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재료 제품, 보험상한가 한시적으로 일률적 인상 필요"

백척간두(百尺竿頭). 현재 의료기기 산업의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다. 말 그대로 백 자(尺)에 이르는 높은 장대 위에 위태롭게 선 형국이다. 의료기기 산업계는 어찌할 수 없는 불리한 외부 요인으로 인해 매일 분투 중이다. 장대가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strong>&nbsp;▲유 철 욱&nbsp;<br>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strong>
 ▲유 철 욱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

그러하기에 의료기기 업계가 처한 상황을 긴급히 고(告)하고자 한다. 산업계가 위기에서 벗어나 성장하고 계속해서 국민 건강에 계속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결단과 전향적인 정책 지원을 요청한다.

의료기기 산업계는 원자재 수급, 제조와 조립, 수출과 유통 등 사업의 전 과정에 걸쳐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고, 주요 거시경제지표를 비롯한 국제경제 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의료기기산업계는 최근 외부 환경이 최악을 치닫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국내는 물론 해외 경제 상황도 여전히 정상을 회복하지 못한 가운데, 새로운 악재들이 업계에 충격을 이중 삼중으로 가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중국 상하이, 북경 등 주요 도시 봉쇄가 잇달아 악화되고 있다.

그 결과, 비용의 수직상승과 국제 유통체인의 붕괴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2배 가까이 오른 원유 등 자원의 가격 폭등은 연쇄적으로 제조원가는 물론 운송비, 물류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여전히 진행 중인 팬데믹의 여파로 발생하는 배송과 운송지연으로 인해 의료기기산업계는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의료제품의 특성상 환자들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기에 업계는 제한적인 항공 운송에 의존하면서 발생하는 급행료의 부담까지도 떠안고 있다.

반면 기업 경영에 있어 의료기기산업계가 기대할 수 있는 생명줄과 같은 수익원은 극히 제한적이다. 전국민 건강보험제도 기반에서 언제나 정부에 의한 가격 결정과 사용량 통제 등 가격 기전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격 인상과 같이 여타 산업 분야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의료기기산업계에서는 고려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제품의 상당부분을 건강보험의 테두리 안에서 판매하기 때문이다.

제조업체 다섯 중 넷은 연간 생산량이 10억원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국내 의료기기 업계의 규모는 작으며, 어려운 시기를 버티는데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규모가 큰 회사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장하고 자리를 잡은 회사조차 영업이익 등 지표가 급격이 악화되거나 적자 전환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물론, 코로나 상황에서도 체외진단기기업체나 치과임플란트, 초음파영상진단기기업체 등이 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7천여 업체가 있는 의료기기산업계에는 여전히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영세업체가 많다.

산업계가 한번 무너지면 회복에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큰 우려는 국민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의료공백 상태다. 이미 팬데믹을 통해 의료기술 수준과 다양성 그리고 원활한 공급 여부가 경제는 물론 국가의 안녕과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확인한 바 있다.

의료기기산업계가 함께 내린 결론은 규제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정책의 탄력적 운용이 적절히 필요하며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위기의 가장자리에 내몰린 산업계의 목소리를 들어 주기를 바라며 정부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안한다.

우선적으로, 현재 급여권에 있는 모든 치료재료 등 의료기기 제품에 대해 보험상한가를 한시적으로 일률적 인상이 필요하다. 인상 폭은 현재의 불리한 환경과 위기 요인들을 고려할 때 최소 10%는 돼야 한다. 이미 정부는 비슷한 위기 상황에서 수가인상 정책을 시행한 선례가 있다. 지난 1998년 경제위기로 국제금융기구(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당시 급격한 환율변동 등 변수에 대응해 정부는 36.6%의 일률적인 보험상한가 인상을 시행한 바 있다.

다음은, 치료재료 상한금액 인하를 동반하는 사후관리 제도 시행의 보류를 제안한다. 치료재료는 재평가를 통해 많은 경우 상한금액 인하를 겪을 수 있다. 이는 순이익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현 시점에서 추진하는 것은 경영상 매우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산업계의 여러 구성원으로부터 각기 많은 주장과 염원이 있지만, 이들 사항들은 업계의 자생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서 검토돼야 한다.

끝으로, 전체 산업계 종사자분께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의료기기산업계의 가장 큰 책무는 국민 건강과 행복에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현 시점의 위기를 슬기로이 넘어서고 지속적으로 국민 건강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한목소리, 한마음으로 나아갈 때다.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