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계약서 도입은 불공정한 거래 관행 개선 첫걸음

의료기기 유통구조개선, 업계 의지에 달렸다
표준계약서 도입은 불공정한 거래 관행 개선 첫걸음

▲ 이 진 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유통구조개선TF 위원
동방헬스다인 상무

공정거래위원회가 의료기기 산업의 유통 투명화를 위해 실태 조사에 착수하고 곧이어 발표한 사안은 12월 말 의료기기 표준계약서를 제정해 시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경험상, 표준계약서는 우월적 지위의 계약자가 자신의 일방적 이익을 서면화해 계약 상대방의 심각한 권리 침해나 이익의 불공정한 배분 등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용돼왔다. 대표적으로 최근 연예계의 노예계약이나 건설, 토목 현장의 하도급 관련 계약이 표준계약서 제정이 주로 이루어지는 산업이었다.

공정위의 표준계약서 제정이 거래 형태가 불투명하고 갑질 등의 사회적 논란이 많은 분야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봤을 때, 의료기기산업에 몸을 담고 있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면이 존재한다.

공정위의 발표에 따르면 의료기기산업의 실태조사 결과, 상당한 권리침해가 일반화돼 있으며 의료기기 유통 구조가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표준계약서를 만들고 최근 각 분야에서 최종 의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현재 의료기기 산업은 거래 관행상 개선돼야 할 점이 많으며 거래 당사자 간 분쟁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형 상 의료기기는 공급사와 대리점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산업 중 수입과 제조의 비율이 6:4 정도를 유지하는 관계로 다국적사와 국내 수입사 그리고 유통을 담당하는 대리점의 형태로 분류될 수 있다. 

또한, 특이하게 의료기기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간납사는 형태상으로 대리점이지만 사실은 병원의 납품을 독점화해 통행세 형식의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형식이다. 이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국가보험체계에서 상한 가격이 정해진 것을 이용해 이윤을 보는 거래형태다. 

표준계약서가 시행되면서 많은 업체가 느끼는 점은 산업계가 알고 있는 상식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협회에서도 유통구조개선TF를 집중적으로 검토해 많은 의견을 제시했지만 결국 매우 제한적인 부분만 반영됐고 대부분은 여타 산업의 표준계약서 수준에서 발표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일단 표준계약서가 얼마나 기존 업계에 반영될지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최근 공정위가 조사하거나 조사 중인 대부분의 사안은 리베이트나 유통상 불이익에 관한 것이며 이미 몇몇 업체는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거래 관계상의 조건을 정할 때 예기치 않은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 지식이 필요하며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표준계약서에 대한 몇 가지 쟁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급자와 대리점이 동등한 관계를 추구하며 제반 법령을 준수할 것을 서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경쟁규약의 경우 사업자에 국한해 적용된다. 즉, 일반 판매전문 대리점의 경우 일체의 리베이트성 판촉을 금지하고 있고 명목상 공급자에 모든 책임을 지우고 있는 바, 이번 발표될 계약서에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의료기기법’,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의 규정을 지키도록 명문화했다. 더불어 리베이트에 대한 일방적 요구에 대해 그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대한 손실이 발생할 경우 배상하도록 해 실질적인 법 적용이 강화됐다. 

둘째,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는 않았지만,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판매시스템, 판촉이나 마케팅에 대한 일방적 전가를 상호 합의하에 정하게 하고 만약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는 이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일반 상관례에서 공급자이던 간납사 형태상의 대리점이든 간에 우월적 지위를 가진 자가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을 강제했고 계약이나 납품을 하는 입장에서 실효적인 대응 방법이 없던 것을 이번 표준계약서에 포함해 문제 발생 시 이에 관한 기준점을 마련한 것이다.

셋째, 계약 해지의 조건을 명확히해 양사 간 분쟁 발생으로 인한 보복성 혹은 별다른 이유 없이 대리점을 변경하는 행위에 대해 제한을 뒀다. 이는 대부분의 분쟁이 계약 해지에서 온다는 점을 반영해 그 사유를 명확히 해 상호 협의에 의한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둔 것이다. 

넷째, 계약 기간을 4년으로 요청할 수 있는 근거를 설정해 매년 갱신에 따른 예측 불가능성을 완화해 양사가 신중하고 진정성 있는 거래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시간을 부여해 신뢰를 쌓아 갈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이 밖에도 얼마 전 언론에 문제가 됐던 대리점에 부당한 경영 간섭 금지와 대금 지체에 따른 지연이자를 6%로 한정하고 구두 합의에 의한 강제력을 부인한 점 등은 향후 대리점 계약서 작성 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다. 

위의 여러 가지 쟁점에도 불구하고 개선돼야 할 점은 간납사의 횡포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양자 간의 제반 법률을 준수하게 하거나 동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점들은 간납사는 계약서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정 정도 제약이 될 수 있다. 협회는 유통구조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공정위의 표준계약서 제정 당시 여러 협조와 지원을 했지만, 담보 설정에 대한 유연성은 여전히 간납사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유통구조개선TF에서 이 부분에 대한 반영을 위해 법무법인 세종에 자문을 받은 결과 일단 간납사를 특정해 계약서에 반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해석을 받았다. 추후 간납사의 경우 여러 다른 정상화 방법을 찾아야 하는 만큼 앞으로의 숙제라 할 수 있다. 

표준계약서는 당장은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불이익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만약 계약당사자간의 분쟁이 발생한다면 분쟁 해결의 분명한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의료기기 업체들이 대리점 계약 체결 시 불이익을 공정위 등에 신고하여 문제 제기를 할 때 여러 법에 우선해 표준계약서의 내용이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내가 반영하지 않더라고 결국 알고 있어야 추후 불필요한 분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산업도 제도권의 관심을 받으며 그동안 거래상 불공정하게 행해졌던 관행이 시정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결국 필요한 것은 업계의 의지이다. 건강한 거래 관계가 정착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간납사와 같은 일탈을 막을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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