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 정희석 의료팀 기자 기고- 의료기기 시장의 건전한 유통구조 개선

■ 의료기기 시장의 건전한 유통구조 개선 

 

의료기기업계, 간납사와의 ‘악연(惡緣)’ 이번엔 끊을까 
 

▲ 정희석
메디칼타임즈
의료팀 기자

“수행 업무에 비해 과도한 간납수수료 책정과 높은 마진을 취해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의료기기 유통구조를 만든 간납도매업체(간납사)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의료기기업체가 의료기관의 의료기기(치료재료) 구매업무를 대행하는 간납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한 개선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특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업계를 대변해 별도 TF팀을 꾸리는 등 간납제 제도 개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협회의 이 같은 움직임은 다름아닌 회원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다. 

국내 제조사를 비롯한 다국적기업들은 과도한 수수료 징수·납품기회 차단 등 유통질서 교란과 함께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발생하는 비용 전가는 물론 도매상에 지불하는 수수료가 매년 증가하는 등 간납사에 대한 불만이 한계치를 넘어섰다.

고가의 구매대행 수수료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갑-을’ 관계에 있었던 간납사와 의료기기업체 간 악연은 시간을 거슬러 3년 전부터 시작됐다. 2012년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를 비롯한 의료기기 4개 단체는 회원사를 대상으로 간납사들의 불공정거래 관행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형 간납사들의 불법 리베이트 조사가 진행되면서 부당거래 및 부적절한 납품 관행을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실제로 당시 협회가 회원사들에게 발송한 의견수렴서는 간납사들이 요구하는 △수수료율 △수수료 부과체계 투명성 여부 △대금 결제기간(현금·어음) △납품대금에 대한 보증제도 유무 △간납사 역할(가격협상·계약 및 세금계산서 발행·대금결제·의료기관 검수납품·제품보관)을 묻는 문항으로 작성됐다.

이를 통해 의료기기 4개 단체는 간납사들의 불공정행위를 최대한 수집해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강력하게 시정을 촉구하고 제도개선을 요구한다는 방침이었다. 

업계는 이 같은 의견 수렴에만 그치지 않았다. 2013년 초 협회는 간납제 폐지를 담은 제도개선안을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협회는 개선안에서 “간납사들이 의료기기제조·수입·판매업체로부터 구입한 의료기기를 실제 구입가격보다 높은 금액으로 의료기관에 공급하고, 그 차액 중 일부를 의료기관에 리베이트로 제공하는 비리를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일부 간납사들은 담당업무에 비해 과도한 수수료를 징수하고 공급물품에 대한 대금결제 보증회피, 세금계산서 발급 지연 및 납품기회 차단 등 의료기기 유통질서를 교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간납사가 법상 설치 근거가 없고 계약·대금결제 등 대부분 단순 행정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특별한 존치사유가 없다”며 간납제 폐지를 건의했다.

다만 부득이하게 간납사가 존치해야 한다면 △과도한 대행수수료 대폭 인하 △정율 수수료 도입 △납품과 동시에 세금계산서 발행 △대금결제기간 단축 △대금지급 보증 △재벌기업 투자방지 등 현실적인 제도개선안을 제시했다.

협회를 중심으로 한 업계의 간납사 폐지 목소리는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어졌다. 협회는 2013년 10월 28일 국무총리실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과의 ‘의료기기업종 규제개선 간담회’에서 간납사 폐지를 위한 제도개선을 건의했다.

당시 협회가 제출한 제도개선안을 보면, 간납사가 의료기기업체와 의료기관 사이에서 ‘계약에 의한 독점적 기업 간 거래’(B2B)를 수행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공정한 유통거래를 위반하더라도 행정처분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간납사가 의료기관으로부터 의료기기·치료재료 구매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지만 의료기기법상 제조업·수입업·판매업·임대업 등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 행정처벌 근거가 없다는 것.

