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재료 공급위기, 국민건강 위기로 이어져”

원가 수준 상한금액·환율 연동 조정률 한계, 기업 철수로 공급 불안 가속

2025-09-03     의료기기뉴스라인

● 산업계 제언 – 치료재료 공급위기 개선을 위한 건강보험 제도 개선

▲채 창 형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장
비브라운코리아 대표

의료기기의 다양화와 공급위기의 그림자

산업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국내 의료기기는 더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식약처 고시에서 정한 국내 의료기기 품목명으로만 보면 압박용 밴드, 일회용 전극과 같은 소모품부터 MRI, CT, 수술기기, 의료용 로봇 등 첨단 장비까지 포괄해 약 2,500개에 달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로봇, 정보통신기술(ICT) 등 디지털 기술과 융합된 ‘디지털의료제품’이 등장하면서 의료기기 영역은 더욱 확장하고 있다.

국내 의료기기는 건강보험 제도를 통해 의료 현장에 공급된다. 치료재료는 ‘네거티브 리스트(negative list)’ 방식을 적용해 비급여로 규정되지 않은 항목은 모두 급여 대상으로 인정된다. 급여·비급여 항목은 복지부 고시를 통해 관리·운영되고 있다.

이 제도 아래 치료재료 등재 제품 수와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등재 제품 수는 2001년 6,759개에서 2011년 17,696개, 2023년에는 35,570개로 늘었다. 자연스럽게 지출도 확대됐다. 2022년 기준 건강보험 총 진료비 약 100조원 중 치료재료 비용(재료대)은 약 4조 6천억원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한다. 보장성 강화 정책과 일회용 치료재료 별도 보상 등 제도가 뒷받침되면서 지출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연도별 4대분류별 요양급여 청구현황>
(단위: 억원, %)

연도 총 진료비 기본진료료 진료행위료 약품비 재료대
금액 % 금액 % 금액 % 금액 %
2019 806,170 200,700 24.9 375,445 46.6 194,119 24.1 35,906 4.4
2020 808,875 184,770 22.8 386,803 47.8 198,858 24.6 38,444 4.8
2021 898,452 195,053 21.7 444,713 49.5 215,229 24.0 43,457 4.8
2022 1,006,311 215,699 21.4 509,399 50.6 234,681 23.3 46,531 4.6

[출처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비 통계지표]

문제는 품목과 지출이 늘어남에도 안정적인 의료 현장 공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공심폐기와 혈관을 연결하는 혈관튜브(캐뉼러) 부족으로 심상수술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고, 수두증 치료에 필요한 뇌척수용 밸브 공급 문제로 환자 치료가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기술의 발전과 융합에 따른 의료기기 다양화가 국민건강 증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제도적 한계 속에서 공급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공급위기의 원인, 건강보험 제도의 구조적 한계

치료재료 공급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상한금액 산정 제도가 지적된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혈관튜브(캐뉼러)의 상한금액은 유럽의 3분의 1 수준으로 사실상 원가 수준의 가격이다. 상한금액이 낮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워 채산성이 떨어진다. 국내 기업은 제조와 연구개발을 기피하고, 해외 기업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신기술 제품이 있어도 국내 시장에 출시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코리아 패싱’ 현상이다. 결국 해외에서는 사용 가능한 최신 치료재료를 국내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가치평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 등재된 제품보다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기술혁신이 입증되면 상한금액을 10~100% 가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제도 실효성은 극히 제한적이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가산을 인정받은 품목은 연평균 10건에 불과하고, 평균 가산율도 11.7~22.5% 수준에 그쳤다.

<연도별 치료재료 가치평가 현황>

구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등재품목 16 11 19 8 26 6
가산 소계 13 9 10 2 25 5
기술개량 5 2 3 1 0 0
획기성 8 7 7 1 25 2
비가산 3 2 9 6 1 1
평균 가산율 16.9% 14.5% 12.7% 22.5% 17.5% 11.7% 

[출처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 치료재료 상한금액 산정기준 개선방안’ 연구보고서]

가치평가 제도 활용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자료 요건이다. 새로운 치료재료가 기존 제품보다 개선됐음을 입증하려면 ‘직접 비교’ 임상시험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치료재료는 환자의 체형, 활동성, 질병 진행도에 따라 사용되는 제품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동일 조건에서 비교시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공관절 같은 경우는 장기 안정성까지 요구돼 임상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 부담도 크다. 반면, 미국 FDA는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실사용증거(RWE)를 근거로 활용하며 임상과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환율연동 제도의 한계다. 치료재료는 수입 의존도가 높아 환율 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정부는 연 2회 환율을 반영해 상한금액을 조정하고 있으나, 미국 달러 환율 1,300~1,400원 구간의 조정률은 4%에 불과하다. 최근처럼 환율이 급등하고 원자재 비용과 인건비가 상승하는 환경에서는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전쟁, 팬데믹, 공급망 붕괴 같은 외부 요인도 제도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환율 등급별 치료재료 상한금액 조정율표>

등급 환율구간(원) 조정율(%)
-4 700이상 ∼ 800미만 -8
-3 800이상 ∼ 900미만 -6
-2 900이상 ∼ 1,000미만 -4
-1 1,000이상 ∼ 1,100미만 -2
0(기준등급) 1,100이상 ∼ 1,200미만 0
1 1,200이상 ∼ 1,300미만 2
2 1,300이상 ∼ 1,400미만 4
3 1,400이상 ∼ 1,500미만 6
4 1,500이상 ∼ 1,600미만 8
5 1,600이상 ∼ 1,700미만 10

산업계 제언

치료재료 공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계는 다음의 제도개선 방안을 제언한다.

첫째, 치료재료 상한금액을 현실화해야 한다. 제조·수입(F.O.B) 등 원가뿐만 아니라 환자 규모, 사용량, 임상 특성 등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하는 산정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둘째, 가치평가제도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제출자료 기준을 완화하고, 해외처럼 실사용증거를 근거로 인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셋째, 환율연동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의 조정률은 현실성이 없다. 예를 들어 환율 1,300~1,400원 구간에서 4%가 아닌 10% 조정률을 적용한다면 기업은 고환율 상황에서도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환율이 낮아질 때도 더 큰 폭의 조정률을 책정해 제도의 재정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

넷째, 참조가격제와 같은 새로운 제도도 고려해야 한다. 일정 기준 가격은 보험자가 부담하고, 초과 금액은 환자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고가 혁신 제품의 시장 진입을 촉진할 수 있다. 이는 환자에게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보험 재정을 보호하는 절충안이 될 수 있다.

마무리하며

치료재료는 환자의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 요소다. 그러나 현재의 가격 제도는 공급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국민은 필요한 치료재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위기에 놓여 있다. 기술 발전과 산업 현실이 제도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치료재료 공급위기는 국민건강 위기로 이어진다.

1999년 의료기기 업계에 첫발을 디딘 이후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환경은 처음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치료재료가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유지하고 국민건강을 지키는 한 축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정부와 제도가 의료기기산업의 특수성과 현실을 인정하고,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국민건강과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지키기 위해 안정적인 치료재료 공급은 확보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