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박기택 기자] 간납업체, 불법리베이트 그리고 의료기기

□ 기자 칼럼


“의료기기업계도 정부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다”
간납업체, 불법리베이트 그리고 의료기기

 

▲ 박기택
청년의사
기자

수많은 약과 치료재료, 의료기기 등을 사용해야 하는 보건의료분야에서 구매대행업체(GPO)가 활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다.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생산업체들이 일일이 모든 의료기관을 방문해 판매 및 가격협상을 한다는 것은 인력, 시간 등의 낭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규모로 구입할 경우보다 가격을 낮출 수 있어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에서도 의약품이나 의료기기의 구매대행업무에 대해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구매대행업무는 병원들은 다양한 제품을 보다 싼값에 구매할 수 있게 하고, 공급업체들은 유통과 재고 관리에 대한 부담 등을 줄이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보건의료산업의 혈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구매대행업체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지난달 초 기자간담회를 열어 구매대행업체, 즉 간납업체’들이 의료기기 유통과정에서 병원들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등 불법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간납업체가 의료기기공급업체들에게 과도한 할인을 요구하고, 그 차액을 리베이트 용도로 쓰면서 병원에 불법적인 이익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협회는 의료기기 공급업체들로서는 ‘의료기기 공급업체-간납업체-병원’으로 이어지는 일원화된 유통구조 때문에 간납업체들의 과다한 할인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제3자인 간납업체를 통한 병원의 이익편취는 주체가 법인이기 때문에 리베이트 쌍벌제 등 법적 규제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협회는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불공정사례를 수집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달하고, 향후 조치에 따라 대응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간납업체 등 제3자를 통한 병원의 이익을 규제토록 한 김성주 의원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요는 간납업체를 중심으로 한 의료기기 불법적인 거래 관행이 투명하고 건전한 의료기기 유통을 막고 있다는 것인데, 그럼 정부는 이런 상황을 모를까?

사실 간납업체들을 통한 불법리베이트 의혹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관련 업계에선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안이다. 실제로 검찰 등 사법당국에 적발된 사례도 있다.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모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말이다.

정부는 최근 보건의료계의 불법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그 사정의 칼날은 주로 제약업계를 향하고 있다. 리베이트 쌍벌제, 강화된 공정경쟁규약 등은 의료기기업계와도 관련돼 있지만 주 타깃은 제약사들이었다.

제약사들이 가장 우려하던 ‘리베이트 대상 약제에 대한 급여정지제도’(일명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지난해부터 더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분명한 점은 이런 불법리베이트 근절책으로 인해(여전히 일부 제약사의 불법리베이트가 적발되고 있지만) 제약업계 전반에 투명한 유통 및 판매 관행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의 주장대로라면, 의료기기와는 달리 말이다.

협회가 불공정사례 설문조사를 심평원에 전달하는 등 간납업체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만큼, 올해 의료기기업계에도‘건전한 유통’,‘투명 경영’이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간납업체들의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는다고 의료기기가 공정하고 건전한 유통문화가 자리를 잡겠느냐는 것이다.

제조사, 수입사를 포함한 의료기기업계도 불법리베이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협회가 이번에 간납업체의 불법리베이트 문제를 본격 거론하고 나섰지만, 비단 간납업체만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물론 협회가 이를 인지하지 않고 간납업체에 선전포고를 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다만 제약업계의 전례에 비춰볼 때,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비아냥거림을 듣지 않으려면 뼈를 깎는(?) 자정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약업계는 수년전부터 불법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자정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대형제약사, 중소제약사, 수입사 등 회원사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다가 이미지 실추만 거듭했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공정위 고발, 불법리베이트 정황이 의심되는 회원사에 대한 무기명 설문조사 등 강경책을 꺼냈고 조금씩 그 효과를 보고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기기업계가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또 간납업체의 불공정 거래를 뿌리 뽑고자 한다면 강력한 자정 움직임이 동반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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