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시대’ 제러미 러프킨 지음, 이경남 번역

공감의 시대

‘Tabula rasa’는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순백의 상태 즉 ‘White Paper’와 같다고 해서 불러진 문구다. 하지만 수사적 아름다움과는 달리 육아에서 존 로크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는 여전히 탐욕의 덩어리이며 이기적인 존재이다. 1692년 출간된 그의 저서 ‘교육에 관한 단상(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에서 아이에 대해 관대한 것도 문제이고 너무 엄격한 것도 문제라는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며, 아이의 의지와 의식이 개발될 수 있도록 심리적 방법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 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민음사 출판/2010년 10월

당시 가부장적 체제하에서 양육 방식은 부모에게 부인이라거나 나리라고 부르게 했으며, 신생아의 육아에서도 고대 로마에서 전해 내려오던 전통인 아이를 목에서 발끝까지 헝겊으로 감싸 4개월까지는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상태에서 아이들은 작은 짐짝처럼 벽걸이에 걸리기도 하고 상자에 담겨 부모의 체온이나 손길 없이 혼자 지내야 했다. 당시 유복한 엄마들은 유모에게 젖을 물리게 하거나 시골 등에 보내 아이와의 공감이 결여되는 것이 당연시 됐다.

자연히 아이에 대한 체벌은 공공연하게 이뤄졌으며 인간의 본성이 갖는 탐욕은 이런 물리적 제재를 통해 없어 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1769년 토머스 셰리든이 명문 학교들을 대상으로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을 때 황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학교들이 있었으며, 19세기가 되서야 마침내 영국 내 학교에서의 체벌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와 같이 변화는 단지 교육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적 체계와 제도 등에 대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모든 변화를 주도 했던 것은 당시의 인문학들이다. 이미 존 로크를 이어 제레미 벤담 그리고 프로이드까지 한결같이 개인 중심의 존재가치와 의의에 대한 주장은 획기적 사고의 전환을 가져 오게 된다.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개인의 행복 추구가 정당화 되고 이에 프로이드는 신생아조차도 철저히 성적쾌락에 의한 선택을 하며 이에 대한 굴절은 정신이나 심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됐다.

이후 교육에 있어서 자존감에 대한 증진은 오랜 화두가 됐으며 현대 교육에 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불고 있는 자존감의 실제는 1798년 엄마들에게 내린 지침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큰 지향점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인본주의의 태동은 여러 변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가치관을 바꾸게 한다. 그리고 그 변환의 핵심은 대상에 대한 공감이다.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미국과 유럽 선진국은 사뭇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미국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자세를 취하며, 개인의 노력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으로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적 재산의 보장과 개인의 선택을 가치의 기준으로 설정한다. 이에 비해 유럽은 오랜 역사에 기초한 가치 기준에 근거해 개인보다는 공동의 삶과 다수의 이익에 그 가치를 더해 생산성에 대한 분배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과연 인간이 이기적이며 탐욕만 쫓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저자인 ‘제러미 러프킨’은 단호히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긴 역사 속에서 공감이라고 하는 내재된 본성을 위해 발전돼 왔으며 인간이 갖는 이타적 감성은 어디에나 존재 했다는 것이다. 이는 생산력과 생산양식의 변화로 인한 삶의 풍요와 더불어 급진전 됐고, 지금도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육에 있어서 아이들 개별의 자존감을 높여주거나 중세의 양육이 바뀐 것도 결국은 공감이라고 하는 지향점의 결과라는 것이다. 아이와 엄마, 교육 제도의 변화 그리고, 이를 둘러싼 생산양식의 변화가 모두 공감이라고 하는 가치에 공통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공감이야 말로 우리가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을 위해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 현대를 잇는 다양한 학문적 발전과 사조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했다. 심리학의 발현이나 교육의 변화 등이 모두 공감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설명이 가능하다고 저술했다. 그리고 그 공감의 마지막 주제는 무엇일까라는 본인의 의문에 대해 환경에 대한 기술로서 마지막 장을 설명했다.

공감이 커질수록 지구의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는 급증한다. 이런 상호 연관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상호 연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분배적 자본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공유지와 같은 천연자원에 기반을 둔 에너지는 공감적이지 못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 자원 집약적 세계에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갈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문제의식은 지구자원의 소모로 인한 환경파괴라는 것이며 그 종말이 지구촌의 붕괴를 막기 위해 공동체 의식 속에서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배적 자본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감적 환경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집단 지성 혹은 대중의 지혜는 새롭지 않은 오래된 개념이었다. 찰스 다윈의 사촌이자 우성학 분야의 업적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골턴이 1906년 그의 고향인 영국 플리머스에서 소의 체중을 알아맞히는 게임을 보게 된다. 소 한 마리가 끌려 나오고 이에 대한 체중을 맞추는 게임이었다. 참여자는 전문가가 아닌 누구나 응모 할 수 있었다. 약 800여장에 이르는 예측치를 정리해 결론과 비교하자 0.5킬로그램의 차이뿐이었고 이를 정리해 <네이처>지에 게재해 집단 지성에 대한 존재를 공표하게 된다.

실제 이 개념이 사용되기까지는 1세기라는 시간이 필요 했지만 분배적 자본주의란 이와 같이 결국 열리 사회에서 개인의 참여를 최대로 보장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실증적으로 입증된 이 방법은 실제 여러 방면에서 사용하고 있다. P2P, 스마트 그리드, 디지털 공유재, 클라우드, 리눅스 등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저서 속에서 여러 자연과학적 해석을 인문학에 적용해 이에 대한 해석을 통해 사회 발전을 해석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놓쳤던 당시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잣대를 제공해 준다. 미켈란젤로가 3명이 사용하는 공동 침대를 사용했다는 침실에 대한 설명을 할 때면 마치 역사서를 대하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그리고 프라이버시의 등장은 삶의 환경 개선과 더불어 인문학적 성찰의 대상이 개인에게로 변하면서 생기는 시대적 조류임을 지적한다.

다양한 저자의 관심분야 만큼 공감적 필체가 묻어나는 저서이며, 동시에 중세 근대 현대를 모두 섭렵 할 수 있는 모처럼의 인문학 저서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경제학자로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제 및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 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이다. 한국판 번역은 이경남이며 민음사에서 2010년에 초판을 펴냈다. 

[기고자 소개]
이태윤
자유와 방임을 동경하고 꾸준한 독서가 아니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믿는 소시민이며 소설과 시에 난독증을 보이는 결벽주의자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