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우 칼럼 - 의료는 일상이다(1)

[연재 칼럼 소개] 현대인에게 ‘의료’는 일상이다. 대중문화는 의학과 질병, 치료, 건강 등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연재는 대중문화에 나타난 다양한 사례를 통해 대중들이 어떻게 의료를 바라보고 소비하는지 살펴본다.

의료는 크게 보면 질병과 사고에 대한 대처 행위이다. 질병은 우리의 몸 속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을 살피고 적절한 처방을 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에 반해 사고는 외부 환경에 따른 갑작스럽고 우발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의 결과에 대한 처치의 문제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목숨을 유지하고 지키는 일은 매우 긴박한 순간의 결정과 노력의 산물이다.

<심장이 뛴다>(SBS, 화요일 밤 11:15)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조동혁, 장동혁, 전혜빈 등 6명의 연예인들이 소방대원들과 함께 일선 소방서의 119 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때로는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는 실제 현장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단순한 오락프로그램이 아니라 공익프로젝트의 성격이 강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소방대원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심장이 뛴다’는 제목은 어쩌면 소방대원들의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말 그대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인명을 구하는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인해 심장은 다시 뛰게 된다.

지난 4월 22일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모든 예능방송이 중단되었음에도 <심장이 뛴다>는 유일하게 방송을 그대로 내보냈다. 프로그램의 성격이 웃음이나 즐거움보다는 사회적 공공성에 가치와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담았다.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그것을 우리는 골든타임이라고 부릅니다. 무엇과도 바꾸어서는 안 될 황금보다도 소중한 그 시간이 길 위에서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바다에서도 모든 재난 영역에서 기필코 지켜지길 우리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소방대원들이 항상 싸우고 있는 ‘골든타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바다’라는 표현을 넣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내포한 것이다. 골든타임에 대한 강조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개한 캠페인 ‘모세의 기적’에 잘 나타나 있다. ‘모세의 기적’은 말 그대로 “구급차에게 길을 비켜 주세요!”를 뜻한다. 실제 프로그램에서 병원 이송이 지연된 하지절단 환자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연이 소개되면서, 제작진이 대국민 캠페인으로 이어간 것이다.

급기야 지난 3월 14일에는 이 캠페인에 공감하는 국회의원들이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고, 16일에는 개정안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개정안 내용은 긴급자동차의 우선통행을 방해하는 차량에 대한 범칙금을 높이고, 긴급자동차를 긴급한 상황 외의 용도로 사용할 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TV 프로그램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대부분 시사 프로그램에서 가능한 일이었으나, 일종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법 개정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은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의료기술의 발달 역시 진화하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이 갖는 의미를 찾자면 분명 인간의 생명을 구하거나 연장하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의료기술의 발달이 무색할 정도로 인간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는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심장이 뛴다>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소방대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반영한다.

현재 3만8천 여명의 소방대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각종 재난과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 모든 현장에 나타난다. 그런데 최근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서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안전행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축소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소방방재청이 실질적으로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그것은 소방대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면서 소방대원들이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공식적인 반발도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또한 한 소방대원은 온라인 공간에 올린 글에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장갑을 개인이 직접 사야 한다는 열악한 현실을 폭로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모세의 기적’ 캠페인은 구급차에게 길을 비켜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구급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의미하는 것이고,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라는 공동체의 골든타임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 현상을 통해 바로 그 사회적, 국가적 골든타임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해 좀 더 예민해지는 것이야말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좀 더 건강하게 오래살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필자 소개]

권경우
문화평론가

문화평론가. 여러 대학에서 대중문화와 철학을 강의하고, 다양한 매체에 문화비평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화운동>(로크미디어, 2007)이 있으며, 함께 지은 책으로 <아이돌: H.O.T.에서 소녀시대까지>(이매진, 2011), <웃기는 레볼루션: ‘무한도전’에 대한 몇 가지 진지한 이야기들>(텍스트, 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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