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기기 시장의 유통질서 확립을 위한 제언

“병원과 업계, 상생하는 의료기기 공급체계 만들어야”
간납업체, 실질적인 구매·실체 있는 서비스 제공 후 수수료 요구 가능

의료기기 업계가 상생이 가능한 의료기기 공급체계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병원은 의료기기 공급업체와 상생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가? 어쩌면 그 상생에 대한 노력과 기대는 의료기기 공급업체의 일방적인 꿈에 지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병원의 역할은 국민건강의 증진 더 나아가 국민의 복지까지 논할 수 있을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의료기기 공급업체 역시 단순한 시장논리만을 따르지 않고 환자와 의료 사용자 사이의 더 나은 결과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결국 병원과 의료기기 업계 간의 진정한 상생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의료기기의 공급체계는 대리점을 통한 공급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리점은 일정 부분의 마진을 가지고 가납이라는 재고운영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미리 병원에서 사용할 제품을 판매하지 않은 상태로 가져다 놓고 병원에서 사용된 물품의 내역만큼 역으로 계산서가 발행되는 형식이다. 그 과정에서 분실, 파손, 사이즈 선택의 실수 등 모든 재고운영에 대한 책임은 대리점 혹은 공급업체가 온전히 떠맡는다.

또한, 그 사용 내역 역시 투명하게 전달되지 못한다. 매월 사용된 양을 대략적으로 정리한 내역이 공급자에게 전달되고, 공급자는 무조건 그것을 따른다. 이로 인해 가납재고의 불일치, 일부 병원의 재사용 이후 보험 청구에 따른 허수발생 등등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일방적인 거래관행은 많은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그 비용은 일방적인 공급자의 손해로 보일지 모르지만, 국내 의료체계의 발전에 악영향을 주는 것 또한 무시하지 못할 일이다. 환자에 시술한 투명하고 정확한 사용내역이 없음은 환자 사후관리 및 보험청구 과정에서 불일치를 초래한다. 이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환자, 병원, 국가 간의 신뢰를 잃게 되고 투명하고 정확한 의료기기 사용 내역이 왜곡된다.

대리점을 통한 공급체계를 극복하기위한 방안으로 병원은 간납업체를 두기도 한다. 대형 간납업체들과 손을 잡은 병원들은 마치 이런 부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솔루션을 가진 것과 같은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현재 간납업체들의 업무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의료기기의 공급체계에 있어서 그리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에 간납업체가 긍정적이 기능이 있는지 또는 어느 정도인지 의심케 하는 부분이 많다.

병원마다 다른 물품코드 정보와 사용량 정보를 간납업체는 병원으로부터 공급받고 그 정보를 근거로 공급업체들에게 발주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대해 지불해야하는 업체들의 비용은 간납업체의 노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실제로 위의 과정 이외에 물리적인 의료기기 공급 과정의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국내 간납업체는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형식적인 물류창고를 거치고 병원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물품들. 예를 들어 거즈, 일회용 주사기 등 대량의, 저가의 물품들에 국한돼 있고, 치료재료에 대한 물류솔루션은 전무한 상태다.

문제는 사용량을 확인할 시스템과 인력도 없으며, 실질적으로 병원의 사용자들을 대신해 물품의 사용내역 및 재발주 과정에 대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가납이라는 재고운영 방식을 통해 공급업체들이 직접 관리를 하고 있으며, 그 과정은 어렵기 그지없다. 실제로 병원의 사용자들은 공급업체들의 병원 출입을 꺼리고, 반복되는 시술일정으로 인해 재고현황과 사용량 파악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기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병원과 의료기기 업계가 상생 가능한 의료기기 공급체계는 무엇이 있을까?

간납업체가 의료기기를 정상적으로 실질 구매하는 것이다. 가납이라는 복잡 미묘한 공급체계를 간납업체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공급업체로부터 형식적인 서류상 구매행위를 하는 것에서 벗어나 실물 구매를 진행하고, 자신들의 물류시스템을 이용해 병원의 가납운영을 책임진다면 병원과 공급업체 간의 상생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간납업체는 정당한 물류 서비스 수수료를 공급업체에 청구하고, 또한 병원으로부터 병원내 물류 서비스를 제공한 것에 대한 정당한 수수료를 받아서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투명한 비즈니스 모델을 하루빨리 도입하면 된다.

간납업체의 그런 노력 없이 현재의 단가계약에만 집중하고 공급업체를 짓누르는 형태를 고집한다면 과연 간납업체의 미래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으며, 현재 의료기기업계는 간납업체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는 제도마련과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향후 간납업체가 변화에 대한 시도와 노력이 없다면, 병원과 공급업체 간의 상생의 길은 간납업체를 완전히 배재한 병원과 공급업체만의 프로세스 개선에서 상생의 길을 찾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간납업체의 이익이 병원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투명하고 정당하게 기여하고 재투자되고 있는지를 깊이 고민해 봐야할 시점이다. 간납업체가 취하는 이익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재정이 그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간납업체들은 선진국의 구매대행업체(GPO)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병원과 공급업체 간의 다리 역할을 하고 그에 맞는 정당한 수수료를 취하는 미국의 GPO와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국내 간납업체들에 대한 업계의 객관적인 평가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IT기반 솔루션의 등장과 경제상황과 규정 및 규제의 변화 역시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함께 변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변화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도태되는 것은 진리이다. 병원, 간납업체, 공급업체를 포함한 의료기기시장의 관련 주체들이 이제 각각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