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산업, 시장과 정책이 받쳐줘야 성장한다”
현 보험수가 체계는 환자 부담만 가중, 협회 역할 재정립도 필수
● 역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 인터뷰 – 송인금 제6대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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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메디칼 서울사무소에서 제6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을 역임한 송인금 전 회장을 만났다. 송인금 전 회장은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현실과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한 손에는 신문 기사를, 다른 한 손에는 직접 정리한 자료를 들고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정책적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거침없이 소신을 밝혔다. 건강보험 수가 조정의 필요성, 영세 제조업체의 생존 문제, 그리고 협회의 역할까지 그가 던지는 화두는 하나같이 업계가 직면한 과제들이다.<편집자 주> |
협회의 구조와 업계의 현실
송인금 전 협회장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보건복지부 산하 외청인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관할로 설립되면서 산업 진흥보다는 규제 대응 중심의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자동차나 철강 등 산업협회는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라 비교적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산업 육성과 수출 촉진이 주된 역할이다. 반면, 의료기기산업협회는 복지부와 식약처의 영향 아래 있어 규제 대응과 정책 협력이 주요 기능으로 작용해, 업계의 산업적 발전을 위한 독립적 추진은 쉽지 않았다. 의료기기협동조합 역시 중소벤처기업부 소관으로 운영되면서 협회와 조합 간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일부 혼란도 발생한다”
그는 특히 제약협회가 산업부 소속으로 독립적 입장을 유지하며 산업 보호에 성공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의료기기산업협회 역시 규제 기관과 협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인 정책 대응과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협회가 의료기기산업 전반을 대표하는 조직이라면 협동조합은 제조업체 중심으로 운영되는 만큼, 각자의 정책적 입장이 상충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차이를 조율하지 않으면 산업 전체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 이런 구조로 인해 의료기기산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협회의 역할이 제한될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협회의 조직적 역량 강화를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수가 조정의 필요성, “환자만 피해 보는 구조”
송 전 협회장은 행위별 상대가치 개념을 기반으로 한 국내 건강보험 수가 체계가 급변하는 의료 환경을 반영하지 못해 업계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76년 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됐을 때만 해도 바늘, 주사기 등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개념이 아니었다. 멸균 과정을 거쳐 재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1988년 올림픽 이후 국민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감염 관리가 강화됐고, 일회용 제품 사용이 늘어났다. 그러나 건강보험 수가 체계는 이런 변화를 신속히 반영하지 못하고 일부 항목에서 과거의 기준이 남아 있다.”
행위료에 묶인 해당 의료기기는 여러 개를 사용하더라도 행위별 수가로 책정돼 있기 때문에 의료기기업체는 적정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로봇 수술을 예로 들며, 과도한 비급여 사용이 늘어나면서 환자가 불합리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병원이 맹장 수술을 하면 건강보험으로 30만원밖에 받지 못하지만, 로봇 수술을 하면 비급여로 3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환자가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의료진이 ‘이게 더 좋은 기술’이라고 하면 환자는 따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환자 부담만 커지는 것이다”
그가 건넨 신문 기사에는 의정 갈등이 1년째 이어지는 요즘 병·의원에서 많이 불거진 ‘과잉 진료비’ 논란이 대형 병원들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송인금 전 협회장은 신의료기술을 환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수가 신설·조정뿐만 아니라 기존 기술과 의료기기에 대한 수가도 재조정해야 한다며, 현재의 수가 구조가 환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 수가 체계를 보다 유연하게 조정하고, 불필요한 비급여 사용을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술만으로는 부족, 정책적 지원이 필수
송인금 전 협회장은 의료기기산업이 기술력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으며, 시장 환경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의료기기산업을 육성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규제 강화로 인해 중소기업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협회장 재임 당시 식약처가 의료기기 제조 등록비를 절감하는 등의 지원책을 마련했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정부 차원에서 업계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조치가 지속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의료기기산업에 규제 자체는 필수적이지만, 기업이 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기기가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만큼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강화된 규제가 필요하지만, 규제가 강화될수록 기업의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그는 국내 업체들이 강화되는 규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치과임플란트 산업의 사례를 들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산업 성장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설명하기도 했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의 치과임플란트 산업은 변변치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노인 치과임플란트 보장 연령범위를 확대하면서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 현재 한국의 치과임플란트 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고,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기기 업계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송 전 협회장은 “주사기 하나의 가격이 48원, 수액세트 하나가 260원에 불과한 현실에서 국내 업체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며, 의료기기 가격 현실화와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의료기기 업체들이 시장 가격에 맞춰 사업을 운영하지만 한국은 의료기기 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있어, 국산 제품이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국내 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가 보다 현실적인 가격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협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송인금 전 협회장은 의료기기 업계의 현실을 개선하고 의료기기산업이 발전하려면 협회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의료기기산업이 제약·바이오, 치과 등 타 의료산업과 비교해 조직적으로 힘이 약하기에 협회의 역할 강화를 촉구한 것이다.
“의약분업 당시 제약바이오협회가, 임플란트 보험 도입 때는 치과의료기기산업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의학 분야도 도수치료 확대를 위해 협회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의료기기산업도 개별 업체가 아닌 협회 차원에서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는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영향력이 강한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서 의료기기 업체들이 개별적으로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협회가 업계를 대표해 의료기기산업의 입지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가 앞장서야 한다. 단순히 회비 운영 조직이 아니라, 업계 전체를 대변하고 정부에 현실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기기산업은 계속해서 주변부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의 말 속에는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으려는 원로의 묵직한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적 변화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온 때, 협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