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기기 세평 - 한해진 데일리메디 기자 

■ 의료기기 세평 - 한해진 데일리메디 기자 

의료기기업계에도 재난지원금이 필요하다

▲ 한 해 진
데일리메디 기자 

5년 전 쯤 내가 만났던 취재원들은 '의료기기 분야가 앞으로 많이 성장할 것이다', '헬스케어 산업 전망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AI가 의료분야에 막 접목될 때였고, 왓슨 포 온콜로지가 국내에 도입되는 것을 보면서 다들 변화와 성장의 희망을 품었던 것 같다.

재미있으면서도 슬픈 일은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의료기기 산업은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고' '차세대 먹거리가 될 만한' 분야일 뿐 그때의 기대처럼 엄청난 성장을 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AI나 3D영상 같은 첨단기술이 놀랍도록 빠르게 도입되고 정부에서도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질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렇지만 의료기기업계에서 20년 이상 몸담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가 5년 전 내가 들었던 이야기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도 사실이다. 실제로 그분들께 '의료기기 분야는 언제쯤 성장하느냐'라고 물으면 대답 전에 쓴웃음을 짓는다.

의료기기는 전문성이 높고 종류가 다양해서, 특정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관계자만 아는 내용이 많다. 내가 의료기기분야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다들 엄청난 경력과 식견을 갖고 있었다.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냉혹한 곳인 것도 같다.

그런 분들이 읽는 지면에서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우리나라 기업이 직접 만든 제품이 병원에서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혹은 해당 치료재료의 국산화를 위해 전문가들이 개발한 제품이 임상 경험을 쌓고 개선될 기회를 더 많이 얻었으면 한다.

병원에서 해외 제품을 선호하는 관습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는데, 관습은 말 그대로 관습이라 뜯어고치기가 쉽지 않다. 의사들은 수입 의료기기를 먼저 써 왔다. 전공의 때부터 눈에 익은 장비에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개별 회사의 영업력이나 유통 구조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차치하더라도 안전성이 보장된 제품을 우선 택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형태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제품들이 속속 출연하는 중이다. 여기에 대한 병원들의 태도도 비슷하다. 새로운 기기의 혁신성과 효과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도입은 망설인다.

그런데 사실 새로운 장비에 대한 의료진의 거부감과 병원의 망설임은 결이 조금 다르다. 병원에서 신제품을 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해당 제품이 급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일 경우가 많다. 기존 예산으로도 진료의 질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는데, 굳이 추가적인 예산을 투입하면서 위험 부담을 안은 채 새로운 제품을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건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써봐야 안다. 그런데 급여가 안 되는 제품을 갖고 있는 의료기기 업체들은 시장에 제품을 선보일 기회마저 얻기 어렵다. 최근에는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했는지 첨단 의료기기 제품에 예비급여 허용을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만 수많은 행위와 약제와 치료재료가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두고 다투는 상황에서 급여화가 척척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일찍부터 해 버리면 금방 지치기 마련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임상을 거쳐야 하는 의료 분야의 특성상 생각보다 많은 지구력이 요구된다.

의료기기 업체들을 격려하고 지구력을 보태주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지원책으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센티브를 기업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게 주는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의료질평가 등 각종 적정성 평가를 시행하고 높은 등급을 받는 의료기관에게 장려금 명목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이외에도 정부가 시행하는 진료 관련 시범사업에 참여할 경우 크고 작은 인센티브가 있는데, 중소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것이 생각보다 병원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된다. 저수가 때문에 급여 진료만으로는 적자를 보는 상황이라 정부가 발표하는 시범사업을 빼먹지 않고 참여한다는 병원들이 꽤 많다.

혁신의료기기를 선정하고 인허가를 쉽게 해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적 서포트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제품이 팔려야 한다. 좀 난폭한 방법이나, 의료장비 개수를 구간별로 나누고 일정 품목 이상 국산 제품을 사용하는 기관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하면 당장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봤다. 실제로 PACS 시스템이 단기간에 도입될 수 있었던 것도 인센티브 제도의 효과였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산업계가 괄목할 만한 성장 중이고, 기술력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팔리지 못할 것이 뻔한 제품을 끌어안고 계속 버틸 수는 없다. 하나의 제품이 환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허들을 넘어야 한다. 국민들을 격려하고 내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급되는 재난지원금과 같은 인센티브가 의료기기업계에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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