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 설정 거부‧대금 결제 지연으로 의료기기업체 일방적 희생

병원과 간납사 간에 갈등으로 의료기기 공급업체가 2개월째 대금지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치는 격. 바로 전주에 위치한 J병원과 간납사 에이치엔케어(구 피엠씨엠) 간의 이야기다.

무담보로 공급 진행

지난 2020년 6월경 J병원의 간납사인 케어캠프가 에이치엔케어으로 변경되면서 이번 갈등이 시작됐다. 그동안 케어캠프를 통해 J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던 공급업체는 새로운 간납사인 에이치엔케어와 협의를 통해 공급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 설립돼 의료기기 유통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케어캠프에 비해 에이치엔케어는 2020년 6월에 막 설립된 신생회사이다. 의료기기 공급 특성상 많게는 수십억원 이상이 거래되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의료기기 거래 관행은 보증 또는 담보제공 없이 공급업체에 모든 위험 전가하고 있으므로 의료기기업체 입장에서는 거래 유지에 대한 담보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채권양도·어음 등의 담보를 에이치엔케어에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고, 병원 담당자와도 해당 문제를 전달했으나 간납사와 해결하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결국 의료기기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무담보로 공급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병원과 간납사 갈등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J병원과 에이치엔케어 간에 갈등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올해 6월 J병원의 새로운 병원장이 취임하면서 이전 간납사인 에이치엔케어와의 거래 중지를 요구했다. 이에 에이치엔케어는 당초 계약기간인 2025년까지 거래할 것을 주장했고 J병원 측에서는 물품대금 지급을 약 2개월 간 유예했다. 그리고 병원 측으로부터 비용을 받지 못한 에이치엔케어는 의료기기업체에게 2차례에 걸쳐 일방적인 결제 연기 공문을 발송했다.

현재 의료기기업체의 경우 담보 없이 에이치엔케어 측으로부터 제품 납품일 기준 4개월 후에 비용을 지급받고 있다. 여기에 문제가 되고 있는 J병원이 에이치엔케어에 지불하는 대금지급 연기 2개월을 합산할 경우 최대 6개월 가량의 금액이 지속적으로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하며 무담보로 계약을 진행하던 의료기기업체만 중간에서 날벼락을 맞았다.

최근 확인된 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에이치엔케어는 거래처인 J병원이 대금지급을 거부 후 계약 해지를 통보한 상황이므로 이에 자금 회수를 위한 법적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는 공문을 납품업체에게 전달했다.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는 셈이다.

부도 시 막대한 피해 예상

J병원과 에이치엔케어와의 갈등이 무사히 해결된다면 다행이나 대금지급이 계속 연기되어 에이치엔케어가 부도가 날 경우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일부 공급 대리점의 경우 많게는 1억원까지 에이치엔케어에 의료기기를 납품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현재 6개월 이상 지급이 연기되고 있으므로 피해액은 6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셈이다. 통상 소규모 대리점 입장의 경우 운영 자금이 적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줄폐업 가능성까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 홍익병원에 의료제품을 납품하던 여명약품(간납사)이 부도 처리되어 여러 의약품과 의료기기공급업체들이 큰 피해를 본 전례가 있다. 특히 소상공인에 해당하는 의료기기업체의 대리점의 경우, 현금흐름이 막혀 자금난으로 결국 줄폐업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의료기기업체와 대리점은 계약서와 담보를 미설정했기에 대금회수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불공정한 의료기기공급 개선 필요

제품을 정당하게 공급하고 안전한 담보설정과 적절한 기간 안에 대금을 지급하는 공급계약은 지극히 정당한 행위이다. 그러나 의료기기 유통구조의 경우 정해진 간납사를 통해서만 병원에 제품 공급이 가능하기에 의료기기업체의 일방적인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간납사의 과도한 할인율 요구와 대금지급 연장을 거부하고 계약서 작성과 담보를 요구할 경우 납품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든 의료기기 유통구조의 가장 상단에 있는 병원 측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방관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특수관계인을 통해 간납사 경영에 참여하는 등 상황 자체를 악화시키고 있다.

해외의 경우 간납사 역할을 하는 구매대행업체는 개별 공급업체로부터 제품를 대량 구매해 공급업체에게는 안정적인 구매라인을 제공하고 의료기관에는 저렴하게 납품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협회가 회원사 400여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기기산업 유통 실태 설문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납사는 타의료기관 납품단가 정보 요구‧가납제품 부실관리‧공급내역보고 작성의무 전가 등 공급업체에게 불합리적인 요구만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조사를 통해 협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간납사와 이를 방임하는 병원의 태도가 모여 지금의 폐해가 많은 의료기기 유통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의약산업의 경우 「약사법」을 통해 의료기관이 2촌 이내의 친족이나 지분 관계 등 특수 관계를 가지고 있는 도매상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한편 유통구조 정상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의료기기산업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간납사의 거래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외에도 대금결제 기한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의료기기 공급보고 의무를 타인에게 전가 금지시키는 제도 개정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현재 대한민국 의료기기 유통구조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미래성장산업으로 손꼽히는 의료기기산업 성장의 가능성 또한 낮추고 있다.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관심과 의지가 요구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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