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바라보는 의료기기 혁신
 

▲ 서울아산병원
안과
김명준 교수

모든 임상의학분야가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지만 특히 기술이 그 발전을 주도하는 분야가 있다. 안과가 대표적인 예인데, 최근에는 레이저 기술의 발전이 안과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필자는 안과를 전공한 임상의사이고 수술 건수로 보면 백내장수술이 주된 수술이다. 백내장수술은 최근에 건강보험 청구 건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행해지는 수술이다.

백내장은 눈 속에서 카메라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에 혼탁이 오는 질환이다. 선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고, 외상에 의해서 발생할 수도 있지만, 가장 흔한 원인은 노화이다. 노인성 백내장은 진행 정도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정 이상의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서 발견된다. 시력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심한 경우 수술을 하게 되는데 백내장 수술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백내장수술은 혼탁한 수정체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인공수정체를 넣는 것이다. 환자들 중에는 인공수정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꼭 넣어야하는 것인가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인공수정체를 넣지 않으면 눈의 초점이 맞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써야 초점이 맞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인공수정체를 필수적으로 생각하고 인공수정체를 사용하지 않는 백내장수술은 상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인류가 인공수정체를 사용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템즈강변 빅벤 건너편에 위치한 성토마스병원에는 인류최초의 인공수정체수술에 대한 기념패가 전시되어 있다

Harold Ridley 경은 영국의 안과의사이다. 의과대학생 시절 백내장수술을 보고 수정체를 제거하고 왜 새로운 렌즈를 넣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전투기 조종사의 눈 속에 깨진 캐노피의 파편이 들어갔는데 염증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관찰하고 그 물질로 인공수정체를 만들게 되었다. 인류최초의 인공수정체 수술이 이루어진 곳은 영국 런던의 성토마스병원이다. 템즈강변 빅벤 건너편에 위치한 성토마스병원에는 인류최초의 인공수정체수술에 대한 기념패가 전시되어 있다. 첫 수술이 이루어진 것은 1950년이었는데, 당시에는 인공수정체에 대한 반대가 많았다. 관련학회들도 반대의견을 내는 등 어려움이 있었으나 1981년에 인공수정체는 미국 FDA로부터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인증을 받게 된다. FDA의 인증이 40년이 채 안되었고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소량으로 인공수정체가 수입되던 1980년대 말에 수입업체 직원이 인공수정체를 보자기에 귀하게 싸서 지방으로 배달을 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인공수정체의 발견,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백내장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 두 가지 중 하나이다.

다른 한 가지 혁신은 수술방법의 혁신이다. 백내장수술은 놀랍게도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수술의 하나이다. 아주 심한 백내장의 경우 동공 부위가 하얗게 되어 다른 사람이 쉽게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수술이 시도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처음 수술법은 혼탁된 수정체를 날카로운 기구를 써서 눈 속으로 떨어뜨리는 ‘발와술(couching)'이라는 방법이다. 기원전 인도 의사가 그 수술법을 기술하였고 이후 중국,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정체를 눈 밖으로 꺼내는 수술은 대략 1750년 이후에 나온 것으로 되어있다. 수정체는 지름이 10 mm나 된다. 따라서, 수정체를 눈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는 눈에 10 mm 이상 되는 절개를 만들어야했다. 눈의 크기를 생각하면 1cm의 절개는 상당히 큰 셈이다.

미국의 안과의사인 Charles Kelman은 어느 날 치과에 갔다가 치아를 청소하기 위해서 초음파 프로브가 사용되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이에 착안하여 백내장 수술에 초음파에너지를 이용하기로 하고 연구를 거듭하여 작은 초음파 바늘로 수정체를 부수어 눈 밖으로 제거하는 기계를 만들어냈다. 1967년의 일이었는데 이 기계 또한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눈 안에서 초음파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이 장비의 발명은 현대 백내장수술의 시작이 되었다. 큰 절개창은 작게 줄어들었고, 수술 후 1주 넘게 안정을 취해야했던 입원기간 또한 단축되었다. 이 수정체 초음파유화기(phacoemulsifier)가 필자가 꼽는 백내장수술에서의 또 다른 혁신이다.

이 두 가지 ‘옛날’ 이야기에서 여러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발명자는 임상현장에서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영감을 얻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 처음에는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점이다.

임상현장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한다는 점이 쉬운 일 같지만 실제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병원에서 매일 보게 되는 비슷비슷한 수술들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일들을 생각 하면서 보게 되지는 않는다. ‘이건 왜 저렇게 안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기위해서는 무엇보다 호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학문의 본질은 어쩌면 호기심일지도 모른다.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뭔가 찾아가는 과정이 새로운 발견과 해답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영감은 우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연에 앞서 호기심을 느끼고 의문을 가졌던 배경이 있었기에 우연도 가능했던 일이라고 본다. 영감 이전에 생각했던 과정이 반드시 있었기 때문에 영감이라는 행운이 왔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호기심과 영감만으로 결실을 볼 수는 없다. 끈기가 필요하다. 의료기기개발에는 공학기술의 결집과 개념을 입증하기 위한 동물실험을 넘어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란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모든 과정을 끌고나가기 위한 끈기와 집념이 있어야 혁신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의료기기 개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 요소는 협업이다. 의료기기 개발을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가 필요하다. 의사, 공학자, 사업가, 의료보험전문가, 임상시험전문가 등등. 이 다양한 전문가 그룹들이 처음 만나면 서로 너무나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들 같은 느낌이 든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자주 만나는 것이다.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는 어쩌면 무의미해 보이는 과정을 오랜 시간 거치게 되면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의료기기 기업에서 오신 분들과 면담을 하면서 많이 듣는 애로사항은 의사를 만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병원개방형 의료기기개발 플랫폼 사업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정부의 연구비로 운영되고 있는 사업이고 의료현장을 개방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으므로 의료기기 기업에서는 어떠한 필요에서든지 이런 사업을 시행하는 병원을 찾아가보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의료인으로서 의료기기개발의 의미는 무엇일까? 의료기기는 사람의 건강과 직결되어있다. 그만큼 개발이 어렵고 까다롭게 검증되어 시장에 나와야한다. 시장에 나왔을 때의 보람은 다른 어떤 제품보다 크다. 인류의 건강한 삶에 기여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은 국제적인 수준에 이르렀지만 의료기기의 상당부분이 수입되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운전은 잘 하지만 자동차는 수입해서 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새로운 개념의 의료기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쓸 의료기기를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나아가 세계인이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혁신이라는 생각이다.

필자는 혁신을 위한 요소로 앞서 언급한 세 가지를 꼽고 싶다. 호기심, 영감, 끈기.
우리의 DNA에는 이런 세 가지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 휴대폰과 자동차의 세계적인 성공이 그 예이다. 우리의 의료기기 기업 중에서도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닌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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