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에게 의료기기개발에 도전할 친숙한 환경 주어져야”

■ KMDIA 제1회 의료기기산업대상 수상자 특별기고


‘의료기기’ 의료인의 필요에 의해 탄생
 

▲ 황 성 오
연세대 원주의대
응급의학교실 교수

인류의 역사는 삶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내고 사용함으로써 발전해왔다. 의료분야에서는 검사와 치료를 위한 의료기기가 개발, 사용됨으로써 의료의 수준과 범위가 확대됐다. 역사적으로 의료기기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료인의 필요에 의해 개발돼 왔다. 그동안 의료기기는 의료인이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전문가용 기기로 발전해 왔으나, 미래의 의료기기는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그 분야가 확대될 것이다.

‘의료기기’ 의료인의 필요에 의해 탄생

의료기기 개발과정에서 의료인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의료인은 새로운 의료기기를 고안, 발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발된 의료기기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의료인은 개발된 의료기기에 대한 효능,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전임상, 임상시험을 수행함으로써, 개발 의료기기의 인허가에 기여하고 임상적 효용성과 적용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의료기기의 개발은 의료수행하는 과정에서 의료인의 필요 또는 요구에 의해 개발되거나 의료 이외의 분야에서 개발된 기술을 의료에 적용함으로써 이뤄진다. 필자가 자동심폐소생술 장치를 개발하게 된 것도 심정지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자동으로 하는 장치가 수동으로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심폐소생술을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새로운 의료기기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고안에서부터 상용화까지는 일련의 개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지면을 통해 의료기기를 개발한 임상의사로서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필자가 개발한 ‘자동심폐소생술장치’는 심정지 환자에게 가슴과 흉곽을 동시에 압박하는 심폐소생술을 자동으로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의료기기이다.

시행착오 속에서 의료기기개발 성공

이 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에는 의료기기 개발에 대한 지원체계가 미흡하던 시기이다. 처음 장치를 고안하고 특허를 출원한 후 나는 이 장치를 쉽게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장치를 개발하는 데에는 기계, 공압, 전자 제어, 재료, 시뮬레이션 관련 공학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또한 일반 공학자의 조언과 참여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제한이 있었으며, 관련 의공학자 또는 의료기기 제작 전문가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규격화되지 않은 부품이 필요해 주문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차례의 제작 오류를 경험해야 했고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에만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됐다. 인체 마네킹을 사용해 무수히 테스트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체에서의 효능을 검증하고 장치를 보완하는 데에는 100여 마리가 넘는 동물이 전임상 시험에 사용됐다.

디자인 작업을 거쳐 상용화 모델이 제작된 후에도 인허가용 성능 검사를 위한 장비와 노하우가 부족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발된 장치가 병원의 의료용 산소압력으로는 충분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했다. 여러 번의 보완을 거쳐 자동심폐소생술 장치가 심정지 환자에게 실제 사용됐을 때의 감동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자동심폐소생술 장치를 처음 구상하고 국내외 특허를 받은 후 상용화 모델이 출시될 때까지 6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상용화 이후에도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임상시험은 개발 회사의 재정형편상 소규모로 진행됐다. 미국에서 필자와 비슷한 시기에 특허를 받은 외국회사의 자동심폐소생술 장치가 짧은 기간에 개발돼 상용화된 후, 대규모 다기관 무작위 임상시험이 수행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의료인이 사용해야 진정한 ‘의료기기’

지금은 의료기기 개발에 대한 다양한 지원체계가 많이 갖춰져서 새롭게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필자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됐다. 현재의 지원체계는 주로 의료기기를 고안해 시제품을 제작해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 지원이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개발된 모든 의료기기는 임상시험 등 의료현장에서의 검증을 거쳐야 사용될 수 있으며, 주요 사용자인 의료인의 선택을 받아야 상용화에 성공한다. 의료기기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사용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상용화에 실패하는 것이다. 임상현장에서 의료기기의 사용 여부는 효능과 안전성을 근거로 결정되므로, 임상시험은 상용화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계이다. 임상시험에는 큰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의료기기 개발회사가 임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훌륭한 의료기기를 개발해 놓고도 충분한 파워의 임상시험을 시행하지 못함으로써 상용화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의료기기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의료기기 개발에 대한 지원체계에서 상용화의 마지막 단계인 임상시험에 대한 지원책이 보완돼야 할 것이다. 의료기기가 상용화 단계까지 개발된 후에는 사용자인 의료인이 해당 의료기기를 의료현장에서 사용해야 산업적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국산 의료기기의 사용 비율이 낮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개발된 의료기기가 의료현장에서 많이 사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의료인과 의공학자, 개발과정 이해하고 협력 필요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의료인과 의공학자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의공학자를 포함한 의료기기 개발자는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관련분야의 임상의사와 협력해야 한다. 필자도 때때로 의공학으로부터 의료기기 개발에 대한 자문을 요청받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의료기기 개발은 현장에서의 수요를 반영하고 있지만, 때로는 임상현장에서 사용 가능성이 낮은 의료기기가 개발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의료기기 관련 특허 중에 극히 일부만이 상용화에 성공하는 것은 의공학자가 의료현장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의료인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 후 의료기기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의공학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공학자는 의료기기 개발의 방법론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의료기기의 개선, 인허가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대에 의료기기 교육과정 개설해야

의료인에 의한 의료기기 개발을 활성화하려면 의과대학에서부터 의료기기 개발과 관련한 교육을 해야 한다. 의료기기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는 의료기기에 대한 관심과 환자 진료 과정에서의 필요성으로부터 나온다. 의료인의 의료기기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으므로, 의과대학에 의료기기 관련 과목을 개설해 의료기기의 사용과 개발에 관한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의료기기가 IT, BT, NT 간 융합을 바탕으로 개발되는 최근의 트렌드를 고려할 때, 의료인이 의료기기 개발에 필요한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학창시절부터 동기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결론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들은 신성장 동력산업으로서 의료기기산업을 꼽고 있다. 의료기기는 단순한 소모품으로부터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대규모 의료기기까지 다양하다. 고도의 기술 집약적인 의료기기는 소수의 기업에 의해 시장이 선점돼 있어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더라도 해당 기술을 따라잡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반면, 의료 소모품이나 단순한 의료기기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으로도 새로운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단순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사용빈도가 높은 아이디어 의료기기도 큰 경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혈관 속에 도관 삽관용 철심을 넣은 방법에 대한 간단한 아이디어를 적용한 기업이 중심정맥도관 시장을 상당 기간 동안 점유한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임상 의사에게 의료기기 개발은 직접 진료하지 않고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또 다른 진료수단이다. 임상의사가 의료기기 개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의료기기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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