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10회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10회

재활로봇, 의료기기인가? 의지·보조기인가?

▲임 수 섭
LSM 인증 교육원 대표/
여주대학교 교수

그것은…… 방사선 피폭에 불구로 죽어가던 맷 데이먼을 다시 일으킨 것도 모자라 더 빠르고 강한 힘으로 안드로이드 부대를 이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외계 침공으로 멸망 직전까지 간 인류의 전세를 톰 크루즈가 역전시킬 수 있게 만든 일기당천(一騎當千)의 기기이다. 그것은…… 지구를 에일리언 세상으로 만들려했던 퀸 에일리언을 여자인 시고니 위버 혼자서 막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강화 외골격 슈트. 그것은 영화 엘리시움에서 맷 데이먼이 장착한 신체 접속형 금속 프레임 슈트이기도 하고,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톰 크루즈가 착용한 엑소 슈트(Exo Suit)이기도 하며, 영화 에일리언 2에서 시고니 위버가 탑승한 파워 로더(Power Loader)이기도 하다. 

이것들은 하나 같이 사람의 몸에 외골격처럼 장착돼 착용자의 힘, 속력 그리고 방호력을 증가시킴으로써 개인이 하기 힘든 임무를 수행하게 하거나 불구 등 신체가 불편한 사람을 정상인 이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주는 기계이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 기기가 로봇 제어 기술, 정보통신기술(IT) 그리고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인해 최근 눈부신 속도로 발전됐다. 

영화 속에서 이 기기들은 군사용으로 소개됐지만, 실제로는 화재현장에서의 보호 및 잔해 철거용, 장애인·노인의 운동 보조용, 산업체 노동자의 작업 보조용 그리고 소방용 등 민간용으로도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우리 정부 역시 '2023년 로봇산업 글로벌 4대 강국'을 목표로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태생부터 의료기기 인(?)'이다. 그러다 보니 이 기기에 대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영역은 의료용이었다. 그런데 의료용으로 이 강화 외골격 슈트를 바라보면 흥미로우면서도 제법 복잡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이 환자까지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에게 적용된다면 '공산품일까, 의료기기일까'라는 기본적인 의문부터 질병이나 상해의 정도나 신체 대체 정도에 따라 '의료기기일까, 의지 또는 보조기일까'라는 조금 난해한 질문까지 말이다. 

현재 이것에 대한 의료기기 해당여부 판단기준은 사용 목적과 위해도에 따라 판단하는데, 사용목적이 의료용인 경우에는 의료기기로 판단하고, 비의료용인 경우에는 의료기기로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 보조기구 중 의지·보조기에 해당하는 제품은 의지 또는 보조기로 판단하며, 이 경우 의료기기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러한 기준은 설핏 보면 명확한 것 같지만, 실제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시켜보면 쉽지 않다. 가령 어떤 기기가 병든 신체 부위를 보호하는 기능, 의료 목적으로 움직임을 제한해서 고정시켜 주는 기능, 체중 부하를 보조하는 기능, 움직일 수 없는 부분을 움직이게 하는 기능 그리고 신체 기형을 교정하거나 예방하는 기능을 가진다면 우리 '의료기기 인'들이라면 당연히 '의료기기가 맞다'라고 하겠지만 사실 이들 내용은 의지·보조기의 정의에도 해당된다. 

다른 구분 방식을 적용해 해당 기기가 신체 일부에 대해 외형을 포함해서 기능을 완전히 대체한다면 의지 또는 보조기이고(쉽게 말하면 피터팬에서 후크 선장의 갈고리, 보물섬에서 실버의 막대기 의족일 경우), 신체 외형과 신체 기능 일부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를 보완, 보조한다면 의료기기라고 단순화하더라도 이 반대 경우도 '아니다'라고 무조건 말할 수 없기에 이 구분 방식도 완벽한 답이라고 보기 힘들다. 또 기능이 단순하고 의지·보조기기사만이 맞춤형으로 만들 수 있으면 의지·보조기라는 판단도 의지·보조기의 기능을 제한시킴으로써 최첨단 융복합 기술의 시대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판단 기준이라 보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품목 및 등급에 따르면 이러한 기기는 전동식공기주입식정형용견인장치, 전동식정형용견인장치, 전동식정형용운동장치, 전동식기능회복용기구 그리고 로봇보조정형용운동장치로 분류된다. 

이들은 하나 같이 신체 일부를 완전히 대체하지 않고 그 신체 일부의 재활, 재건, 보조, 회복, 훈련시키는 용도로 제한되고 있다. 이들 기기는 3등급인 로봇보조정형용운동장치를 제외하고 모두 2등급인데, 로봇보조정형용운동장치가 3등급인 이유는 다른 의료기기들과 달리 환자의 장애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 재활, 보정 혹은 경감을 위한 구동장착부를 포함하고 있고, 임상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감시, 생성, 실행뿐만 아니라 선택기능을 가지는 등 자율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보면 의료기기와 의지·보조기는 결국 신체에 대한 '치료·재활·경감'이냐, 외형이든 기능이든 뭐든 간에 신체를 '대체'하는 것이냐에 따라 나눠지는 셈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의지·보조기이지만, 의료기기에 해당 되는 기능을 가지는 최첨단 융복합형 재활기기 혹은 재활로봇이 속속들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기기에 대한 명확한 분류체계와 세밀한 관리기준은 미흡하다 볼 수 있다. 

서두에서 말한 세 영화의 경우를 다시 예로 들면, 톰 크루즈의 엑소 슈트는 사용 목적을 강조하면 군사용으로, 시고니 위버의 파워 로더는 산업용으로 그나마 간단하게 제품을 정의할 수 있으나, 맷 데이먼의 외골격 강화슈트나 캡틴 아메리카의 2차 대전 시기의 전우이자, 절친 버키의 로봇팔은 의료기기인지, 의지·보조기인지 한 쪽으로 정의 내리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로봇 기능을 포함한 고기능을 가진 의료기기 혹은 의지·보조기에 대한 보다 세밀한 인허가 체계 구축, 품목 신규 지정, 조합·복합 기기일 경우에 대한 정의 그리고 이를 위한 의료기기법과 장애인복지법의 명확한 역할 구분과 동시에 서로 겹치는 영역에 대한 긴밀한 협업이 요망된다. 

이와 더불어 의료용 재활로봇 기능을 가진 의료기기, 특히 여기에 AI 기능까지 가진 의료기기에 대해서 현재 임상시험을 요구하는데, 이들 기기가 인체에 직접적으로 삽입 또는 이식되지 않는 이상, 오작동이나 미흡한 기능으로 인한 위해도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이므로 임상시험을 면제 혹은 요건을 완화하거나 'Bench Test'나 'Animal Test'만으로 간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같은 맥락에서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해서도 완화가 요망되지만, 보험수가의 경우는 과거의 수동식 혹은 단순 전동식 재활기기보다 높게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관련 기업의 상용화 촉진뿐만 아니라 의료·보건산업의 발전과 환자 혜택을 동시에 증가시키는 일석이조 아니, '일타삼피'의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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