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 정액수가 품목수 7배 증가, 청구순위도 상위권

□ 치료재료 정액수가 제도에 대한 업계의 제언


안전한 치료재료 사용 위한 정액보상 관리방안 절실
2010년 이후 정액수가 품목수 7배 증가, 청구순위도 상위권

 

▲ 서 화 석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
차장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한 병원이 적발됐다. 관계자들은 입건됐고 기사는 연이어 주요 신문의 첫 면에 올랐다. 뉴스는 감염의 위험에 대한 이슈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이 이야기는 최근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해서 사회적으로 주목받은‘다나의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1987년 9월 23일 동아일보의 첫 면의 기사를 기술한 내용이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최근에도 동일한 이슈가 다시 등장해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공존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시간은 언제나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사건은 최근 신문을 읽어도 다르지 않은 내용이 반복된다. 30년이 지나도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을까. 물론 일회용의 재사용에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 한 가지 원인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한다. 

개별보상과 정액보상 치료재료
치료재료의 경우에, 흔히 우리가 보험이 적용된다는 것은 개별적으로 제품 하나마다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 해당하는 제품은 심평원에서 제품별로 해당 개별 보험코드를 부여받는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개별 코드를 통해 공단에 치료재료에 대한 비용을 청구한다. 심평원에서는 병원에서 청구한 코드를 기준으로 보험 청구 량과 청구금액을 개별단위까지 관리한다. 또한 실거래가 조사를 통해 실제 시장 유통가를 확인하다. 정해진 금액보다 시장에서 낮게 유통될 경우 실거래가로 조절하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액수가라는 독특한 보험코드가 존재한다. 정액 수가가 적용된 치료재료들은 제품별 코드를 부여받지 않는다. 개별 단위 기준을 정하기가 어려워 합의를 통해 단위를 설정하고 일정한 금액을 보상한다. 다시 말해 개별 제품을 대표하는 일반제품명에 동일한 대표 코드를 부여하거나 혹은 여러 제품이 동시에 사용될 경우 사용제품들의 묶음 가격을 설정한다. 그렇다면 대표코드와 묶음가격 설정은 왜 문제가 될까? 

대표코드와 묶음제품
예를 들어 장갑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간다고 가정하자. 마트에 가면 여러 회사의 다른 가격의 다양한 제품이 있다. 그러나 마트에서는 이런 다양한 제품들이 일회용 장갑이라는 동일한 대표코드만 부여해서 관리한다고 해보자. 따라서 누가 어느 개별 제품을 사는지 그리고 어떤 제품이 팔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구입 후 어느 제품을 몇 번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번에는 재사용이 가능한 장갑이 등장한다. 소비자가 일회용 장갑을 구입하던지 재사용 장갑을 구입하던지 마트에서는 마찬가지로 총 판매량만 기록된다. 사실 마트 관리자에게 재사용 장갑을 집에서 아무리 많이 세탁해서 쓰던지 일회용 장갑을 재사용하던 지는 큰 관심사는 아니다. 일반 소비재에 대해서는 판매 후 관리가 필요 없지만 해당 물품이 사람의 몸속에 사용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묶음 가격의 경우, 김장에 필요한 용품들을 세트로 묶어 판매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안이 보이지 않는 포장박스에‘김장용품’이라고만 적혀 있다. 이상하게도 마트에서는 그 안에 포함된 개별용품들에 대해서는 관리를 하지 않고 ‘김장용품’이라는 박스 판매량만 기록한다. 박스 단위로만 관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 있는 용품이 일회용인지 재사용인지조차 알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장을 할 때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별용품을 한 업체가 마트에 추가로 공급하려 한다. 그런데 마트에서는 해당 제품을 이미 지정돼 있는 묶음 가격에 포함시킨다. 묶음 가격은 벌써 10년 전에 책정된 이후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0년 전 묶음 가격을 정할 때 포함됐던 만 원짜리 일회용 장갑이 일반가정에서 평균 2번씩 사용된다고 5천원으로 책정돼 있었다. 깜짝 놀라 마트 관리자에게 찾아갔지만 이미 책정된 가격이라서 소용없다는 답변이다.

