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혜국 대우 의약품 가격산정 방식

이상수의 Health Policy Insight

2025-11-03     의료기기뉴스라인

[Health Policy Insight 516호]

▲이 상 수
메드트로닉코리아 부사장

그리스 신화에서 아킬레스(Achilles)의 어머니 테티스(Thetis)는 아킬레스를 신들의 강 스틱스 강(River Styx)에 담가 불사신으로 만들려 했다. 그녀가 그를 붙잡은 한 곳, 즉 발뒤꿈치만 아니었다면 그 노력은 성공했을 것이다. 바이오의약품산업은 오랫동안 국제적 가격 격차(international price disparity)라는 자신만의 아킬레스건(Achilles heel)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 신화에서 아킬레스를 발뒤꿈치에 화살을 쏘아 죽인 파리스(Paris)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최혜국 대우(Most Favored Nation, MFN) 의약품 가격산정 요구를 통해 제약산업의 발뒤꿈치를 겨냥했다. 경제학자들은 국제 의약품 가격 차이의 규모를 논할 수 있지만, 미국 의약품 가격 - 정가(list price) 및 실제 지불 가격 - 이 유럽 국가들과 캐나다,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혜국 대우 행정명령을 통해 이런 가격 차이에 주목하는 가운데, 이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과 그로 인해 제기되는 이슈들을 살펴본다.

국가별 가격 차이 발생 이유(Why Prices Differ Among Countries)
미국과 다른 국가들 간의 이런 가격 차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한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 국가에는 대규모 독점적 구매자(monopsonistic) 의료시스템이 존재해 제약회사와 가격협상을 벌이고, 요구되는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될 경우 자국민의 접근성을 차단할 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방정식의 다른 측면은 생산 한계비용이 낮은 제약회사들이 비록 그 가격이 미국 가격보다 상당히 낮더라도 한계비용을 초과하는 가격으로 판매할 경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규제 통제와 제약회사의 유통 관행으로 인해 국경을 넘는 판매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경제학자들이 3단계 가격 차별(third degree price discrimination)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발생하기에 완벽한 조건이 갖춰진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가격 차별을 경험한다: 영화관의 노인 할인이나 쇼핑몰의 학생 할인처럼 판매자는 동일한 제품을 서로 다른 유형의 구매자에게 다른 가격으로 제공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가격 차별이 잠재적 이점을 갖는다고 믿는다. 판매자에게 가격 차별은 매출과 이익을 증가시킨다. 제약회사에게는 연구개발 유인을 창출하는 잠재적 이익 증가를 의미한다. 소비자에게는 제품 및 서비스 접근성 향상 효과를 가져온다: 가격 차별이 불가능하다면, 판매자는 고소득층이나 가격에 덜 민감한 시장부문에 대한 매출 수익을 포기하며 가격을 낮추려 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가격에 더 민감하거나 저소득층 소비자는 해당 상품에 대한 접근 기회를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

국제 가격 차이에 대한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Explanations of International Price Disparities Are Unconvincing)
그러나 처방의약품과 생물학적 제제에 대해서는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첫째, 대다수 사람들은 의약품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고 바이오의약품 기업들의 수익성이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한다. KFF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8명은 의약품 가격이 너무 비싸며 제약회사 이익이 이런 높은 가격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의약품은 영화나 슬러시 음료가 아니다. 의약품은 생명을 구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사보험이나 메디케어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의약품은 다른 일반 의료서비스보다 본인부담금 비율이 높으며 소비자들이 더 자주 구매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의약품 가격의 부담을 날카롭게, 그리고 자주 체감한다 - 이는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높은 소위 '생활 밀착형 문제(kitchen table issue)'다. 건강보험이 없거나 높은 공제금액(deductible) 건강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약품은 단순히 손에 넣을 수 없는 존재일 수 있다. 셋째, 경제 이론은 가격 차별이 존재할 때 누군가가 더 적게 지불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지불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직관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느껴진다. 넷째, 트럼프 대통령처럼 많은 사람들은 특히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가격 차별이 단순히 불공정하다고 믿는다. 누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내는 바보가 되고 싶겠는가.

