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보상 및 모니터링 가능한 목록화 시스템 구축 필요

중학교 국어시간에 허균의 홍길동전을 배운 적이 있다. 교과서에 나온 소설치고는 제법 재미난 이야기였기 때문에, 소설을 술술 읽으며 재미나게 배웠던 기억이 있다. 벌써 한참이 지난 소설인지라 홍길동이 추구하던 이상국의 이름이나, 등장인물들의 이름 그리고 결말이 가물가물한 지금이지만, 아직까지도 소설에서 기억나는 부분은 길동이 한탄을 하며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란 대목이다. 홍길동이 서자로 태어났기에 본인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부분이란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안타까운 상황이 우리 치료재료에도 있다.

지정훈<br>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br>​​​​​​​보험위원회 수가개선분과장<br>
▲지 정 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회 수가개선분과장
(한국스트라이커 상무)

정액수가는 치료재료 상한금액 목록표에 포함돼 하나의 탭을 차지하고 있으나, 그 성격과 특징이 여느 별도 보상되는 치료재료와는 다르다. 치료재료인양 표기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그런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홍길동의 상황과 같은 것이다. 특히 다양한 정액수가 코드들 중에서도, 가장 모호한 상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3대경(관절경, 복강경, 흉강경)이라 할 것이다.

이 코드들은 치료재료리스트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최초 등재된 2006년 이후 단 한차례도 재평가나 혹은 검토를 받은 적이 없다. 심지어는 환율연동제의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느 치료재료와는 다르다. 또한 기본적으로 각 치료재료 코드에 포함되는 제품명, 회사명에 대한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지 않아, "치료재료이나 치료재료라고 부를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정액수가는 규격, 개수, 제품명 등이 별도로 기재되지 않은 형식의 코드로 치료재료의 묶음코드(Bundle code)의 금액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3대경 정액수가 (관절경, 복강경, 흉강경)는 각 수술과정에서 사용되는 치료재료들을 개별적으로 보상하지 못해, 한데 모아 코드를 생성시킨 대표적인 예이다. 그래서 흔히 업계의 많은 이들은 "재료계의 DRG"라는 표현으로 그 의미를 함축시켜 표현하기도 한다.

개별 제품의 코드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묶음코드를 가지게 됨에 따라 실제 해당 정액코드가 청구될 때, 치료재료의 종류나 개수 파악이 어렵다. 바꾸어 말하면 제품 모두를 사용하건 그렇지 않건, 한 개를 사용하건 여러 개를 사용하건 동일한 금액을 청구하게 된다. 결국 이런 문제가 확대되어, 일회용 제품의 재사용이라는 커다란 문제까지 확장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복지부와 심평원은 가장 청구금액이 많은 관절경을 중심으로 2019년 야심차게 재평가안을 발표했다. 두 차례의 연구용역이라는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본격적으로 검토한지 4년이 흘러 올해 4월에 결과안을 도출했다. 이번 정액수가 개선안에는 지난 2006년 관절경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등재된 복강경, 흉강경이 함께 포함되어 있어 최종 3대경(관절경, 복강경, 흉강경)에 대한 결과안이 포함됐다.

이번 결과안은 3대경에서 사용되는 정액수가에 대한 비용을 아래와 같이 일부 인상시켜 주는 것이 골자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비용의 인상에서 정액수가 코드를 행위수가집에 포함하는데, 예를 들어 "단, 관절경 수술시 XX코드 적용" 등의 내용으로 인상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이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루어 질것이다.

정부의 오랜 노력에 의한 결과물임에도, 산업계는 실망감과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이는 처음 정액수가 개선을 진행한 원인과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3대경 정액수가에 대한 재평가 시작의 이유는 각 정액수가 코드에 어떤 제품들이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이 어렵다는 데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회사의 어떤 제품이 요양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는지 또 일회용 제품은 그 허가 받은 사항에 맞게 일회용으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그 때문에 업체에서 지속적으로 요청한 것은 3대경 정액수가에 포함된 치료재료들의 별도 보상이다. 물론 이 작업은 처음부터 많은 난관이 있었다. 개선을 위한 재평가가 출범해 진행이 될 때에도 각 3대경에 해당하는 회사와 제품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특히, 어느 회사에 이 재평가와 관련된 의견을 묻고, 어떤 제품의 자료를 요청해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회와 심평원은 함께 협력해 당면한 그 부분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심평원이 전달해준 목록들을 기반으로 어떤 회사에서 관련 제품을 취급하고, 어떤 종류의 제품이 해당 정액수가 코드에 포함되는지 자료제출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각 재료별 별도 보상을 할 수 있는 기본자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번 결과안은 그간의 노력을 뒤집고, 결과적으로 전체 정액코드의 금액을 인상시키는데 그쳤다. 처음 협회가 이 재평가를 진행하게 된 이유를 무색하게 한 처사였다. 결과적으로 요양기관내에서의 제품 사용에 대한 추적성이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로 남게 됐다. 오랜 기간의 심평원과 산업계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쪽으로, 아니 이 재평가의 시작한 문제의 근원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 결과안이 도출된 것이다.

다양한 측면에서 볼 때 '개별 보상'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 부분이 적용에 있어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면, 재평가를 시작한 이유에 들어맞는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

즉, 금액은 전체 묶음금액으로 사용이 되더라도, 청구되는 코드에 어떤 제품류가 들어가고, 그 각 제품류에 어떤 회사의 어떤 제품이 들어가는지 목록화 된다면, 체계적인 사용 및 모니터링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미 지난 수 년간 관련 업체들은 각 3대경에 해당하는 제품류의 리스트와 허가사항을 심평원에 접수했다. 이 정보를 기반으로 목록화 된 리스트는 현재의 정액수가 탭에 넣어 관리하고, 이를 토대로 요양기관에서의 사용 종류와 개수 그리고 일회용 제품의 알맞은 사용 등에 대한 모니터링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모니터링이 가능한 목록화 등의 시스템이 구축돼야 산업계도 홍길동이 본인의 아버지에게 들었던 "호부호형을 허하노라"라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적어도 치료재료를 치료재료로 부를 수 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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