정액보상 치료재료 현황
2010년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인해 정액수가 품목 수는 5개에서 현재 35개로 늘어났다. 정액수가 품목은 편의상 중분류별 청구 순위를 기준으로‘내시경화 시술용 기구’,‘관절경하 수술 시 사용하는 치료재료, 그리고 기타 여러 재료로 나눌 수 있다. 

내시 경화 시술용 기구는 일회용과 재사용 제품이 혼재돼 있어 개별 단위 보상이 어려운 경우였다. 관절경하 수술 시 사용하는 치료재료는 관련 시술에 여러 가지 치료재료가 함께 사용돼 묶음 단위로 제품 가격을 설정한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기타 치료재료에는 복강경/흉강경하 치료재료, Burr나Saw 등 절삭기류, 비뇨기과 제품들이 포함돼 있다. 

중분류별 청구량도 2013년 기준 약 140억 원으로 1위인 약 물방출 스텐트 다음으로 940억 원의 내시경하 시술용 기구, 4위를 차지한 관절경하 수술시 사용하는 치료재료, 그리고 8위를 차지한 복강경하 수술 시 사용하는 치료재료로 전체 청구액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대분류별 청구 순위에서도 중재적시술군, 인공관절군 다음으로 정액수가 품목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도덕적 문제 vs 사회적 제도 
정액수가 품목에는 많은 일회용 재료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일회용 재료들에 대한 관리와 감독은 정액수가라는 제도의 특성상 확인하기 어렵다. 일회용 재료와 재사용 가능한 재료들이 서로 섞여서 사용되며, 때로는 묶음 가격이라 어떤 일회용 치료재료들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알기는 더욱 어렵다. 

물론 일회용 제품에 대한 관리와 환자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병원이 많고 더욱 늘어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다나의원 사건은 매우 특별한 경우에 한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회용의 재사용 문제는 개인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보호받아야 할 권리이다. 

30~40년 전 초등학교에서는 단체로 줄을 서서 예방접종을 하곤 했다. 어린 학생들은 긴 줄을 서서 팔을 어깨까지 걷고 예방 접종 차례를 기다렸다. 그 당시 주사기는 일회용 주사기가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총모양의 주사로 바늘이 장착돼 있었다. 총모양의 주사기를 통해 한 사람씩 자기 차례가 되면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주사를 맞고 난 다음에 젖은 솜으로 주사기를 한 번씩 닦았다. 그리고 다음 차례가 되면 다시 주사를 맞았다. 이런 모습을 아직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것 같다. 당시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에서 일회용 주사기의 재사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이야기는 여기 있다. 앞에서 언급되었던 1987년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한 병원에 대한 대법원의 결정이다. 병원 책임자는 일회용 주사기를 매달 7,000개 그리고 환자의 혈액 등이 묻은 붕대를 20상자씩 소독하거나 세탁을 한 뒤 5, 6차례 재사용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도덕 윤리적으로 문제가 됐지만 이를 규제할 제도적 장치는 없었다.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재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제도적으로 일회용의 재사용에 대한 직접적 법적 근거는 없으며 이번 국회를 끝으로 그동안 발의돼 계류 중이었던 일회용 재사용에 대한 처벌규정도 사라진다. 

물론 무조건 일회용의 재사용만 규제하는 법을 재정하는 것은 해결책은 아니다. 치료 행위와 재료를 위한 합리적 보상이 선행되고 이를 기반으로 한 투명한 관리 감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 합의와 약속이 선행된다면 일회용의 재사용 금지에 대한 법은 자연스럽게 진행 되리라 믿는다. 기원전 4세기 고대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는 고르디우스의 전차가 있었다. 그 전차에는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매듭이 있었다. 아시아를 정복하는 사람만이 그 매듭을 풀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매듭을 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아무도 매듭을 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 대왕은 매듭을 보고 바로 칼로 잘라 버렸다.

복잡한 문제에서는 대담한 방법이 최선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액보상 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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