협회는 특히 “건강보험 재정과 연계해 치료재료 보험수가는 지속적으로 인하되는데 반해 간납수수료는 매년 인상될 뿐만 아니라 수수료 또한 과도한 수준”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간납사를 폐지하거나 의료기기 도매업허가를 신설해 허가받은 사람만이 간납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매업자 준수사항을 법제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간납사 압박 공세…정부 제도개선 ‘만지작’

회원사 대상 설문조사는 물론 정부 민원과 공정거래법 등 법상 간납제 문제를 파악하는 등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독점적 권한을 가진 간납사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을까?

업계는 별다른 제도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일정시간 간납사 문제를 방치해온 게 사실이다.

협회를 중심으로 의료기기업계가 과거처럼 의견 제시에 그치지 않고 다각적인 접근방식과 강력한 의지로 간납제 폐지를 현실화하겠다고 나선 시점은 지난 7월. 협회는 현 정부 규제완화 기조를 등에 업고 간납제 완전 폐지를‘의료기기 중점 규제과제’로 삼아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국회·언론 등 다양한 채널을 이용해 업계 목소리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이 일자 일각에서는 이번만큼은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중심 친기업적인 정책 기조를 감안할 때 업계가 주장하는 간납사 폐지 목소리가 상당부분 설득력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실제로 협회가 현 정부 들어 민관이 참여하는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한 의료기기 분야 개선과제 중 ‘신의료기술평가’를 제외한 요구안들이 대부분 수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아진 의료기기업계 위상 또한 한층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

대표적으로 의료기기분야 ‘손톱 및 가시’였던 신의료기술평가의 경우 업계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제도개선 건의로 상당부분 진전을 이뤄냈다. 이는 의료기기업계가 무조건 순응하던 ‘을’입장에서 벗어나 불합리한 제도에 맞서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제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 아니라 영향력 또한 커졌다는 방증이다.

특히 협회 차원의 TF팀 구성과 함께 심평원과 업계가 참여해 치료재료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협의체’구성 움직임이 일면서 간납사 폐지 주장에 더욱 힘이 실렸다.

심평원 치료재료실 재료기획부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등 업계는 지난 8월 간담회를 갖고 ‘치료재료 유통구조 실태조사 계획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치료재료 유통구조 실태조사 계획안은 심평원 치료재료실에서 마련한 것으로 현행 치료재료 유통 현황 및 문제점과 실태조사 계획안은 물론 제도개선을 위한 추진일정까지 담고 있다. 특히 계획안에서 밝힌 추진배경을 보면 그간 의료기기업계가 제기한 간납사 폐해 주장을 심평원이 상당부분 인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실제 계획안을 들여다보면 대형 도매업체의 과도한 수수료 징수·납품기회 차단 등 유통질서 교란과 함께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발생하는 비용과 도매상에 지불하는 수수료가 평균 1.7~17% 매년 증가하는 등 업계 불만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실태조사 추진배경으로 기술했다.

또 치료재료업체가 유통업체 수수료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시 납품 불가와 유통업체 수수료(마진율·할인율·인하율) 근거 부재를 비롯해 치료재료 상한금액의 5~30%까지 수수료를 요구하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관행 해결을 업계가 요구한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뿐 아니라 정책 차원의 관리체계 필요성 또한 치료재료 유통구조 실태조사를 계획한 이유로 거론됐다. 즉, 치료재료는 의료기기에 포괄해 관리하지만 유통을 전담하는 정책적 관리주체가 부재할 뿐 아니라 특수 관계자 간 거래행위 금지 조항 등 유통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를 근절시키기 위한 법적근거 또한 미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약품의 경우 약사법 제47조(의약품 등의 판매질서) 제4항에 따라 도매상이 의료기관 및 약국과 특수 관계가 있는 경우 판매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심평원은 치료재료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세부 추진계획으로 업계를 포함한 이해관계자와의 업무체계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제조·수입업체 등 치료재료 업계와의 격월 주기 정기토론회를 활용해 유통단계별 불공정거래 행위로 인한 어려움 등 구체적인 사례를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

더불어 복지부·식약처·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부처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등 관련단체가 참여하는 워킹그룹을 구성·운영해 실효성 높은 개선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간납제 개선 목소리 정부 귀담아 들어야

과도한 수수료 징수·유통비용 전가·납품기회 차단 등으로 의료기기업계 공분을 사고 있는 간납사는 사실 미국 GPO(Group Purchasing Organization)처럼 잘만 활용하면 병원과 의료기기(치료재료) 공급업체 모두에게 득이 된다.

