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3차 대전에 비유될 무역전쟁은 막아야

[산업통상자원부_함께하는 FTA_ 2016년 8월 vol.51]

1948년도 GATT나 1995년 출범한 WTO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무역, 나아가 세계경제를 지탱해 준 자유무역의 상징이자 국제통상규범의 울타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그러나 최근의 브렉시트(Brexit)사태와 미국 대권주자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반(反)자유무역 발언은 지난 15년간 이어진 WTO DDA 표류에서 나타나는 다자무역주의의 위험에 더해 보호무역주의라는 또 다른 위험요소를 가중시키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다자무역협상인 DDA의 표류, 양적완화, 브렉시트, 반(反)덤핑에 반(反)FTA까지 세계 무역이 위협을 받고 있다. 다자무역주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선진국 중심으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널리 퍼지고 있다.

갈수록 태산이다. 연일 독설과 망언, 포퓰리즘,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의 거침없는 발언은 이미 필터와 브레이크 모두를 잊은지 오래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무역정책이 갖는 민감성을 고려하면, 초기 TPP에 대한 비난을 일삼을 때에만 해도 표심을 의식한 포퓰리즘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유무역에 나름의 지지세를 보이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또한 당시 TPP에 대해서만큼은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듯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후 NAFTA와 한·미 FTA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그 강도를 높여가던 트럼프가 최근에는 급기야 “WTO는 재앙(The World Trade Organization is a disaster.)”이라며 WTO에서 미국의 철수를 거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WTO DDA의 표류로 도마 위에 오른 다자무역주의세계

제1차 대전 이후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을 경험한 각국은 세계경제 복구나 국가재건에 대한 대책없는 종전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며, 이것이 국가별 국수주의와 자국이기주의를 촉발, 또 다른 (무역)전쟁–이른바 세계 제3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이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무역질서를 바로 잡아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및 무역을 추구하고자 1948년 GATT를 설립했고, 95년 WTO가 이를 대체했다.

회원국 163개국의 다자체제를 중심으로 하며 스위스 제네바 주재의 WTO는 이후 국제 무역규범을 발전시키고 이를 관리, 감독하며 국제통상규범을 바로잡고 강화해왔으며, 자체적으로 무역 분쟁을 조정, 중재, 판결하는 등 세계무역질서 강화에 크게 일조했다. 그러나 GATT와 WTO 설립 초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미국과 유럽의 다자무역체제에 대한 더 이상의 동기부여 및 동력 상실, 선진국과 신흥국간의 이해관계 차이와 이에 따른 괴리로 2001년 출범한 다자무역협상인 DDA는 현재까지 15년째 표류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장기(長期)표류일 뿐만 아니라 무기(無期)표류라는 사실이다.

양적완화, 브렉시트, 반(反)덤핑에 반(反)FTA까지

지속적으로 자유무역체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온 미국 대선후보 트럼프는 최근 WTO에서의 미국 철수까지 거론했다.

이처럼 다자무역체제가 크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또 다른복병을 만났다. 그것은 바로 보호무역주의 재림(再臨)이다. 그간 자유무역과 개방경제에 대해선 주로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에 반해 최근에는 일본, 영국, 중국, 미국 등 주요 경제국 및 선진국 위주로 이러한 기조가 퍼지고 있어 더욱 우려가 크다. 일본은 자국 경기회복을 위한 양적완화로 반등에 성공했고 여기에 추가 금융완화까지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브렉시트의 영국은 재언(再言)의 필요가 없으며, 중국도 환율개입의혹에 이어 한국, 일본, 유럽 등에서 수입되는 철강제품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키로 하는 등 자국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조류(藻類)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최근 민주당, 공화당 모두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역설했다. 지난 5월 말 WTO 상소기구 위원이었던 장승화 교수의 연임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하며 다자무역체제와 WTO의 민주성을 크게 위협했고 최근 국산 철강과 세탁기에 대하여 반덤핑, 상계관세, 예비 반덤핑관세를 각각 매긴데 이어 트럼프 후보의 신고립주의, 미국우선주의(Make America First Again)는 최근 선진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화룡점정(畫龍點睛)격이다. 한때 세계경제의 평화적 발전을 지탱해 줄 금융질서, 무역질서를 위해 함께 고민했던 두 지도자 윈스턴 처칠(영국)과 프랭클린 루스벨트(미국)의 국가에서 반세기가 조금 지난 지금 보호무역주의의 최전선에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고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다.

보후무역과 자유무역의 평행노선

그나마 고무적인 사실은 최근 중국 청두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다. 9월 초 예정되어 있는 항저우 G20 정상회의 전 마지막 장관급 회의였던 이번 회의에서 주요 20개국 재무장관들은 보호무역을 ‘지양’하고 동반성장(shared growth)을 ‘지향’하기로 입을 모았다는 것이다. 최근 보호무역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는 국가들이 이에 대하여 지적하지 않고 그저 이상적인 내용만을 골자로 담은 이 공동성명을 가리켜 원론적이며 실행의지가 부재, 미진하다는 비난도 없지 않지만 자유무역에 대한 기조를 재확인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선언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 긍정적 첫걸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이를 가시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적으로 각국의 의지에 달려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미국 국내가 아닌 멕시코등 해외로 공장을 이주하거나 국내 일자리를 유출시키는 기업에 대해서 세금을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WTO에 반하는 정책적 행위임을 지적 받은 트럼프 후보는 이에 대해 “상관없다(It doesn’t matter.)”고 가볍게 답했다. 이어 WTO 탈퇴 후 개별 국가들과 개별 협상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단순한 셈법의 접근은 돌이키기 힘든 말로(末路)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이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린다. 트럼프 후보의 미국우선주의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경기회복과 옛 영광을 재현하는 것을 우선시 하는 것이어야지 그간 세계경제를 지탱해 온 자유무역에서 미국이 우선 나가겠다는 철학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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