해 필요한 검체는 혈액, 모근이 있는 머리카락, 구강상피세포, 침뿐만 아니라, 심지어 칫솔, 손톱, 껌, 담배꽁초, 체액이 묻은 옷 등 소량의 유전자 정보만 있어도 가능하다. 검사 방법은 보통 ‘친자검사 신청’ → ‘친자검사 신청서류 및 검체 채취키트 발송’ → ‘검체 접수’ → ‘DNA 추출’ → ‘PCR 증폭’ → ‘유전자형 분석 및 판독’ → ‘친자검사 결과 통보’ 순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친자확인검사에 사용되는 체외진단의료기기는 인체 유래 검체에서 분자진단을 위해 핵산(DNA, RNA)을 자동으로 추출하는 ‘핵산추출장치 (I03010.01, 1등급)’, 인체 유래 검체에서 분자진단을 위해 핵산(DNA, RNA)을 추출하는 시약인 ‘핵산추출시약 (I03020.01, 1등급)’ 그리고 임상 검체 중 세포 또는 감염체의 핵산(DNA 또는 RNA)을 증폭하고 형광검출기를 통해 실시간 증폭확인 및 검체 중의 핵산을 정량 가능한 ‘실시간유전자증폭장치 (N01030.01, 2등급)’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의료기기만 보아도 바로 지금이 평범한 국민도 과거의 비범한 황제보다 더 풍족하고 안전한 세상에 살 수 있는 시대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가장 안타까운 비극 중의 하나를 막을 수 있기에 말이다.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