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가톨릭대학교 의대 예방의학교실 김석일 교수

■ 특별기고 - 신포괄수가제에 필요한 요건

“현 환자분류체계, 신포괄수가제 적용하기에 부족”
DRG, 최소 1년 주기의 투명성 높은 분류체계 개정 기전 마련돼야

서론

▲ 김석일
가톨릭대학교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환자분류체계(patient classification)는 특정 질병을 갖고 있는 환자(질병분류)가 병원에 입원해서 어떤 서비스(행위분류)를 받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환자분류체계1)는 질병분류, 행위분류 및 원가를 기반으로 구성되는데, DRG (Diagnosis Related Groups)를 지불제도로 하고 있는 국가는 WHO(World Health Organisation)의 ICD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를 사실상의 표준으로 사용한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세계보건기구의 분류 전문가들과의 교류와 학습을 통해 얻은 환자분류체계/DRG에 대한 정보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새 정부에서 고려중인 신포괄수가제의 도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건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질병분류

WHO에서 발표하는 ICD는 사망(mortality)과 질병(morbidity)을 측정하는데 사용한다. 사망의 측정은 사망진단서를 기반으로 지역간, 국가간 또는 시점간의 비교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ICD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코딩 지침도 WHO에서 직접 발표한다2). 질병측정은 대부분 공공의료기관의 예산할당이나 건강보험의 지불방법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의료제도는 각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ICD도 각 나라의 의료환경에 맞춰 수정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그림 1, 2). 현재도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보험을 청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질병분류코드를 입력해야 하는데, ICD의 번역·개정은 1976년 이래로 통계청에서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역할은 최종판에 동의를 하는 정도이다.

DRG에서는 어떤 질병을 ‘주진단’으로 하는가에 따라서 분류가 달라지고, 같은 분류하에서도 어떤 질병을 ‘부진단’으로 하는가에 따라 보상받는 금액이 달라진다. 이와 같은 주진단과 부진단의 선정 기준이 DRG하에서의 ‘질병코딩 지침서’이다.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에서도 당연히 질병코딩 지침서가 있다. 이 지침서는 통계청에서 발간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질병코딩지침서>를 거의 그대로 갖고왔다. 하지만, 이 지침서는 캐나다의 CaseMix와 호주의 AR-DRG 코딩에 사용하는 지침서들을 적당히 조합해 만든 것에 불과하다.

신포괄수가제를 시행하려 한다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질병분류체계와 코딩지침 정도는 보건복지부에서 관리·활용하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원가

우리나라와 같이 병원 지불 방법을 행위별 수가제에서 포괄수가제로 바꾼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 있다. 그 외는 주로 총액예산제나 일당수가제에서 포괄수가제로 바뀌었고 공공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원가자료를 얻는데 별 제약이 없다. 미국에서는 환자가 지불한 금액(charge)을 임상 각 과의 전체 환자의 지불금액으로 나누고, 각 과의 비용(cost)을 구한 후 곱해 환자별 비용을 추계했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중반에 3년간 연구를 통해 행위별 수가제로 청구한 금액을 비용으로 대신해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원가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고, 행위별 청구 자료를 이용하는 것이 원가를 대신할 수 있다는 근거도 없이 행위별수가의 청구자료를 이용해 환자분류체계를 개발해 왔다. 일부 공무원과 학자는 민간의료기관에서 원가자료를 제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DRG에 대한 연구를 40년 이상 수행해 온 나라3)에서 내놓을 핑계는 못되는 것 같다. 서울대학교병원과 같은 수준 높은 공공병원의 원가를 근거로 분류체계를 개발했을 때,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DRG는 (공공)병원의 운영비용을 보상하기 위한 지불방법이다. 호주, 영국, 유럽 등은 (지방)정부에서 병원을 설립하기 때문에 자본비용(capital cost)은 환자분류체계 개발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주로 민간의료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은 자본비용을 별도로 청구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의 90% 이상을 민간에서 설립한 민간의료기관에서 제공하고 있으나, 분류체계의 개발 과정에서 민간에서 투자한 자본비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 심도 있는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환자분류체계

