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규제, 정부·학계·산업계 협력 시스템 구축해야”

‘균형 있는 규제’로 환자 안전 담보·혁신 기술 발전 동시 견인

2025-06-24     의료기기뉴스라인

● The InnerView_ 한국에프디시규제과학회 이의경 회장(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

▲한국에프디시규제과학회 이의경 회장(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

한국에프디시규제과학회는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글로벌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을 선도하며 안전한 제품 사용을 제공하는 역할’ 재정립에 나섰다. 이를 위해 규제가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 아닌 혁신을 유도하는 과학 기반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학계·산업계 간 협력 허브이자 플랫폼 역할을 확대·강화하고 있다.
학회를 이끄는 이의경 회장을 만나 환자 안전을 담보하면서 의료기기·바이오헬스 분야 기술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합리적 규제 수립과 규제과학 기반 의료기기산업 발전과 경쟁력 제고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KFDC규제과학회는 의료기기·의약품·화장품·건강기능식품 관련 국내외 각종 법제와 규제 연구·교육을 통해 합리적이고 투명한 법령 및 규정 제·개정과 정책개발에 일조하고자 2005년 1월 설립됐다.

KFDC규제과학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KFDC규제과학회는 매년 두 차례 정기 학술대회와 연수 교육을 통해 의료기기·바이오헬스 등 관련 규제과학 이슈에 대해 정부·학계·산업계 간 실질적인 협력을 확대하고 발전적인 논의와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춘·추계 학술대회에 약 200명이 참석하고 있으며, 최근 국내 8곳의 규제과학대학원이 설립되면서 학계에서의 학회 참여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또한 산업계에서는 의료기기, 제약·바이오, 식품 분야 연구개발(R&D)·인허가 담당자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해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등 정부·공공기관의 참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학회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정책과 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규제과학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정보통신기술(ICT) 등 기술 발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헬스케어·의료기기가 개발되고 있다. 특히 이들 제품은 ‘유무형·신개념’ 기술이 접목된 첨단 융복합 의료기기로 기존 제품과 달리 그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규제 개발·적용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첨단 융복합 의료기기·혁신의료기기에 대한 합리적 규제 방안은 무엇인가.
첨단 융복합 의료기기·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은 기존 의료기기와 달리 AI·빅데이터·ICT 등이 접목돼 제품의 △개념 △형태 △작동 방식이 완전히 새롭다. 따라서 이들 제품에는 기존 규제의 틀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기술 특성과 사용 환경을 반영한 새로운 규제 체계가 요구된다. 식약처는 이런 인식에서 2019년 ‘의료기기산업법’을 제정해 산업 진흥과 규제 기반을 마련했고, 올해부터 디지털 기술 기반 의료제품에 특화된 ‘디지털의료제품법’도 시행했다. 특히 디지털의료제품법은 △품목 분류 △등급 △허가 △품질관리 전반을 기존 의료기기 체계와 분리해 디지털 제품에 적합한 방식으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기술 변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진다. 따라서 규제는 고정된 틀이 아니라 유연하게 진화하는 체계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규제 당국이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환자 안전을 담보하는 ‘균형 있는 규제’, 즉 ‘원칙은 과학 기반, 운영은 유연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안전성과 유효성·성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는 개발자 중심의 자율성과 혁신을 최대한 보장하고 안전 이슈가 우려되는 경우에 한해 신중하게 제한하는 ‘위험 기반 규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규제는 정부만의 일이 아니라 산업계·학계·의료현장이 함께 참여해 설계 및 검증하는 공동 작업이다. 규제과학을 중심으로 이런 논의의 장이 더욱 확대됐으면 한다.

개인적 관점에서 규제과학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더불어 규제과학은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과 경쟁력 제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나.
규제과학은 한마디로 ‘혁신 기술이 안전하고 신속하게 시장에 도달하도록 돕는 과학’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의료기기·의약품·체외진단기기처럼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제품들이 실제로 환자에게 사용되기까지 안전성과 유효성·품질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준과 평가법을 개발하는 분야가 바로 규제과학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규제과학은 ‘개발 중인 새로운 의료기기나 의약품을 정말 인체에 써도 되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시험법과 기준을 만들어 주는 파트너로 보면 된다. 특히 의료기기산업은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고 제품이 다양한 만큼 기존의 규제 프레임만으로는 새로운 제품을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령 △AI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웨어러블 센서 △3D 프린팅 보형물 △수술 로봇 등은 기존 기준으로 안전성과 효과성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이런 제품이 시장에서 안전하고 빠르게 쓰일 수 있도록 새로운 평가 기준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규제과학의 핵심 역할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의료기기 허가·사후관리에 실사용 데이터(RWD)·디지털 기반 평가기술이 활용되기 시작했고, 한국도 규제과학 기반의 제도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의료기기 산업계가 이런 규제과학의 흐름을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제품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훨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규제 당국·학계·산업계는 의료기기 규제과학 발전을 위해 어떻게 협력해야 하나.
의료기기 규제과학은 단순한 규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혁신 역량과 국민 건강을 동시에 책임지는 복합적이고 전략적인 과제다. 따라서 규제 당국·학계·산업계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유기적인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규제 당국은 산업계·학계의 연구개발 흐름을 반영해 정책 방향과 규제 기준을 제시하고,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과학 기반의 유연한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용적인 심사 가이드라인 개발과 예측 가능한 규제 운영이 요구된다. 학계는 규제과학에 기반한 연구와 인재 양성의 핵심 축이다. 따라서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의료기기 시험법 △품질 평가 기준 △실사용 데이터 분석 기법 등을 연구·개발하고 규제과학 인력을 양성해 산업계와 정부 기관에 우수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도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의료기기 업계는 기술 개발 현장에서 축적된 실제 데이터와 경험을 정부·학계와 적극 공유함으로써 제도와 평가 기준이 보다 현장 친화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들 세 주체는 단순히 역할을 나누는 것을 넘어 △공동 연구 △정책 협의 △정례적인 소통 채널을 구축해 실질적인 협업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특히 KFDC규제과학회와 같은 전문 학술 플랫폼이 이런 협력의 허브 역할을 하며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설계하는 구조는 한국 규제과학의 지속 가능한 발전 기반이 될 것이다.

국내 의료기기 규제 혁신을 위해 시급한 정책 과제는 무엇인가.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규제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다. AI 의료기기·디지털 치료기기 등 신개념 제품에 맞는 맞춤형 인허가 평가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며, 비임상·임상·RWD 기반 평가 체계를 고도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정부·학계·의료계·산업계가 정례적 소통 구조를 구축해 현장 중심의 실효성 있는 정책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인허가 이후 보험 연계 전략과 급여 등재 기준의 유연성 확보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나아가 △규제과학 전문 인력 양성 △평가기관 전문성 강화 △국제 규제 조화·정보 교류 확대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규제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과 정책 수립은 국내 의료기기산업 혁신과 국민 건강 보호를 동시에 실현하는 핵심 기반이 될 것이다.

정희석 라포르시안 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