미국 GPO는 다수의 병원으로부터 구매대행을 위탁 받아 공급업체로부터 대량으로 제품을 일괄 구매한다. 제품을 대량 구매하기 때문에 제품 가격할인이 가능하고, 이 과정에서 개별 병원은 수량할인을 받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때 GPO는 비용절감액의 일정부분을 마진으로 취한다.

공급업체 또한 안정적인 제품 공급과 함께 일괄구매를 통한 유통 및 재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병원과 공급업체 모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간납사가 정작 국내에서는 전혀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

오히려 유통단계만 늘어나 전체 유통비용 상승을 불러오고, 공급업체에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해 간납사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불만이다. 업계는 이 같은 횡포를 막기 위해 의료기기법상 설립근거가 없고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재정 건전성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간납사 폐지 또는 도매업 신설을 지속적으로 건의해왔다.

하지만 업계가 주장하는 간납사 폐지 또는 제도개선은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우선 하루아침에 간납사들의 구매대행 업무를 폐지하기란 법적인 근거가 미약할 뿐 아니라 도매업 신설 역시 간납사를 양성화할 수 있다는 한계성을 갖고 있다.

또 간납사 폐지 주장을 놓고 업체들의 입장이 다른 점도 풀어야 할 숙제. 

일부 의료기기업체의 경우 그나마 간납사를 통해 진입장벽이 높은 병원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간납사 폐지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욱이 병원과 간납사가 한 몸통으로 움직이고 있는 현실에서 ‘을’ 입장에 있는 업계가 ‘갑’을 상대로 한 간납사 폐지 주장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업계 또한 이 같은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에 좀 더 현실적인 대응방안을 신중히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업계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 간납사가 서서히 응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대형 간납사 ‘이지메디컴’은 지난 8월 병원 및 공급업체 대상 고객 만족도 조사결과 및 개선방안을 위한 직원 대상 설명회를 갖고, 고객만족경영 실천을 결의했다. 당시 이지메디컴은 “구매·물류·시스템 등 서비스 영역별 고객들의 만족도 수준과 향후 문제점 개선을 위한 방안을 적극 논의해 고객만족도 향상을 위한 전사적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족도 조사결과에서 지적된 문제점들은 지속적인 현장방문 조사를 통해 실질적인 개선여부를 면밀하게 점검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지메디컴의 자정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9월 1일에는 업무 준거주의 정착과 건전하고 공정한 거래질서 유지 및 고객중심 책임경영 실천을 담은 윤리규범도 선포했다.

여기서 마련한 윤리규범 5개 원칙하에 수립한 실천규정은 △고객의견 수렴 및 성실한 정보제공 △고객 정보와 이익 보호 △공정한 거래질서 유지 △직무수행 상 비윤리적 행위 금지 △이해관계자로부터의 경제적 이익 수수 금지 △회계제도의 투명성 및 기업정보 제공 등 총 13개 조항과 세부지침을 담고 있다. 더 이상 정부 정책에 무조건 순응하던 의료기기업계 모습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업계는 최근 몇 년간 신의료기술평가 등 각종 현안에 제 목소리를 내왔고 상당부분 제도개선 성과도 일궈냈다. 특히 이 중심에는 업계를 비롯한 회원사 이익을 대변해 ‘정책 중심’ 회무를 펼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있다.

업계 공분을 사고 있는 간납사 문제 또한 협회가 나서 TF팀을 구성해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조율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유의미한 해결책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간납사 문제의 본질은 공급업체에 강요된 일방적인 희생의 대가가 병원과 간납사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건강보험재정 건전성을 확보해 환자에게 이익을 돌려주고자 시행한 ‘치료재료 상한제’ 취지에도 크게 어긋나 보인다.

과거 실패를 교훈삼아 간납사 폐지 카드를 또 다시 꺼내든 협회 TF팀과 업계 목소리를 복지부·심평원 등 정부기관이 귀담아들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이 글은 의료기기협회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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