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장벽’을 기회로, 미국 의료기기 시장 진출 전략

“FTA와 규제 대응이 열쇠, 위기 속 기회를 잡다”

2025-10-13     의료기기뉴스라인

● 무역장벽을 활용한 미국 의료기기 시장 진출 전략

▲지 승 권
넥스트합동관세사무소 / 넥스트메디
대표

미국 시장, 위기이자 기회
최근 한국의 미용 의료기기가 미국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의료기기 시장은 단일 국가 기준으로도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약 40%에 달한다. 이는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에게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수출 대상지로 인식돼 온 이유다.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단순한 매출 확대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장은 철저한 규제와 치열한 경쟁이 맞물려 있어, 준비가 부족한 기업에게는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가 된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보이는 미용 의료기기, 원격의료 기기, 홈케어 디바이스 분야는 미국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원격진료와 홈 헬스케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미용·웰빙산업의 성장세와 맞물려 관련 의료기기 수요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원격의료 기기의 경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제품군이 늘어나면서 기기 판매를 넘어 데이터 기반 서비스 시장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이처럼 변화하는 수요 환경은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회 뒤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리스크도 자리한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본격화된 관세 인상 정책, 까다로운 원산지 증명 요구,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과의 치열한 가격 전쟁은 여전히 한국 기업들에게 무거운 부담이다. 중국은 저가 공세를 무기로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으며, 일본은 오랜 품질 신뢰도를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을 집중 공략한다. 결국 한국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가격 경쟁을 넘어 브랜드 가치와 품질 신뢰도를 확보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무역장벽, 관세와 규제의 이중 압박
미국 진출의 첫 번째 장벽은 ‘관세’다. 지난 8월부터 한국산 제품에 상호관세 15%가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의약품과 달리 의료기기는 상호관세 배제 대상이 아니어서 원가 인상과 최종 소비자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이는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중소기업들에게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단순히 관세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 무거운 부담은 ‘비관세 장벽’이다. 의료기기는 인체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FDA 인허가를 비롯한 복잡한 절차와 엄격한 규제를 거쳐야 한다. 품질경영시스템(QMS) 준수는 기본이며, Class I·II 제품은 판매 이후에도 사후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최근 이 심사의 빈도와 강도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더 높은 수준의 사후관리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미국 시장 진출을 단순한 수출이 아닌 장기적 운영 모델 구축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원산지 증명, 작은 착오가 부르는 큰 리스크
한국 기업들이 자주 빠지는 또 다른 함정은 원산지 증명과 관련된 오해다. 미국의 관세율은 ‘기본관세 + 상호관세’ 구조로 적용되는데, 일부 기업들이 한미 FTA 체결로 기본관세 0% 혜택을 무조건 받을 수 있고, 따라서 상호관세 15%만 부담하면 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기본관세 감면 혜택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원산지증명서 제출을 전제로 한다. 즉, 원산지 증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기본관세 감면은 무효화되고, 상호관세와 더불어 전체 세율이 크게 높아진다.
게다가 미국 세관(CBP)은 원산지와 관련해 최대 5년간 사후 심사를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 과정에서 오류나 허위 사실이 발견되면 단순 추징에 그치지 않고, 기업 신뢰도 하락과 법적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국내 중소기업이 원산지 관리의 중요성을 간과했다가 사후 심사에서 적발돼 예상치 못한 비용 부담과 행정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따라서 원산지 관리 역량은 단순한 행정 절차 차원을 넘어, 미국 시장 진출 전략의 핵심적인 경쟁 요소로 인식돼야 한다. FTA 혜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상호관세 부담을 최소화하려면 기업 내부의 원산지 관리 체계 강화가 필수적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
그렇다고 미국 시장 진출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상호관세 제도는 한국 기업에게 상대적 기회를 제공한다. 중국과 일본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더 높은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반면 한국 기업은 원산지 증명만 철저히 관리한다면 경쟁국 대비 가격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FDA 사후 심사 강화 역시 기회가 된다. 규제가 엄격해질수록 철저한 품질관리와 사후관리 체계를 갖춘 기업만이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다. 실제로 다수의 한국 기업은 ISO13485 등 국제 표준을 기반으로 한 QMS 구축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시장뿐 아니라 유럽·동남아 등 제3국 진출 시에도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나아가 미국 FDA 인허가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해외 시장에서 일종의 신뢰 보증 수표처럼 작용해, 수출 판로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한국 정부와 유관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더해지면 효과는 배가된다. 기업 단독으로는 복잡한 규제 대응과 무역 분쟁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협회·관세사무소·전문 컨설팅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원산지 검증 체계 구축, FDA 인허가 컨설팅, 글로벌 인증 취득 지원, 현지 법규 교육 프로그램 등이 체계적으로 뒷받침될 때 한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은 더욱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런 민관 협력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 강화뿐만 아니라 한국 의료기기산업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기반이 될 것이다.

결론, 리스크 관리형 기회 시장
미국 의료기기 시장은 단순한 수출 대상지를 넘어, 글로벌 시장 공략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한다. 관세와 비관세라는 복합적 장벽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를 전략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오히려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FTA 특혜를 제대로 활용하면 중국·일본 대비 유리한 조건에서 시장에 접근할 수 있고, FDA 사후 심사 강화는 기업의 품질관리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된다. 더 나아가 미국 인허가를 확보하면 제3국 진출 시 ‘패스트트랙’으로 작용해 시장 다변화에도 유리하다.
따라서 미국 시장은 한국 의료기기 기업들에게 ‘위기 속 기회’다. 면밀한 시장 분석, 철저한 원산지 관리, 체계적인 품질경영 시스템 구축, 그리고 장기적 브랜드 신뢰도 제고가 결합될 때 비로소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의 높은 장벽을 넘어 글로벌 의료기기 강자로 도약할 수 있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