임상적으로는 특정 환자군에 속하는 입원환자의 병원비로 같은 금액을 보상해 주는 것이 포괄수가제의 원리이다. 하지만, 같은 군의 다른 환자 비교했을 때, 훨씬 고가에 속하는 서비스나 약품 등이 필요한 경우, 이것을 처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이런 환자들이 충분히 많으면, 기존 환자군에서 분리해 새로운 환자군을 만들고, 이에 따른 보상을 해 준다. 둘째, 이 환자를 같은 환자군에 그대로 두면서, 고가의 서비스나 약품에 대한 원가를 별도로 보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별도 보상 항목은 보통 행위별 수가에 근거한다. 일반적으로 DRG를 시작하면서는 이와 같은 현상이 자주 나타나게 된다. 또한,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면, 의료기관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도록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 결과 원가가 감소할 수 있다. 감소한 원가는 또다시 분류체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는 국가는 시행 초기에 매년 환자군에 대한 재분류를 시행한다. 이와 같이 원가는 환자분류체계의 개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최소한 1년 주기의 투명한 분류체계의 개정 기전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환경의 적합성

2013년에는 총 예산의 30%를 삭감 당한 호주 시드니의 한 병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상황이라면 문을 닫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는 예산이 회복될 때까지 버티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첫째4), 민간보험을 활용했다. 호주의 공공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공공보험 만으로도 무료로 모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반면, 민간보험을 이용하면 본인부담금이 부가될 수 있지만, 수가가 더 높아서 병원 재정에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 직원들이 일일이 민간보험에 가입돼 있는 환자를 찾아가서 민간보험으로 지불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다. 병원측 이야기로는 대상 환자의 절반 정도가 민간보험으로 바꿔 주었다고 한다5). 두 번째는 병원 재정 지원기금을 모금하고 있었다. 반응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가 가능한 이유는, 자신들이 아프게 되면 진료전달체계에 의해 이 병원을 이용하게 되고, 이 병원의 주인이 지역사회(주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병원 자체 내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겠지만, 이런 병원 운영의 경제적인 지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유럽 학자들은 DRG를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개별 환자단위의 지불방법 보다는 병원에 대한 예산할당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론

환자가 재난적 의료비 상황에 처하지 않고도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은 WHO에서도 제시하는 보편적 의료보장(Universal Health Coverage, UHC)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새 정부에서 이를 보다 공고히 하겠다는데 반대할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문제는 현재까지 시범운영했던 신포괄수가제를 구성하는 분류체계가 도입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정책 수행이 가능하고 의료계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분류체계를 만들어 내고, 그에 앞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 여건을 조성해야 차기 정부에서라도 도입이 가능한 합리적인 지불제도가 될 것이다.

▲ 그림 1. 독일의 의료관련 분류체계를 관리하는 DIMDI의 홈페이지. 사인분류를 위한 ICD-10-WHO와 보건행정에 사용하는 ICD-10-GM(German modification)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림 2. 사망원인통계와 보건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한 ICD의 용도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DIMDI 홈페이지.
1) DRG는 CaseMix 또는 환자분류체계 (Patient Classification)라고도 한다. 이 글에서는 모두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2) ICD 제 1권은 분류 목록, 2권은 코딩 지침, 3권은 알파벳 인덱스이다.
3) Robert B. Fetter, Youngsoo Shin, Jean L. Freeman, Richard F. Averill and John D. Thompson (1980). "Case mix definition by diagnosis-related groups." Med Care 18(2 Suppl): iii, 1-53.
4) 이런 관점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7개질병군별 포괄수가제는 변형이 심한 DRG이고, 신포괄수가제는 지불방법이 일반적인 DRG모형에 조금 더 가깝다.
5) 우리나라 민간의료보험은 환자가 보상을 받지만, 호주에서는 병원이 직접 보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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