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방향 맞더라도, 현실 여건 맞춰 속도 조절 필요"

● 의료기기산업발전을 위한 제언

"의료기기 시장은 규제와 제도 위에서 형성"
"목표·방향 맞더라도, 현실 여건 맞춰 속도 조절 필요"

▲ 문 성 희 비앤씨헬스케어 대표이사
▲ 문 성 희 비앤씨헬스케어 대표이사

필자가 의료기기산업에 몸담은 지 이제 막 10년이 넘었다. 초침과도 같은시간이었지만, 많은 원로분들과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큰 경험과 배움을 얻었다.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많은 분과 의료기기 기획, 마케팅, 무역,영업, 허가, 시스템 구축 등의 업무를 함께 진행해 오며 나름의 의견을 얻었다. 바로 ‘의료기기 시장은 결국 의료기기 규제와 제도 위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물론 너무나 당연한 문장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의료기기 산업에서 규제와 제도의 중요성과 필수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기기 시장에서 규제와 제도는 매우 중요한 기반이자, 의료기기 시장의 특수성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의료기기 시장에서 요구되는 규제는 다른 산업과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많다. 제품의 품질이나 안전성은 기본이고, 제조자의 능력, 형태, 시설 등까지 관여한다. 더 나아가, 매년 실적 보고까지 해야 하는 수준이다. 

또한, 유통 과정에서도, 사후 관리, 추적성,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의료기기 사전 광고 심의 등 많은 규제에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덕분에 '의료기기 사업의 절반은 문서 작업'이라는 말이, 과장일지는 몰라도 허언은 절대로아니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은 안정성, 보수성, 폐쇄성이라는 의료기기 시장의 특성을 형성하게 된다. 덕분에 의료기기 시장은 언제나 매력 있는 시장이나, 그만큼 난이도가 높다.

필자가 몸담았던 시간과 국내라는 공간으로만 한정하면, 최근 수년은 의료기기 관련 규제와 제도가 가장 많이 변해 온 시기가 아닌가 싶다. ISO13485의 변화는 물론, ISO9001의 규격이 크게 변했으며, 이에 발맞춰 KGMP가 ISO13485: 2016을 기준으로 개정돼 강제되고 있다. 의료기기의 성능에서도 IEC 60601-3 규격을 따르기 시작했으며, 화학 시험의 경우 역시 기준이 크게 변했다. 유통에서는, 의료기기의 UDI 등록이 시작됐으며, 유통의 투명성을 위한 의료기기 유통 제도가 준비중이다.

국제 의료기기 시장에서, 한국은 IMDRF 가입은 물론, 올해는 IMDRF 의장국으로서 역할 수행을 앞두며,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의 중요한 한 축이 돼 가고 있다.

 특징이 보수적인 의료기기 시장에서 이와 같은 최근의 변화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다. 이는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마치 맞바람과 같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솔직히 반갑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 간 의료기기사업을 지속해야 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당장은 반갑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내일을 위해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해야 하는 변화다. 

사실, 우리나라의 의료기기 규제 및 제도는, 선진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매우 앞선 수준이다. 특히 속도 면에서는 '빨리빨리' 문화의 한국답게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며, 규제의 합리성과 제도의 투명성 수준도 매우 높은편이다. 

또한 흔히 의료기기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와 고성능의 의료기기를 경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다.

심지어, 대기업·다국적기업 중심인 선진국의 의료기기산업과 비교하면, 산업구조가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위주인 한국의 의료기기산업 발전 가능성은 아직도 크고 남음이 있다.

이같은 여러 가지 국내외 상황을 살펴봤을 때, 현재 의료기기 산업에서 한국의 위치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산업적인 면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노력 중인, 준(準)선진국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규제의 강화와 선진화는, 어떤 면에서 바라보면 의료기기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노력이, 현재 국내 의료기기 기업과 산업의 특성 한계를 충분히 고려했는가에 대해서는 관련 공공기관이나 국내외 기업들 간의 이견이 분명히 존재한다. 한 마디로 규제는 선진화됐으나, 관련 기관과 기업이 이를 따르지 못한다면 의미 없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정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특히 바로 한가운데에서, 우리나라 의료기기 기업은 규제를 통해 국내외 기관과 기업들로부터 일종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한계를 극복하고 선도할 것 인가 또는 현재의 위치를 고수할 것인가 사이에서 말이다. 우리는 어떤 방향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시선을 바꿔보면, 빠른 규제 변화로인해 생기는 가시적인 부작용도 분명히 보인다. 여러 예를 들면, 첫째, 국제 규격과 국내 규제 기관 사이의 간극이다. 기업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규제의 변화와 강화에 가장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입장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이러한 변화에 좀 더 천천히, 그러나 세밀하게 대처하는 게 규제 기관의 입장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기업은 '피 흘리는' 노력을, 기관은 '땀 흘리는' 노력을 하는 입장이 되곤 한다. 이때, 기업은 기관의 지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관은 기업의 희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의료기기산업의 사업 경쟁력 약화'다. 여전히 의료기기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높고, 무한한 시장이다. 다만, 인터넷, 모바일, COVID-19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최근 시장의 형태는 크게 바뀌었다. 그중 하나가 의료기기 시장과 타 시장의 구분 선이 많이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아마 병원 장비보다, 개인용 의료기기 사업을 영위하는 분들이 더 크게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이미 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유입되는 많은 정보로 인해 카테고리, 특징, 품목 등 명확한 구분이라는 개념이 많이 희석되고 있다. 또한, 제품과 서비스의 개념이 혼합됨과 동시에 제품의 수명이 짧아지면서 그만큼 가격이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현재 의료기기,특히 개인용 의료기기는 현재 비(非)의료기기 제품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의료기기에 적용되는 까다로운 규제와 조건, 한 박자 느린 대처, 이로 인한 높은 기회비용 등 은 업체 입장에선 같은 출발선에서 '허리에 타이어를 매고' 장거리 레이스하는 입장이 돼버렸다.

상대적으로 빠른 적응이 가능한 비(非)의료기기와 달리 의료기기는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속도에서 도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시장에서, 속도의 도태는 곧 기업의 패망이다.

지금, 우리 의료기기산업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기업도, 기관도, 규제도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심지어 사방이 가시밭길이라, 어디가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소한 당장의 상황에서 의료기기 기업과 기관, 규제가 서로 간의 견제와 감시의 역할은 일시적으로 줄이더라도, 협업, 협의, 협력의 역할에 더 집중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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