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  의료기기산업 미래를 향한 연속 제언 ⑥

규제당국과 산업계의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한 이유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 정 희 교
연세대 의과대학
의료기기기산업학과 교수

2017년 7월 미국 FDA는 디지털헬스 등 혁신의료기기에 대한 새로운 규제시스템이 포함된 디지털헬스혁신계획(Digital Health Innovation Action Plan)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FDA에 디지털헬스케어팀이 신설됐다.

2017년 11월, 우리나라는 인공지능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세계 최초로 발표했다. 2019년 4월에는 ‘의료기기 산업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20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심사부에 디지털헬스기기TF팀이 발족했다. 디지털헬스로 대변되는 혁신의료기기를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해 우리나라도 미국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와 산업계가 기존의 전통적인 의료기기에 비해 혁신 의료기기 육성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개인맞춤형 의료 등 시장성이 크고, 의료기기산업의 미래가 혁신 의료기기에 달려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우리나라가 단숨에 선진 의료기기 강국을 뛰어넘어 의료기기 산업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마지막으로 정보통신기술과 첨단기술이 앞서 있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혁신 의료기기 개발과 보급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닌가 한다. 

혁신 의료기기는 기존 임상에 사용되던 기술과 전혀 다른 새로운 첨단기술이 사용된다. 때문에 기존 규제의 적용이 불명확해 지면서 혼란을 야기한다. 일반적으로 규제 당국은 첨단기술이 적용된 혁신 의료기기에 대해 기존 규제를 최대한 적용해 본 후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될 경우 규정의 개정을 시도한다. 즉,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즈음 산업계는 기존의 규제로는 해결이 어려우니 규제 완화를 주장하며 규제개혁 의제를 발의한다. 사용자는 새로운 혁신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의문의 눈으로 바라본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혁신 의료기기의 바람직한 규제 방향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규제는 규제 장벽의 높이와 넓이에 상관없이 규제 적용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규제 당국과 업계 등 이해관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규제 당국은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새로운 규제를 선제적으로 개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규제 적용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업계는 틀에 맞지 않는 기존 규제 완화를 주장하기보다, 혁신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 방향을 먼저 규제 당국에 제안해야 한다. 혁신 의료기기에 적용된 첨단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업계에서 규제의 방법, 높이와 넓이를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규제 당국의 제한된 인력으로 급변하는 혁신 의료기기의 기술을 모두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규제 당국과 업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사회 전반에 걸쳐 디지털화가 심화되고 첨단기술의 개발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러한 협력은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혁신 의료기기의 신속한 허가처리를 위해 혁신 의료기기에 적용될 규제의 높이와 넓이를 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혁신 의료기기 규제는 사용자가 안심할 수준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담보돼야 한다. 식약처가 판매 허가한 혁신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은 사용자가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의료기기 개발에서 사용 후 폐기까지의 전 주기(total product life cycle) 안전관리는 혁신 의료기기에서 더욱 중요해 보인다. 

의료기기는 우리나라 보건산업 특성상 식약처의 판매허가 후 건강보험이라는 또 다른 장벽을 통과해야 한다. 식약처는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심사해 판매를 허가한다. 건강보험은 식약처의 판매허가 후 의료기기의 비용·효과성 즉 유용성을 심사해 보험가격을 결정하고 의료현장의 사용을 승인한다. 보험 등재다. 혁신 의료기기의 건강보험 등재와 관련해 발생하는 많은 이슈는 이 유용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유용성은 의료현장에서 사용된 데이터인 근거를 기반으로 한다. 국내에서 제조돼 판매 허가받은 혁신 의료기기의 경우, 허가 시 제출된 임상시험 성적서를 제외하면 의료현장의 사용 사례가 없다. 유용성을 평가받을 자료, 즉 임상적 근거가 부족한 것이다. 유용성을 평가받을 자료가 부족하면 임상현장에 사용될 수 없다. 국내에서 제조돼 식약처의 판매 허가된 혁신 의료기기가 의료기기산업을 부흥시킬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의료현장의 접근이 어려워지는 이유다. 

반면 외국에서 제조돼 허가된 혁신 의료기기는 허가받은 외국 국가에서 사용되면서 의료현장의 데이터가 축적된다. 유용성 평가를 위한 근거자료이다. 수입 의료기기의 보험 등재 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제조돼 판매 허가된 혁신 의료기기와 수입되는 혁신 의료기기의 불평등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구조적 모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개선대책이 제시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않아 보인다.

식약처에서 판매 허가된 혁신의료기기는 의료현장에 사용되고, 추후 유용성이 평가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된 안전성과 유효성 이슈는 의료기기 판매를 허가한 식약처의 몫으로 두어야 한다.

최근 불면증 완화를 표방하는 빅헬스사의 디지털치료기기 sleepio의 비용·효과성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국제학술지 ‘sleep’에 발표됐다. 이 연구는 실제 임상데이터가 아닌 컴퓨터 모의시험으로 디지털치료기기의 유용성을 분석한 것이다. 건강보험에서 혁신 의료기기의 임상적 근거와 관련된 유용성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업계와 정부는 디지털헬스 등 혁신 의료기기의 개발과 육성을 위해 어느 때 보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더해 중요한 부분은 규제 당국에서 혁신기술에 대한 전문가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의료기기산업은 많은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산업 분야다. 특히 디지털헬스 등 혁신의료기기 규제를 선도할 수 있는 전문가를 보강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식약처의 관련 분야 전문가 보강이 그러하다. 산업계는 규제당국의 혁신 의료기기 등 규제정책에 대한 이해와 자기 제품의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 의료기기산업은 결국 업계와 규제 당국의 협력적 조화에 의해 발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의 발전을 위해 규제 당국과 산업계의 조화로운 협력을 기대해 본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