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료기술 제도, 현장과의 간극 줄여야”

‘침습 의료기기 선진입 사례’를 통해 본 현실과 개선 과제

2025-08-18     의료기기뉴스라인

● 산업계 제언 - ‘선진입-후평가’ 제도 실효성 제고를 위한 개선 방향

▲양 운 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회 전략기획위원
로엔서지컬 이사

최근 국내 의료기기 제도는 기술 혁신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진일보하고 있다. 특히 ‘선진입-후평가’ 제도는 안전성이 입증된 의료기기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허용하고, 이후 실제 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효성을 평가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기술 경쟁에서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제도적 발판이 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AI) 등 융합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 의료기기들이 시장에서 안착한다면, 이는 단순한 산업 발전을 넘어 국가의 고부가가치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해 실질적인 임상적 성과와 산업적 성장을 이끌기 위해서는 운영상의 여러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로엔서지컬의 선진입 사례에서 본 문제점

필자는 국내 수술로봇 제조기업 로엔서지컬의 공동창업자이자 이사로, 수술로봇 ‘자메닉스’의 개발과 실사용을 주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선진입-후평가’ 제도의 한계와 현실적인 애로사항은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로엔서지컬은 비뇨기과 수술로봇 자메닉스를 통해 고위험 신장 질환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해당 기기는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되면서 선진입 제도에 들어섰지만,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는 임상연구계획에 대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심의 승인, 실시기관 사용신고, 장비 도입, 임시수가코드 생성 등 다수의 절차를 진행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시된 3년의 선진입 기간 중 약 1/3은 실제 환자 적용이 불가능했고, 남는 기간동안 필수적인 임상 데이터를 충분이 축적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했다.

이에 더해, 비침습적 의료기기와 달리 침습 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는 혁신의료기술 선진입 제도에서 근거창출연구 목적 이외 임상 진료가 사실상 제한돼 있으며, 이는 임상 사례를 충분히 축적하기 어려운 구조적 제약이 된다. ‘혁신의료기술 실시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근거창출연구 중이라도 연구계획서상 목표 등록 환자수 모집 종료 시 임상 진료로 전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환자 등록은 수술 완료 이후에야 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모집 종료’ 시점은 ‘연구 종료’ 시점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게다가 근거창출연구는 대부분 3차 의료기관에서 수행되는데, 이들 기관은 기저질환이나 중증 질환을 가진 환자가 많아, 상황에 따라 연구 기준에 적합한 대상자 모집이 쉽지 않다. 이는 진료 전환까지의 시간 지연요소가 되고, 결과적으로 실사용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을 초래한다. 침습적 혁신의료기술의 유효성과 임상적 가치를 평가·입증하기 위해서는 엄격히 통제된 임상연구 외에도, 실제 사용 환경에서 다양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근거 수집이 병행돼야 한다.

따라서 일정 조건을 충족한 침습적 혁신의료기술에 대해서는, IRB 승인 기관을 중심으로 진료와 연구를 병행할 수 있도록 유연한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 보다 확대된 치료 선택권을 제공함과 동시에, 제도의 궁극적 목표인 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 확보에도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 개선을 위한 네 가지 방향

로엔서지컬의 사례 외에도, 큐렉소, 엘엔로보틱스 등 국산 침습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는 기업들은 유사한 문제를 답습하고 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에서 체감하는 선진입 제도의 운영상 문제에 대해 다음 네가지 측면에서 제도적 개선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는 심의 절차의 신속성 확보다. 현재 근거창출연구 심의는 월 1회로 제한돼 있고, 기업과 근거·평가위원회 간 직접 소통 채널의 부재로, 연구 계획의 경미한 변경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기업이 실제 연구 일정을 원활히 운영하기 위한 기업-위원회 소통 채널 구축과 연구에 미치는 영향이 경미한 변경 사항의 경우 간소화된 심의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

둘째는 사용기간의 유연성 확보다. 제도적으로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된 이후 연구계획 심의나 장비 도입, 기관 승인 등으로 실제 환자 적용까지 지연된 경우, 이에 대한 기업의 소명 등 근거 축적에 필요한 사용기간 연장을 요청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는 침습적 혁신의료기술의 임상진료 병행 허용이다. 물론 이는 무조건적인 허용이 아닌 납득할 만한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한 허용이다. 예를 들어 모집 목표 환자의 일부가 충족되고 사용현황 보고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한 경우 근거창출연구와 임상진료를 일정부분 병행할 수 있도록 한다면 보다 유연한 제도 운용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는 시행 절차의 통합 가이드 마련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각 기관마다 행정 절차가 진행되면서,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과 병원은 혼란을 겪고 있다. 절차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단계별 매뉴얼을 제공하고 통합 창구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마무리하며

의료기기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안전성과 유효성은 의료기기의 기본 전제다. 이런 기본 전제 위에서 제도의 유연성과 현실성이 함께 뒷받침될 때, 혁신 기술은 비로소 실질적인 진료 현장에 진입하고 이는 의료서비스 질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도 정부와 유관기관들이 혁신 의료기기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 오늘의 제도 혁신은 곧 내일의 환자 치료 기회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단순히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개선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제도 개선의 한 축으로서, 현장의 목소리가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글로벌 성장을 위한 제도 설계와 운영에 반영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