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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속의 '신박한' 의료기기 이야기■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12회
의료기기뉴스라인 | 승인 2020.01.21 17:21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12회

드래곤볼 속의 '신박한' 의료기기 이야기

▲임 수 섭
LSM 인증 교육원 대표/
여주대학교 교수

2018년 기준 2억 5천만 부 이상 판매된 만화, 지난 30년 간 가장 영향력 있는 소년만화, 1984년부터 1995년까지 12년 동안 초장기로 연재됐던 만화, 본 작이 연재됐던 소년점프가 주간 판매 600만 부라는 신화를 달성하게 만든 만화, 완결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관련 매출로 매년 약 1조 원의 수익을 내는 만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정식 발매된 일본만화. 

이것들은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드래곤볼'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2000년대 이후 출생 세대에게는 '원피스'가 더 익숙할지 모르지만 전 세대에 대한 인지도와 만화 역사에 끼친 영향은 '드래곤볼'을 따라오기 힘들다. 드래곤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산속에 홀로 살던 소년 손오공이 부르마란 소녀와 만나, 소원을 이뤄주는 일곱 개의 구슬, 드래곤볼을 모으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초반부 이야기가 강한 적들과 만나고 이들과 싸우면서 성장하는 배틀물로 바뀌면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양손을 한쪽 겨드랑이 아래로 모으고 몸의 기를 양손으로 집중시킨 뒤, 양손을 앞으로 뻗어 기공파를 발사하는 '에네르기파', 기(氣)를 몇 배로 증폭해 파워와 스피드를 급격하게 늘리는 부스트 기술인 '계왕권', 양손을 하늘 위로 들고, 자연과 생물에게 힘을 빌려 모인 에너지를 손에 집중시킨 뒤, 상대에게 던지는 '원기옥' 등 상상만 해도 짜릿한 격투 기술의 향연이 펼쳐진 '드래곤볼'의 내용 중 가장 인기 있는 에피소드는 '프리저 편'이다. 지구급으로 놀던(?) 손오공 일행이 우주급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됐고, 압도적인 힘과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프리저와 박진감 넘치는 대결과 절대힘을 가진 초사이언인이 처음 등장하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다양한 아이템들이 등장하는데 신축성이 있어서 옷처럼 입고 벗을 수 있는 갑옷인 '특수고무 프로텍터', 외눈 안경처럼 착용해 상대 전투력을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스카우터', 공 모양의 1인승 우주선 '어택볼' 그리고 접시형 UFO인 프리저의 대형 우주선 등이 인상적이다. 특히 프리저의 대형 우주선에는 우리 '의료기기 인'이라면 관심 가질 만한 '힙'한 아이템이 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캡슐형 치료기기'이다. 사람 신체 크기의 캡슐 안에 치료받는 자가 들어가면 그 속이 특수 치료 용액으로 채워지고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채로 일정 시간 잠만 자면 몸이 회복된다. 작중 빈사 상태까지 갔던 손오공과 베지터를 살린 이 치료기기는 부상의 종류와 심각성 정도와 관계없이 사람을 완벽히 치료시킬 수 있다. 

만약 이 치료기기가 현실 속에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인류 수명 연장과 의료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겠지만, 의료 현장에 적용되기 전에 두 가지 허들을 넘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의료기기 허가이고, 다른 하나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의 신의료기술평가이다. 이전에 유래를 찾기 힘든 의료기기이니 새로운 제품으로 분류될 것이고, 어떤 종류의 치명적인 상해도 치료할 수 있는 고기능성과 범용성 때문에 4등급 신개발 의료기기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신의료기술평가에서도 혁신의료기술로서 인정받아야 함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임상시험은 기본이 되는데 당장 임상시험의 범위와 정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 고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피부나 근육이 조금 다친 정도의 경미한 상해부터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터지며 신경이 끊어지는 중상까지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느 장기, 어느 부위를 치료하는 지와 적용 연령대까지 고려하면 임상시험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의료기기 개발업자는 상용화하기도 전에 과도한 인허가 비용으로 파산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혁신적인 의료기술을 기존 인허가 법체계가 따라오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 중의 하나로 이에 대한 개선을 위한 문제 제기와 공감대가 지난 10년간 산업계, 학계 및 정부에서 꾸준히 형성돼 왔다. 그 결과, 상당 수준의 노력이 반영된 규제 개선이 이뤄질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식약처의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이다. 이 법에 따라 식약처는 기존 의료기기에 비해 안전성·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된 의료기기를 복지부와 협의해 '혁신의료기기'로 지정한다. 이 '혁신의료기기'는 단계별로 심사 받을 수 있고, 다른 의료기기에 비해 우선 심사 받는 등 신속한 제품화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혁신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제조기업 인증제를 도입해 허가 시 GMP 평가자료 등의 중복 자료 제출을 면제하고,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계획 승인을 받아 임상시험을 실시하도록 절차를 개선했다. 또한, 의료기기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을 위해 의료기기 R&D 투자 확대, 허가 등을 위한 임상시험 및 시험검사 지원, 의료기기 국산화 및 신뢰도 향상 지원, 전문인력 양성, 컨설팅 및 정보제공 등 기반(인프라) 지원을 가능하게 했다. 

이에 부합하는 또 다른 규제 개선의 예는 보건복지부의 '혁신의료기술 별도평가트랙' 대상의 지정과 이에 따른 신의료기술평가 규칙의 개정이다. 여기서 '혁신의료기술 별도평가트랙'의 대상은 로봇, 3D 프린팅, 인공지능, 나노기술, 이식형 의료기술이나 암, 심장·뇌혈관질환, 희귀질환, 장애인 재활, 치매 등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기술과 같이 첨단기술을 활용한 의료기술, 사회적 효용가치가 높은 의료기술, 환자 만족도 증진이 기대되는 의료기술을 말한다. 이 경우 별도의 심의 절차를 거쳐 '혁신의료기술 별도평가트랙'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제도 개선을 통해 기존 제도의 경우보다 빠르고 적은 부담으로 의료 현장에 조기 진입이 가능하다. 다만, 이렇게 의료 현장에서 적용된 결과는 3~5년 후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을 통해서라면 드래곤볼 속의 '캡슐형 치료기기'도 인허가받고 상용화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드래곤볼 속에는 이 '캡슐형 치료기기'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한 아이템이 나오는데 신선콩으로 불리는 '선두'가 바로 그것이다. 손오공이 만나는 첫 번째 천계의 인물인 카린의 탑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한 알만 먹어도 죽음 직전의 몸도 바로 회복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0일 동안 배부르게 만들 수도 있는 작중 최고의 아이템이다. 즉, 수십 분에서 수 시간의 치료 시간이 필요한 '캡슐형 치료기기'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을 지녔고, 프리저 편에 거의 국한돼 나왔던 '캡슐형 치료기기'와 달리 '선두'는 드래곤볼 연재 내내 꾸준히 등장했다. 

이는 어쩌면 최근 들어 가치와 가능성 측면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의료기기이지만, 여전히 의약품보다 평가와 영향력이 떨어지는 현 의료 산업계의 현실을 비유하는 재미있는 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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