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기기산업에 대한 제언

▲ 임 솔
조선비즈 산업부
기자

“아직 종이차트를 쓰고 건물도 낡았는데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다는 겁니까?” 
올해 9월 요양병원 연수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맨 처음 병원에 들어섰을 때는  다소 의아했다. 오히려 한국 병원이 더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병원 안으로 들어가니 고령화 대비와 요양병원 운영 철학, 의료기기산업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었다.

일본 고령화 인구 26%, 한국 바짝 추격 
일본은 한국보다 20년 먼저 고령화가 시작됐다. 현재 일본인구의 약 1억3,000만명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26%인 3,400만명에 이른다. 

일본은 일찌감치 초(超)고령화 사회가 예상되면서 65세 이상 고령자를 사회적으로 책임지자는 의미로 2000년 4월 ‘개호보험(노인 수발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국가 의료보험과 별도로 40세 이상은 소득에 따른 개호보험료를 내야 한다. 65세 이상 필요한 환자는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재택 서비스를 연결하는 ‘노인의료복지복합체’를 이용할 수 있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고령환자는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과 별도로 목욕과 옷 갈아입기, 대소변 관리, 외부 보행, 실내 이동, 식사, 누워있는 자세 바꾸기 등 일상생활 수발을 받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받는다.

한국은 현재 고령화 비율이 12%이며, 2020년에는 20% 이상으로 예측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 고령화 속도 1위로 꼽힌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 등록하는 노인환자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고령화 대비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일상 재활훈련 의료기기 필요
일본에서 살펴본 결과 고령화에 가장 필요한 의료기기는 일상재활 관련 제품이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환자가 회복 후 끊임없이 보행훈련을 하는 것만 재활이 아니다. 환자가 보호자 없이도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재활이 필요하다. 

일본 요양병원에서는 거실, 부엌, 화장실 등 가정에서 생활할 수 있는 모든 일상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식사 한 끼를 하더라도 병실에 식판을 가져다주지 않고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걸음이 불편하더라도 휠체어를 타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재활이다. 식판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도 일상재활의 연속이었다. 

환자는 부엌에서 혼자 요리를 해볼 수도 있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부엌은 보통의 부엌과는 달랐다. 싱크대나 가스렌지의 높낮이를 조절해 주는 것도 재활 치료기기에 포함된다. 높낮이를 환자에 맞게 정확히 측정한 다음 가정에서도 그대로 설비해주고 있었다. 

 

욕실에서도 혼자 목욕을 해볼 수 있도록 욕조의 높낮이를 조절해 준다. 일일이 누군가가 대신 목욕을 해주는 것도 노인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울 수 있다. 지금의 보행 재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의료기기가 많이 개발되고 있었다.

디자인·즐거움 요소 가미해야
재활기기를 개발할 때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다. 사용자가 노인이라고 해도 개인 취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 개발되고 있는 고령친화 제품은 디자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보호자와 치료자 관점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현재 중년 남녀 세대에서 화려한 등산복이 대유행하는 모습을 보면 10~20년 뒤가 예측된다. 

이들이 65세 이상 고령층이 됐을 때 디자인을 가미한 제품이 인기를 얻을 수 있고, 의료기기가 하나의 유행이 될 수 있다. 등산스틱 대신 지팡이가 일상생활 제품이 될 수 있고 요양병원 환자복이 산뜻한 일상생활복이 될 수 있다. 매일 혈당측정을 하더라도 각자 사용하는 혈당측정기를 꺼내 자랑할 수 있는 화려한 디자인이 각광받을 수 있다.

일본 요양병원에서 가장 충격 받은 부분은 환자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기본철학에 있었다. 생(生)이 얼마남지 않은 환자도 분명히 꿈이 있던 이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서예, 종이접기, 뜨개질 등 취미생활을 개발하는 시간이 별도로 있고 병원 곳곳에 환자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당장 본인이 환자 입장이 되더라도 사람답게 존중받으며 치료받고 싶을 것이다. 환자감시장치 같은 고령화를 위한 다양한 기술이 쏟아지고 있지만, 화려한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치료가 일상이 되는 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기본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시장이 아니라 일상의 즐거움 고려돼야
의료기기산업에서는 고령화를 단순히 돈이 되는 새로운 시장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의료는 10~20년 뒤의 장기를 내다봐야 하는 산업이다. 고령화 인구가 많아질 때를 미리 대비한다면 분명히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자녀들에 부담이 될까봐 치료가 필요해도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령화는 부모님이 아니라 나와 우리 모두가 닥칠 일이 된다. 경제적 여유를 경험한 세대가 고령층이 됐을 때 무엇이 필요할지, 무엇이 있으면 좋을지, 어떤 제품이 있다면 편리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예쁜 제품을 소지하고 싶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즐겁게 치료받고 싶을 것이다. 

이런 틈새를 공략한다면 의료기기가 꼭 최첨단 기술산업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다. 간단한 기술 하나로도 유행을 넘어 일상이 될 수 있다.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간단히 창업을 해볼 수도 있고 한국인에 특화시킨 국산 제품이 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고령화 시대 의료기기산업이 전국민에 사랑받는 ‘메가트렌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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