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금지, 국민 건강권·의료기기의 공공재적 특성 때문

■ 의료기기산업과 공정거래법 집행

▲ 노 상 섭
공정거래위원회
전 시장감시총괄과장
중앙대 법대 박사과정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3월3일과 3월13일 의료기기의 판매증진을 목적으로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춰 부당하게 해외학술대회 지원명목으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의료기기업체 2개사에 대해 시정명령을 했다. 스텐트 및 심혈관 관련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회사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의료기기 판매촉진 목적으로 종합병원 소속의사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의료인들에게 미국, 프랑스, 중국 등 해외학술대회 참가비용을 지원하거나 지원할 것을 제의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리베이트 거래 관행의 척결의지
또한 의료기기를 납품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제공한 업체 대표와 관련 의료인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2014년 10월6일 부산지법 형사합의 제5부는 뇌물 혐의로 기소된 부산 모 병원 의료인에게 징역 3년 6개월에 벌금 2,500만원, 추징금 6,700만원을 선고했다. 의료인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의료기자재 판매업체 대표도 뇌물공여, 의료기기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언론보도 및 보건당국에 의하면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후 2013년까지 약 208명의 의료인이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과거와 달리 정부 및 사법당국의 강력한 제재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일반 제조업에서 광범위하게 판매촉진 및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리베이트 거래 관행이 유독 의료기기업체, 제약사 등 보건의료산업 분야에서 왜 문제가 되고 위법성 논란이 지속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산업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돼야만 한다. 

의료기기산업, 대표적인 규제산업
의료기기산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기기를 취급하는 산업의 특성상 국가가 제품의 개발, 임상시험, 인허가 및 제조, 유통, 판매 등 전과정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의료기기를 제조, 판매하려는 사업자는 의료기기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제조, 판매허가를 받고, 제조품질시스템(GMP)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의료기기 광고는 의료기기법 제25조에 따라 사전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심의를 받아야만 할 수 있다. 또한 의료기기는 대표적인 다품종 소량생산 산업이다. 의료기기의 제품종류만 수천 가지가 넘고, 품목당 생산수량도 10만대를 초과하는 품목이 거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의료기기의 주요 수요처는 의료진단과 치료에 전문성을 가진 병원들이며, 의료기기가 건강, 보건과 관련돼 있으므로 제품 선택시 제품의 안전성, 신뢰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고 최종 구매자인 환자의 선택이 허용되지 않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다른 제조업에서 최종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선택해 구매하는 특성과 달리 특정 의료기기를 선택해 진단 받을 수 있는 권리가 환자들에게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진료과정에서 의료기기를 통한 진단은 의사 등 의료인의 전적인 권한에 속하므로 대표적인 정보의 비대칭성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의료기관 등 시장수요자들이 기존 유명제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의료기기산업은 제품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중요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진입장벽과 낮은 가격탄력성을 가지고 있다.

의료기기 마케팅 활동 제한 이유
공정거래법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관련법령에서도 불법 리베이트 제공, 수수를 근절하고 투명한 유통시장 질서유지를 위해 의료기기 제조·판매업자의 의료기기 마케팅을 일정부분 제한하고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의약품과 다른  의료기기의 특성을 반영해 별도의 공정경쟁규약 제정 필요성을 제기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협회가 심사를 요청한 규약안에 대해 보건의료인, 보건복지부 등과 협의해 2011년 10월 28일 규약을 승인해, 2011년 12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금품류 제공행위별 준수원칙이 구체화 됐다.

공정위는 규약의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경제적 이익제공행위 및 사업자의 자율심의 관련 절차를 위반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공정거래법 집행을 할 수 있다. 의료기기의 거래는 국민의 건강과 관련된 공공재적 특성으로 인해 일반재화와 다른 특성이 존재하고 국민 건강증진 및 건강권 확보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반재화와 달리 마케팅 활동이 일정부분 제약을 받고 있다.

공정경쟁규약은 정상적인 상거래 관행상 허용되는 의료인 및 의료기관에 대한 금품류 제공행위별 준수원칙을 구체화한 것이다. 보건의료인에게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며, 교육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환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은 물론 회계처리도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공정경쟁규약은 판매촉진 목적의 의료기기 거래 및 경쟁사업자 배제행위를 규제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경쟁사업자 배제란 특정 의료기기 구매를  유인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경쟁사업자란 잠재적 경쟁사업자 역시 포함되므로 관련 제품이 지식재산권의 보호를 받는 사실상 독점적 제품이라 할지라도 그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의료기관에 금품류를 제공하면 공정경쟁규약의 위반이 될 수 있다. 금품류 제공은 현금이나 물품은 물론 각종 인테리어, 상품권, 향응, 각종 편의나 노무제공도 이에 속할 수 있다. 

경제적 이익 제공 사례
구체적인 위반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도록 한다. 첫째, 기부행위와 관련된 거래는 특히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기부행위란 무상으로 금품류를 제공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의료기기 거래와 관련된 기부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기부하는 사업자의 의료기기에 대한 채택 등 거래와 관련한 이익이 있는 경우 또는 사업자가 의료기기에 대한 채택 등 거래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의료기관의 기부요청에 응해서는 안 된다. 사회통념상 의료기관 등이 자신의 부담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시설증개축 등에 사용되는 기부행위도 금지되며, 사업자가 협회의 기부대상 선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보건의료인이나 의료기관에 직접 기부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둘째, 학술대회 개최 운영지원과 관련 위반사항이다. 학술대회란 컨퍼런스, 심포지움, 세미나, 학술행사 등 명칭여하에 상관없이 보건의료인들에게 의학 관련 과학적, 교육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보건의료인들의 의학연구 또는 교육 등을 지원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행사를 말한다. 의료기기 사업자가 지원하는 학술대회는 학술적, 교육적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과 방식으로 적절한 장소에서 개최돼야 한다. 해외학회 개최시 의료기기업체 직원이 동행해 여행사 및 현지 가이드 알선 등 편의를 제공하는 행위도 금지대상이다. 보건의료인의 동반자인 배우자, 자녀 등에 대한 지원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업자가 협회를 통하지 않고 학회, 보건의료인 개인에게 직접 참가경비를 지원해서도 안 된다. 협회가 인정하지 않은 비공인 학회나 연구기관을 통해 사업자 자신이 학술대회 명목으로 해외에서 행사를 개최하고 국내 보건의료인의 참석경비를 지원하는 행위도 금지 대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규약의 허용범위를 넘는 경제적 이익제공행위 및 사업자 자율심의 관련 절차를 위반하는 경우 공정거래법 23조 위반 혐의가 있다고 보고 현장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공정경쟁규약 적용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강화될 예정이며 리베이트 규제는 단순한 1회성, 단발성이 아닌 영속적 규제성격을 가진다. 단기적 영업성과에 치중해 규약을 무시할 경우 과징금 부과, 형사고발 및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 등 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야기될 수 있다.

의료기기산업은 기술집약도가 높은 첨단기술 산업이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성장산업이다. 최근 들어 환자들의 권리의식 강화, 정보공개, 규제강화, 의료인의 윤리의식 증대, 내부고발 증가 등으로 인해 리베이트 제공에 대한 적발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에서는 의료기기 채택 및 과잉 진단을 유도하는 리베이트 제공, 과대접대 등의 불공정거래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고령화 등으로 인한 노인인구 증가, 의료비 과다 지출 등 의료기기 산업분야에 대한 관심증가로 인해 공정위는 의료기기업체 등 보건의료산업 분야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공정거래법 집행을 강화해 나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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