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법’이 불러올 나비효과

“직역별 업무 확대가 맞춤형 기기 개발·디지털 헬스케어 수요 불러와”

2025-09-10     의료기기뉴스라인
▲이 진 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부회장

지난달 4일, 보건의료인력의 업무 범위를 심의하기 위한 조직을 설치하는 ‘보건의료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했다. 6개월 유예 후 시행되는 법안은 그동안 의료계 내 첨예하게 대립해 온 직역 간 업무 범위 갈등을 체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법이 가동된다면 의외의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직역 간 불명확한 업무 경계로 인해 몇 가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의료인력 활용의 비효율성이다. 명확하지 않은 업무 경계로 인해 각 직역은 보수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의료인력의 전문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임상 현장에서 특정 직역이 부족함에도 다른 의료인력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업무조차 제한을 받아, 구급차에 실려 간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가는 순간,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제한하는 현실이 환자의 치료에 영향을 줬다.

둘째, 법적 분쟁으로 인한 직접적 비용 증가다. 직역 간 업무 범위를 둘러싼 법정 다툼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켰다. 모호한 업무 범위를 직역 혹은 의료현장에서 풀 수 있는 기전이 없다 보니 모든 쟁점이 법원으로 가게 되고, 이로 인한 소송비용, 행정처리 비용은 물론 분쟁 해결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까지 고려하면 그 손실 규모는 상당하다.

셋째, 의료인력 양성의 비효율성이다. 명확하지 않은 역할 분담으로 인해 직역별 교육과정이나 전문성 개발 방향이 모호해지고, 인력 양성에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의료인력 업무조정법의 핵심은 각 의료자격을 가진 직역군 간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시대 변화에 맞춰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김윤 의원이 발의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안은 단순한 갈등 해소를 넘어 의료시스템 전반의 효율성 제고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정작 그 결과는 다른 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대표적인 분야가 의료기기산업이다.

직역 간 업무 범위가 확대되면 의료현장에서는 더 다양하고 전문화된 의료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이는 단순히 의료진의 업무 분담 차원을 넘어 관련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의료기기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주목할 만하다. 간호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 각 직역의 업무 범위가 확대되면서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의 종류와 범위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 의료인력 업무조정법이 가져올 의료기기산업의 성장 동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의료기기 활용 인력의 확대다. 기존에 특정 직역만 사용할 수 있었던 일부 의료기기들이 다른 의료인력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이는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에게 새로운 시장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맞춤형 의료기기 개발 수요 증가다. 직역별로 특화된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이에 맞는 전용 의료기기나 개선된 기기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예를 들어, 물리치료사의 업무 범위 확대는 재활의료기기 시장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의 활용 확산이다. 업무 범위 확대로 더 많은 의료인력이 환자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참여하게 되면서 정보 공유 및 통제의 수요와 함께 근무 강도의 조정을 위한 디지털의료제품의 수요가 증가한다. 이에 따라 웨어러블 디바이스, 원격 모니터링 장비, AI 진단보조 시스템 등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의료현장에서 보건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한 환자 안전 위협과 과중한 업무 부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번 법안은 의료인력의 효율적 활용을 통해 의료서비스 질 향상과 함께 관련 산업의 성장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그동안 직역 간 갈등으로 인해 발생했던 사회적 손실을 회복하고 이를 생산적 동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명확한 업무 범위 설정으로 각 직역이 자신의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되면, 의료현장의 효율성은 물론 관련 산업 전반의 혁신도 가속화될 것이다.

의료기기산업 입장에서는 국내 의료진의 업무범위 확대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고, 이는 기술 개발과 혁신의 동력이 된다. 직역 관련 조정법이 나비가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