국제 시장에서 가격 결정 방식(How Prices Are Determined in the International Marketplace)
각 제약회사는 시장 독점권과 마케팅을 활용해 각 국가 및 해당 국가 내 시장별로 가능한 최고 가격을 확보하려 한다. 이는 글로벌 시장의 근본적 경제원리를 반영한 것으로, 투자자들은 기업이 최대 이익을 추구할 것을 기대한다. 이 원칙에서 벗어나는 기업 CEO는 이사회가 새로운 리더십을 모색한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이에 대응해 각 국가(및 미국내 개별 보험자)는 시장 협상력을 활용해 가능한 최저 가격을 확보하거나 정부 규제를 통해 가격을 설정하거나 할인을 의무화한다. 전자는 미국 사보험 시장에서 발생하는 사례로, 대형 의약품 급여관리자(pharmacy benefit manager, PBM)는 유사한 약품들을 서로 경쟁시켜 가격을 통제하려 한다. 후자는 메디케이드(Medicaid)와 340B 프로그램(정부가 특정 안전망 의료기관(safety-net healthcare institution)에 할인을 의무화하는 제도)에서 나타나는 상황이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이 메디케어(Medicare)에 사실상 '받아들이거나 포기하라(take-it-or-leave-it)'는 가격설정 권한을 부여한 일부 오래된 의약품에 대한 메디케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가격은 제약회사와 보험자 간의 상대적 시장 및 정치적 영향력에 기반해 결정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의약품이 환자, 간병인, 고용주, 정부에 제공하는 가치를 반영하는 가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가치기반 가격책정의 실현되지 않은 비전(An Unrealized Vision for Value-based Pricing)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각국이 자국민에게 제공하는 의약품의 가치와 그들의 지불 능력(재산)을 기준으로 의약품 가격을 책정할 것이다. 이는 의약품 연구개발 투자에 올바른 신호를 보내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기존 의약품 접근성을 확대할 것이다. 또한 제한된 헬스케어 예산이 가장 필요한 곳에 쓰이도록 보장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이상적인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 외 일부 국가들은 자국 의약품 가격이 가치평가를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지만, 진지하게 이를 실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대부분 중앙 구매 또는 보험급여 평가 과정에서 가격 통제수단으로만 활용할 뿐이며 결국 의료시스템 지출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미국 정부는 환자 옹호단체와 제약회사의 압력에 따라, 고령자와 장애인에게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질보정수명연한(Quality Adjusted Life Years, QALY)이나 유사 가치 측정 기준의 사용을 명시적으로 거부해 왔다. 마찬가지로 제약회사들도 자사 의약품의 정가(list price)가 의약품 가치에 기반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가치 판단은 자신들이 해야 하며 그 가치를 전적으로 자신들이 가져가야 한다고 고집한다.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이 더 정확하다고 보는 가치평가를 생산하려는 노력을 지지해 왔지만, 지금까지 미국 정부의 가치 중앙 평가 정책이나 그러한 평가를 가격에 연동하는 정책을 지지한 적은 없다.

트럼프 최혜국 대우 지침(The Trump MFN Directive)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과 주요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미국 환자와 보험자들이 가치와 무관하게 선진국 중 최저가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행정부의 모든 권한을 동원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요구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에는 심각한 한계가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비난해온 '지불가용케어법(Affordable Care Act, ACA) 도구를 활용해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정책을 '시험'해 해당 프로그램의 보험급여를 낮은 가격으로 제한할 가능성은 있다. 그의 첫 임기 중 시도된 이런 시도는 절차적 사유로 실패한 바 있다. 대통령은 또한 IRA의 메디케어 협상 권한을 활용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제재할 수 있다. 그는 2기 임기 중 다른 분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징벌적 조사와 불리한 관세 정책을 위협해 ‘자발적’ 가격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비록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다수 관세를 불법으로 선언한 최근 항소법원 판결로 인해 관세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그의 능력이 위협받을 수 있지만). 대통령은 또한 다른 국가들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제약회사가 그 추가 이익을 미국 환자에게 환원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각 시장에서 가능한 최고 가격을 책정하려 하기 때문에, 미국 외 지역에서의 가격 인상이 자동적으로 미국 내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조치들 중 어느 것도 각 시장에서 의약품이 제공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국제 의약품 가격 책정을 진전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신화 속 또 다른 인물 오디세우스(Odysseus)는 트로이 전쟁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긴 항해에서 폭풍, 키클롭스(Cyclops), 괴물, 사이렌(siren)을 헤쳐 나갔다. 합리적인 국제 의약품 가격 책정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로 구불구불하고 우회로로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가격과 가치를 일치시키는데 집중한다면, 결국 환자와 보험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사점
·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과 주요 제약사 최고경영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미국 환자와 보험자들이 가치와 무관하게 선진국 중 최저가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음
· 가격과 가치를 일치시켜야만 환자와 보험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음

* 본 컬럼은 의료기기를 비롯한 헬스케어 분야의 국내외 학회지에 발표된 논문 및 연구보고서 등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의료기기 관련 보건의료정책 마련에 통찰력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주 발표됨

* 출처 : Most Favored Nation Drug Pricing: Aiming At Pharma’s Achilles Heel

Spatz ID. Health Affairs Forefront. September 18, 2025. 10.1377/forefront.20250917.479248
https://www.healthaffairs.org/content/forefront/most-favored-nation-drug-pricing-aiming-pharma-s-achilles-he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